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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Aug 25. 2022

사람을 싫어할 권리

좋은 사람을 강요받는 시대

회사를 다니다 보면 진짜 정말 너무 하기 싫은 일이 있다.


누군가는 회식이 그럴 것이고

누군가는 상사와의 회의가 싫을 것이다.

누군가는 계약서 작성이 그럴 것이고

누군가는 거래처 전화가 그럴 것이다.

그렇듯 누구나, 정말 죽도록 하기 싫은 게 있다.


솔직히 진짜 하기 싫은 것을 맞이하면 이깟 회사 내가 때려치우고 만다 하며 꾸역꾸역 견뎌내곤 한다. 예를 들어 상사 욕받이 같은 거. 그거 누가 하고 싶겠나? 무슨 말만 하면 말꼬리 잡고 늘어지면서 자기를 무시하네 아는 게 없네 씨부리는데, 듣고 있는 것부터 고통스럽다.


그런데 시각을 좀 달리해보자. 여기서 이 싫은 행위들을 잘 견뎌내고 나면 아주 큰 몇 가지 장점들이 생긴다.


1. 성공경험

하기 싫은걸 해내면 일단 성공한 거다. 싫은 일을 해냈으니까. 회사의 GMV달성을 위한 리텐션 지표 > x%를 목표로 하여 그 목표 달성률이 어느 정도에 해당하여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처럼 까다롭지도 어렵지도 않다. 그냥 그 자체가 성공한 것이다. 하기 싫은 것을 겪어냈을 뿐인데 '성공'한 경험을 획득할 수 있다.


2. 공포증 완화

다시 또 새로운 싫은 것을 맞이할 때 상대적으로 두려움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만약 이전 경험에 비해 그 스케일이 블록버스터급이라면 다르겠지만 대부분 이전 경험이 있었기에 자세부터 달라진다. 너무너무 하기 싫어도 일단 해볼 만하다는 자세가 생긴다.


아, 약간은 억지스럽고 꼰대 같을 수 있겠다.


근데 정말 이 2가지의 경험들을 지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사회생활. 미친놈을 식별해가며 '하기 싫은 것의 성공'을 이루고 '실패해도 안 잘린다'는 것을 터득한다. 화로 번졌던 불만은 '그러든가' 정도로 타협하고 '아 일 진짜 더럽게 많네'라는 소리만 살짝 나올 뿐이다.


그렇게 점차 사회생활의 싫은 것에 대한 관대함이 생긴다. 어떻게든 안 하려는 이유를 찾다가도 그 하기 싫은 무언가를 해내는 경험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면 사회생활은 생각보다 할만해진다. 해야 될 일은 그냥 하면 되는 거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소위 우리는 짬바라 부른다.


아주 태평한 소리 한다고, 진짜 지옥을 못 봐서 그런 거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맞다. 솔직히 딱~히 지옥 맛은 없었다. 상사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인신 협박을 받거나 성희롱 농담을 듣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대표님 커피 시중, 재떨이 비우기를 하거나 기획서 출력물을 얼굴에 처맞거나 업무 중 화장실 간 분단위로 체크해서 보고하라는 상사를 만나본 경험 정도랄까. 재떨이로 맞아본 기억은 없는 거 보니 확실히 크게 지옥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제법 여러 케이스를 겪으며 맷집이 생겼다. 너무너무 싫던 일도 하나하나 실타래 풀어가듯 풀어내면 대부분 해결되더라. 물론 도저히 해도 해도 안 되는 건 과감히 포기하기로. 지금 13년째 회사 다니는데 제 밥값 하면 하나 정도 포기해도 잘리지는 않더라고?




그런데 딱 하나, 내겐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게 있다.

'사람'에 대한 관대함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한 명이 있다. (최근 한 명 추가되려고 하긴 하지만..)


이토록 한 사람을 싫어하기까지는 엄청난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 정말 극도로 당할 만큼 당하고 곪아 터져서 상처를 다시 아물게 두었다가 밴드를 붙였다가, 수십 번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정말 싫어할 수밖에 없는가? 에 대해 검증을 한다.


물론 그 과정도 싫다. 근데 내가 좀만 더 노력하면 관계가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에서 시도를 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시도하면 대부분은 괜찮아진다. 싫어진 사람일수록 좋은 면을 보려고 하다 보면 거짓말처럼 좋은 부분들이 보이더라.


근데, 그렇게 해도 도저히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싫어하기로 했다. 정말이지 아무리 좋게 보려고 노력을 해도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싫어하는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자.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 법정


법정의 가르침이나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사람을 싫어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 덕분인지 나는 가급적 인간관계를 과하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려 노력해왔다. 그런데, 정말 수년이 흘러도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냥 싫어해야 될 것 같다. 내 삶에서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인생에 방해가 된다면 싫은 게 마땅하다. 생각만으로 잠 못 이룰 만큼 싫은 수준이면 싫다는 것을 인정하자.


인생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는 데도 부족한 게 시간이다. 싫어하는 누군가로 인해 나의 이 삶이 조금이라도 어두워진다면 나는 그 사람을 싫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그 권리는 나만 행사해야지 주변인에게 전가할 권리는 아니다.


살아가며 엮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지나가다 행여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고 가능한 주변에서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다 조금이라도 엮이는 상황이 되면 내가 피하는 게 맞다.




이토록 정말 겨우겨우 권리까지 들먹이며 싫어하던 그 사람을, 너무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됐다. 피할 겨를도 없이  나에게 그 사람의 이력서가 전달됐다. 이력상 함께 일했던 기간이 겹치는데 혹시 아시는 분이냐고, 경험이 좋아서 면접을 볼까 한다고.


진심으로 동명이인이를 바랐다. 열어보고 싶지 않을 만큼 이름 자체만으로 소름이 돋았지만 침을 꾹 삼키고 열어봤다. 제발 아니기를. 하, 열어보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은 붉어지고 손은 떨려왔다. 그렇게 바르지 못한 정신으로 내게 그 이력서를 전달한 동료에게 전했다.


이유는 묻지 말아 주시고, 이 분을 뽑으실 의향이 있으시면 저는 퇴사를 하겠다고. 너무도 싫다는 명료한 메시지였다.


평소 회사에서는 차분하고 대부분의 일에 싫다는 말을 안 하는 성격의 동료로 비치던 내가 저런 말을 했으니 상대방은 많이 당황했을 거다. 싫어함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해놓고, 생각 한 번을 안 하고 내뱉어버렸다. 지금도 미안한 지점이다.


나중에 정신이 돌아오고 동료에게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히스토리를 말씀드리겠다고 하니 고맙게도 나의 동료는 아무 근거도 이유도 없이 내 말을 수긍해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자기에게는 이력서의 대상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나를 잃는 게 더 큰 리스크라고 했다. 고마운 동료다.




세상은 그렇게 내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라고 이야기한다. 싫어하는 지점이 보이면 좋은 점을 찾으라고 한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을 싫어한다면 좋은 사람이 아닌 걸까. 그럼 난 그냥 좋은 사람 안 하련다.


무엇이든 싫어할 수 있는 권리는 있다. 내 삶이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 대상이 아무리 사랑해야 할 '사람'이라 해도 싫어해도 괜찮다. 좋은 사람 되겠다고 애쓰지 말자, 그냥 그 싫은 마음을 간직하고 다시금 저 멀리 그 이름을 흘려보낸다.


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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