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을 강요한다고 애사심은 생기지 않는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번지고 있다.
이태원 지역 확진자로 인해 다시 코로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금번 확진자 일부가 우리 회사 근처에 거주한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주부터 정상 출퇴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비롯한 지인들로부터 다시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조심하라는 걱정과 우려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이태원 66번 확진자가 나온 다음날 휴가를 썼는데 회사 동료들에게 카카오톡이 빗발치듯 온다. 우리 회사는 당장 다음 주부터 재택근무와 시차근무가 다시 시작된다는 내용. 기한도 안정해져 있고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한 없이 적용한다는 내용. 다들 반가운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교차하는 대화 사이, '애사심이 절로 생긴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재택근무가 애사심까지 생길 일인가 싶었지만, 이해가 됐다. 혹시나 하는 우려마저 없게 하려는 회사의 대처. 애사심이 생길 만도 했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뉴스에서 큰 기업들부터 너도 나도 재택근무를 선행하며 우리 회사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재택근무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를 비롯한 많은 회사 사람들이 일이 되겠는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근데 예상과 달리 물리적인 이동이 없어서 그런지 회의(화상회의)를 하기도 수월했고, 듀얼 모니터의 편의만 약간 포기하면 일도 할만했다.
그렇게 약 두 달여간의 재택근무가 종료된 지 3일 만에 다시 재택근무 재시행 공고가 떨어졌다. 회사 입장에서는 번복하는 거나 다시 모든 직원에게 원격을 열어주는 일이나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과감하게 다시 재택근무를 선택했다. 솔직히 이번 재시행의 발 빠른 대처에 좀 놀랐다.
좋은 회사?
좋은 회사의 개념이 모두에게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봤다. 난 지금 회사까지 포함해서 총 6개의 회사를 겪었다. 일명 가'족'같은 소기업부터 꼰머천국 대기업까지 규모도 다양했고, 하청업체부터 인하우스 IT부서, 자체 서비스까지 그 분야도 각양각색이었다. 이직을 여러 번 하면서 회사를 보는 눈이 좀 높아졌을 줄 알았는데 것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작은 회사라서 큰 회사가 가고 싶었고, 복지가 별로라 복지를 따라 이직을 했었다. 무조건적인 하나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직을 거듭하면서 회사라는 곳 자체가 '좋을 수 없다'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던 나였다. 환경이 좋아도 인간이 엉망이고, 인간이 좋으면 환경이 엉망이었다. 이 두 가지가 성립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것도 틀린 생각은 아닌 게 수년간 지켜온 문화와 수십 년 다르게 살아온 인간들이 모인 곳인데 그 합이 어찌 그리 찰떡같이 맞을 수 있겠나. 그래서 회사생활을 어렵다고들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튼 좋은 회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지금 우리 회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국 '복지'로 회귀되는 이유
앞서 복지를 따라 이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좋은 회사의 기준으로 가장 크게 언급되는 것이 '복지'가 아닐까 싶다. 대기업의 복지, 듣기만 해도 너무 달달해서 이직의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대기업은 실제로 좋은 복지들이 많다. 예를 들면, 나의 서민 레벨에서는 밟을 수 없는 고오급 호텔이나 리조트를 시원하게 반값 이상 후려쳐 호화를 저렴하게 누리게 해주는 여행비 지원 이라던지, 한 달의 한 번의 고통을 겪는 여성들을 위한 보건휴가, 회사로 머나먼 여행을 가야 하는 직원들을 위해 고단한 아침 꿀잠을 선사해주는 셔틀버스와 같은 복지다. 이런 복지는 듣기만 해도 달달하고 회사생활에도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사실 대기업은 이런 복지 때문에라도 참고 다닐 만도 하다. 별다른 대안이 없다면 저 정도의 복지를 누리면서 적당한 타협을 하며 회사를 다니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렇듯, 인간이 문제였지 회사는 제법 복지를 통해 나에게 많은 것을 만족시켜 주었다. 처음으로 부모님이 얘기했던 '큰 물에서 놀아라'를 실감했던 순간들이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가장 독특했던 복지는 '성형외과'수술비를 지원해주는 복지였는데 열심히 돈 벌어서 나의 미래(?)에 투자하라는 의미인가. 심지어 회사 근처 제휴도 아니고 유명한 갱남 성형외과도 포진되어 있었다. 무튼 다시 생각해도 독특한 복지였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복지가 입사의 큰 목적이 되어 들어왔던 동료도 있었다는 것. 신기하기도 하면서 복지가 회사 선택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었다.
