천재에 대한 갈망, 영화로 대리만족
한 번쯤은 이런 능력을 꿈꾸어보지 않는가. A4용지 빼곡히 채워진 숫자들을 1초만이 계산을 하는 능력, 한 번 읽은 것에 대해서 완벽히 기억하는 미친 암기력. 천재가 되는 꿈 말이다.
수능시험이 한 달 남았을 때 번개를 맞아도 좋으니 천재가 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었더랬다. 일어났을 때 몸이 괜히 가볍고 기분이라도 좋으면 혹시 나의 뇌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닐까 괜한 흥분감을 가져봤었다. 그렇게 수능 시험을 치르고 나오면 알게 된다. 역시 난 그저 평범한 인간, 천재는 기분 따위로 되는 게 아니었다.
천재 (Genius, 天才)
보통사람에 비하여 극히 뛰어난 정신능력을 선천적으로 가진 사람.
천재를 직접 만나본적이 있는가. 필자의 경우 천재에 근접하게 똑똑한 사람은 봤지만 실제로 천재라고 불려지는 사람을 만나본 기억은 없다. 약간은 무서울 것 같기도 하지만 죽기 전에는 꼭 한 번쯤 만나보고 싶긴 하다. 선척적으로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태어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선척적으로 좋은 두뇌와 감각을 갖고 태어나면 그 사람은 무조건 천재가 될까? 대답은 NO. 실제로 그런 능력을 지니고도 천재로 불려지지 못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애초에 남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천부적인 능력을 지녔는데 왜, 똑똑한 두뇌를 가진 모두는 천재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영화 '어카운턴트' 속 크리스찬 울프는 자폐를 갖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선척적으로 뛰어난 두뇌를 갖고 태어나 암기력, 사고력, 수학능력이 남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 일명 '천재'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면 이 천재적 능력은 그저 '장애를 가진 아이'로 비쳤을 뿐,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때문에 조금 살인적이긴 했지만 아빠는 그를 위해 어려서부터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사람들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체력을 키워줬다. 그리고 제어가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는 그의 충동적 행동을 뒤처리해줬던 동생이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울프가 이 둘의 도움 없이 뛰어난 회계사(그리고 굉장한 킬러)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면 단지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성인으로 성장했을 것이 분명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화제작 '퀸스갬빗'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주인공 엘리자베스 하먼은 엄마를 잃고 고아원에 가게 됐고, 관리인 샤이벌 아저씨의 체스판을 보고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녀는 세상의 단면과도 같은 체스의 매력에 푹 빠짐과 동시에 고아원에서 주는 약물(진정제)에도 푹 빠져버리게 된다. 이걸 시너지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두뇌회전은 약물의 힘을 빌어 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하먼의 내적 성장은 두뇌회전의 속도만큼 따라가지 못했다. 그녀는 뛰어난 능력 덕분에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늘 자신의 성공과 함께였던 2번째 엄마를 잃고 난 뒤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 타락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 순간 베니와 해리가 있었다. 진심으로 하먼을 응원했던 그들은 그녀의 타락을 막기 위해 중간중간 잘 지도해주었고, 마지막에 수호신처럼 등장한 고아원 친구 졸린은 위기의 순간에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주었다.
두 영화 속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천재는 단순히 머리만 비상해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천재도 누군가와 '함께' 성장하면서 빛을 발현하는 것이고, 그것은 천재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혼자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천재가 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지도자와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도자와 조력자가 함께 한다고 해도 천재가 되기 위한 또 다른 변수가 존재한다. 바로 '환경'이다. 천재들은 선척적으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다. 안타깝게도 시대를 잘못 태어난 탓에 빛을 보지 못했거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잊힌 천재들이 얼마나 많을까.
