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하 Aug 30. 2022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답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최근 아주 큰 마음을 먹고 영어공부를 다시 도전해보겠노라 큰 맘먹고 인터넷 강의를 끊었다.(얼마 못 가겠군 생각한 거 다 안다!! 동의하는 바..)


이 강의는 매 강의마다 미션이 주어지고 수행을 해야 하는데,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미션이 하나 있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싶었지만 나를 고민의 숲으로 빠뜨려버린 질문.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아니, 수업하다 말고 갑자기 꿈 타령이라니! 흠.. 꿈이라. 40세를 코 앞에 둔 현재, 꿈이라는 것을 딱히 생각하고 살지 않았다. 영어로 답변을 하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바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꿈이 뭐였더라?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지?






젊디 젊고 어여쁜 20대, 내게도 꿈은 있었다.

부자(富者)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


왜 부자가 되고 싶었을까? 를 돌이켜보면 나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부유하지 못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싶기도 하고, 돈이 많으면 내가 원하는 것들을 보다 많이 소유할 것이고, 시간도 여유롭게 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지. 다만, 좀 더 터무니없고 무지막지한 꿈을 꿔도 괜찮은 20대라는 찬란한 나이에 돈만 생각했던 것이 조금 후회되긴 한다.


나의 부자가 되겠다는 꿈은 제법 구체적인 로드맵을 갖고 있었다. 일단 '30세에 여의도에 있는 금융권 회사에 취직하여 오피스텔에 혼자 자취'를 하겠다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는 '정장을 입고 벤츠를 타고 출퇴근하는 여성'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단 여의도 오피스텔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이뤄낼 수 있다고 믿었다.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이니 말이다.


그렇게 20대 중반이 지나면서 이것은 쥐똥인가 새똥인가 싶은 첫 급여를 받고 알았다. 아, 여의도도 벤츠도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구나. 20대 중후반이 되면서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30세'는 성공에 가까워지기에는 매-우 젊은 나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것을 깨닫게 됐지만, 그럼에도 '부자'라는 꿈을 접지 않았다. 차곡차곡 업력을 쌓고 경험을 넓혀 가다 보면 언젠가 '금전적 자유'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정말이지 왜 그렇게까지 집착했을까 싶을 정도로 돈을 정말 정말 많이 벌고 싶었다.




20대 후반에 이르러 금전적 자유를 꿈꾸기에는 터무니없이 작고 귀여운 내 급여와 원치 않게 먹어가는 나이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렀고 대한민국 직장인으로는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걸 그쯤 깨닫게 되며 '부자'의 꿈은 접게 된다.


꿈을 접고 나니 '이왕 사는 거 신명 나게 살자'는 생각으로 꿈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돈 쓰는 재미를 알게 됐던 것 같다. 사고 싶은 건 사고, 하고 싶은 건 하고, 술 먹고 싶을 때 맘껏 즐겼다. 맘 편하게 탕진을 즐기던 20대 후반 어느 날, 죽이 잘 맞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말도 못 하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를 낳게 됐다. 비록 부자는 되지 못했지만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다.


그렇게 30대를 맞이하며 부자의 꿈은 완전하게 소멸됐고,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갈까 에 대한 초점을 맞추며 살아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 바라며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쩌다 외벌이가 됐고, 가족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면서 돈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세월이 흘러 40세가 가까워지니 업력도 쌓이고 경험도 풍부해져 이제야 일한 만큼 제 밥값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족을 먹여 살릴 정도의 돈을 벌고 있고 가족이 단란하게 지낼 집도 샀고 멋진 차도 샀다. 그리고는 더 좋은 조건으로 회사로 옮겼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만족스럽지가 않다.


내 꿈은 부자였는데 돈걱정 없이 사는 게 꿈이었는데, 물론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열악했던 과거와 달리 나름대로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이 부족한 걸까. 벌어들이는 돈이 여전히 부족해서일까?




한참을 고민한 뒤에서야 답을 낼 수 있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 물리적인 '돈'이다 보니 모든 시야가 돈에 꽂혀있었던 것 같다. 내 꿈은 부자였고, 부자가 되면 더 많은 선택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돈 걱정만 없어지면, 내가 자율적으로 내 삶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틀렸다. 주도성은 '돈'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돈을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선택'이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내가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부자의 가장 강력한 근원이었다. 돌이켜보면 돈의 유무와 무관하게 능동적인 나의 선택은 항상 만족스러웠고, 상대적으로 풍족해진 순간에도 허전하고 부족하다고 느껴온 순간들은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선택이 '되어진' 삶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어린아이가 있다면 선택 가능한 삶을 살기에는 무리가 생긴다. 늦잠 자고 싶은 주말의 아침을 반납해야 하고, 친구를 만나 부어라 마셔라 하고 싶은 날들도 참아내야 한다. 휴식을 위해 여행이라도 가려고 하면 남편과 스케줄을 맞춰야 겨우 갈 수 있다. 남편과의 데이트는 엄마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언제쯤이 되면 가능해질까.


회사에서도 '선택'가능한 순간들이 사라지고 있고 주도성을 잃어가는 자신을 느끼고 있다. 아무리 경력이 13년이라도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 이직한 회사의 룰에 맞추다 보니 확실히 삶이 지치고 윤활이 없다. 분명 이전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고, 풍족해진 시간이 생겼음에도 나는 주도성을 잃음으로써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출근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한국 사회에서 불합리하고 불만스러운 것은 견뎌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배웠기에 수개월을 견디고 버텼지만, 이렇게 죽은 영혼이 되어 떠도느니 알게 뭐야? 하는 심정으로 주도적으로 지내보려 한다. 나약하게 휘둘리고 겁먹어서 입을 닫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할 말 하고, 내 방식대로 살아보련다. 막말로 내가, 회사의 노예가 아니지 않은가.






뜬금없지만 영어수업 덕분에 진정 꿈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 진지한 고민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일차적으로 생각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적었던 내용을 지우고 다시 적어 제출했다.


선택하는 삶을 사는 것


돈이 전부인 줄 알고 바라보며 달렸던 지난 시간들, 이제 꿈을 다시 바로잡았으니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선택하는 삶으로 살아갈 것이다.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꿈인 '선택하는 삶'을 위해서 살기 위해 로드맵을 다시 한번 그려보려 한다. 회사부터 시작해보자. 갑작스레 변화한 주도적인 내 모습이 싫어 회사에서 내게 반기를 든다면 다른 회사로 가면 된다. 돈 때문에, 행여 월급이 줄어들까 우려되어 이직이 조심스럽고 고민스러웠지만 이대로라면 정신건강 치료에 벌어들인 돈을 다 써버릴 판이다. 이제, 다시 나를 믿고 선택하며 살자.


영어수업 끊어놓고 정작 하라는 영어공부는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질문을 통해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해 주고 중요한 가치를 알려 준 것 같아서 정말 고마운 수업이 되었다.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작은 선택들을 모여 꿈에 가까워 지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을 싫어할 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