가장 좋으면서 싫었던 복지제도는 수면실과 휴게실, 샤워실이었다. 워낙 작은 회사에서 라꾸라꾸로 생존을 연명하던 나에게는 호화스러운 복지처럼 느껴졌었지. 어차피 야근이나 철야는 불가피하니 조금 편히 하고 싶었다. 그 복지가 있는 회사를 입사하니 동료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냥 집에 가지 말라고 만든 거라고 했다. 근데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진짜였어...! 집에 못 갔다. 야근은 베이스, 철야를 하지 않고서야 목표일정을 맞출 수 없게 스케줄을 계획하는 영업팀 또는 상사 때문에 내가 속한 제작팀은 멈추지 않는 기계처럼 일을 하기 위한 복지였던 것. 물론 몸이 너무 힘이 들 때는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생존 복지였을 뿐이었다. 적당하게 일을 주면 안 되나?
복지는 회사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실 회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 어차피 그 안에 속한 인간들이 어떤지는 복불복이고 하는 일도 인간에 따라 만족도의 편차가 좀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인지에 대한 업무 분야 적합도 또한 막상 들어가면 잘 안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결국 회사의 네임벨류 또는 복지를 선택해서 회사를 가게 된다. 그래서 대기업에 날고 긴다는 인재들이 그렇게 몰리는 것이다. 실력도 출중하고 겪을 거 다 겪어보니 어차피 회사는 거기서 거기, 계속 다닐 거면 그나마 복지를 선택하게 되는 거다.
그럼에도 복지가 전부는 아니다.
날고 기는 인재는 아니지만 이직 좀 경험해본 유경험자로써 복지보다 중요한 건 적당한 복지와 적당한 일의 만족도의 밸런스다.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린가..!! 너무 당연하잖아!!! 그럼에도 굳이 하나의 주제로 쓰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그 밸런스가 존재하긴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그랬고 주변의 많은 선배들을 보면 삐까뻔쩍 달달한 복지를 겪고 나서 자신이 하고자 했던, 바라봤던 목표를 잃는 경우를 많이 봤다. 회사에서 무슨 목표? 어차피 내 회사 아닌데 그냥 적당히 일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할 수도 있다. 매우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본다. 사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그 죽일 놈의 목표 따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회사에서 호구되기 가장 좋은 상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브런치 글이나 미디어로 접하는 직장인들과 달리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직장인을 많이 봐왔다. 회사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목표하는 게 명확한 피곤함을 즐기는(?) '목표지향형 회사원' 말이다.
이런 직장인들에게는 복지가 크게 의미가 없다. 정말 중요한 복지 하나 '내가 업무를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에만 집중하고 실제 하는 업무가 즐거워야 한다. 일의 만족도가 빠지는 순간 저 멋진 복지들은 그저 허상이고 껍데기일 뿐이다. 대기업을 겪어봐서 그런 소리 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다. 맞다. 그 맛을 겪어봐서 조심하라는 거다.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 자신의 일이 대한 신념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의 전달이다. 사실 나 따위가 누구에게 조언을 할 입장도 아니지만 회사가 복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자로써 알려주고 싶었다. 달달한 복지와 일의 만족도 밸런스가 잘 어우러진다면 금상첨화! 그곳은 당신의 평생직장이다.