영화 '천문'에 나오는 우리의 역사 속 천재 장영실. 뛰어난 두뇌는 물론 미적 감각까지 겸비한 그가 만약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훨씬 더 멋진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과거 계급사회를 현 정치판으로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본인이 가진 능력을 알릴 수 있는 매개체가 많은 이 시대에 살았다면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엄청난 조력자인 세종을 만나고도 낮은 신분으로 사대부의 먹잇감이 되기 좋았던 장영실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시대를 타고나는 것은 중요하다.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삶을 그린 '러빙 빈센트'. 빈센트가 예술적 천재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주변에서는 그가 정신이 좀 이상하다며 멀리했다. 그렇게 홀로 떠돌아다니며 지독하게 외롭게 살아가다 생을 마감했다. 현대에서는 처절한 외로움 덕분에 멋진 작품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 빈센트는 생애 시절 자신의 작품 단 1점 만을 판매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이유로 작품까지 저평가한 사람들의 그릇된 시선이 수 백개의 멋진 작품을 탄생시켜놓고 그를 가난하게 살아가게 했다.
아무리 천부적 능력을 지녔다한들, 환경적으로 받쳐주지 못한다면 실제로 천재로 인정받기란 어렵다. 시대적 환경을 잘못 태어났다면 시대가 흐르고 난 뒤 실제 그는 천재였어! 하는 경우라도 발생하지만, 차별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환경이라면 천부적 능력은 그저 불편함이 될 뿐이다.
실제로 걸출한 천재로 인정받은 사람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과도한 집중 탓에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천재와 정신질환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까지 있었다고 하나, 천재는 사실 유전에 의한 것이 강하다고 한다. 그저 주변 사람의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환경이 조성될 뿐이다. 정신병자 취급받거나 천재가 되거나.
위 두 가지의 변수를 고려해봤을 때 실존하는 주변의 천재가 한 명 있다. 아니, 천재라고 보기에는 약간 낯간지럽고 천재에 근접한 사람이 한 명 있다. 성공한 사업가, 친오빠다.
나의 글을 자주 보던 사람이나 지인들이라면 친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들어봤을 거다. 앞선 천재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오빠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이 보였다.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 늘 전교 상위권을 유지했다. 노력하는 모습을 못 본 것 아니냐고? 아니다. 친구들은 항상 수업시간에 오빠는 잠만 잤다고 했고 집에서는 만화책만 봤다. 어느 날 시험을 어떻게 그렇게 잘 봤냐고 물었더니 그냥 봤던 책 내용 전부가 기억이 난다고 했다. 재수 없다.
그러나 오빠의 천부적 능력은 학업이 아니었다. 그림이다. 빈센트와 같이 예술적인 작품을 그리는 것은 아니고, 만화를 보고 두어 번 연습을 해보면 비슷하게 그리는 능력이 있었다. 거기에 비상한 두뇌로 286시절부터 컴퓨터를 빠르게 익혔고, 지금은 두 능력이 만나 오빠를 완전체로 만들어 성공시켰다.
오빠 역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과거가 있다. 오빠는 서번트 증후군이나 장애로 구분되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본인이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싫어했고 때문에 주변 사람에 대한 감정이나 상황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비사교적 성향인 오빠를 대신해 부모님은 나를 매우 사회적인 사람으로 키웠고, 다행히도 완충제가 된 내가 오빠를 향한 불편하고 차가운 시선을 흡수할 수 있었었다. 덕분에 오빠는 주변의 방해 없이 천부적인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자신만의 길을 의심 없이 곧게 갈 수 있었다.
든든한 지도자 아빠와 자상한 조력자 엄마, 그리고 주변의 시야를 차단한 나. 가족 모두가 힘을 합쳤다. 천재는 그렇게 탄생했다.
위 소개했던 영화들 외에도 이미테이션 게임, 커런트 워, 소셜 네트워크, 캐치미이프유캔 등 천재성을 그린 영화를 좋아한다.
홀로 두각을 드러내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얼마나 큰 힘인지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성공의 달콤함에 취해 타락하는 천재 이야기도 있지만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천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은 교훈을 준다.
어린 시절 오빠를 보며 나 또한 오빠처럼 어느 한 분야만큼은 천부적인 능력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 유전자가 내게도 분명 있을 거라고,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확실히 두뇌가 비상한 것은 아닌가 보다. 당장 어제 먹은 점심메뉴도, 얼마 전 본 영화 내용도 온전하게 기억 못 하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나의 천재성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혹시 모를 일 아닌가. 훗날 60세가 되어서라도 갑작스럽게 나의 천재성을 발견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