같은 회사를 오래 다닌다는 것의 의미
앞의 이야기까지는 일반화된 직장 선택의 이유라면 나는 지금 재직 중인 회사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직원으로서 회사를 '믿는다'는 개념이다. 우리 회사가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회사도 나에게 이 믿음을 배반하지 않을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신뢰.
이번 재택근무 재시행을 경험하며 우리 회사가 직원들에게 주는 믿음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 실제로 직원을 전적으로 믿어서 재택근무를 시행한 것인지 아닌지는 사실 알 필요는 없다. 직원들 개개인이 안전할 수 있게 근무환경을 지원해주었다는 객관적 사실 하나면 된다. 우리 회사는 '기본'에 충실한 회사다. 물론 부서마다 다르겠지만 직원의 평가도 제법 합리적이고 직원들에게 꼭 필요한 복지만 존재한다. 가짓수로 보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불만을 표하는 직원이 많지 않은 걸로 봐서 그 복지 하나로 다른 불편을 상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직원들이 애매한 공휴일, 예를 들어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노동절'은 내가 다녔던 일부 회사는 '쉴 테면 쉬어봐. 네 평가는 쓰레기가 될 테니까'따위로 못 쉬게 했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쉬는지 쉬지 않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히 쉬니까.
우리 회사는 주요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을 때는 야근도 그리 많지 않다. 즉, 일정 기간 프로젝트로 바쁠 때가 아니면 워라밸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일할 때는 전투적으로 하되, 쉴 때는 확실하게 쉬자는 주의다. 사실 이전에 다녔던 많은 회사은 일하는 시간에 회사에 마련된 카페테리아에 나가 노닥거리는 시간이 업무시간에 포함되어 있었다. 어차피 야근할 건데 뭐 그렇게 빡빡하게 하냐는 나에 대한 나름의 합리성이었다. 돌이켜보면 야근을 해야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회사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의 회사는 가급적 업무시간에는 업무만 한다. 처음 오는 신규직원들은 이 고요한 업무환경을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들 이어폰을 꽂고 일해서 그렇지 업무 얘기할 때는 또 시끌시끌하다. 야근이 강요되지 않으니 업무 효율이 늘었다. 정시퇴근은 당연하고 이 일을 마치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누구든 야근을 자발적으로 한다. 팀장도 회사도 야근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하는 야근과 나의 업무 욕심으로 인한 야근은 차원이 다르다. 만약, 위 두 개 상황이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곧 승진을 할 상이로구나!
회사생활 이래로 현 직장에 가장 오래 다니는 중이다. '믿음'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준 회사이기도 하다. 현 직장인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애사심'이란 바로 이런 마음이 아닐까? 만약 내가 이 회사가 정말 나에게 맞는가 안 맞는가를 고민한다면 후자에 가까울 확률이 높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팀에 따라 케바케일 수 있지만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스스로와 맞지 않는다면 이직을 고민해볼 만하다. -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이직 예찬론자는 아니다 - 나에게 완벽히는 아니어도 워라밸을 가져다주는, 믿음을 주는 '좋은 회사'는 존재한다. 있다!
애사심은 충성이 아니다.
회사의 오너가 되면 애사심 충만한 직원을 두고 일하고 싶어 할 거다. 아니, 사실 이사님이나 부장님 정도의 위치에 가면 실적을 위해서라도 애사심을 많이 기대한다. 애사심은 충성심이 아니다. 회사가 나에게 주는 만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애사심을 강요하는 것은 짝사랑과도 같다. 암만 그 마음을 구걸해봐라. 그게 맘처럼 오나. 진심을 다하는 마음과 성장을 지켜봐 주는 인내와 세심함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짝사랑 한 번 안 해본 오너면 말 다했다. 이직하자 그냥.
그깟 복지 조금 늘린다고 애사심 안 생겨요. 내 회사 아니잖아요. 충성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직원을 진심으로 위하면 애사심은 저절로 생깁니다. 아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