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누가 정하는 건가요

가짜 전문가가 판치는 세상

by 달하
진짜 전문가였던, 故 스티브 잡스


예술작품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전문가, 고고학자 또는 문화재를 발굴하는 발굴 전문가 등 예술학적, 역사적 분야가 아닌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 역사 이런 쪽은 나는 잘 모르겠고 일반 회사원으로 유명한 전문가들에 대해 끄적여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업계에서 유명한 전문가들을 참 많이 봐왔다. 포털사이트에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사람들부터 회사 안에서 유명한 전문가까지. 이들이 정말 진정, 모두 찐전문가란 말인가?






회사 안에서 스스로를 전문가라 칭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아마 더 많은 특징이 있겠지만 크게 생각나는 것은 두 가지 정도 된다. 첫 번째, 대체로 '화려한 용어'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전 회사에 기획 전문가라고 제법 이름 좀 날렸던(물론 회사 안에서만) 김씨. 팀장능력은 충분히 되지만 좀 더 많은 것을 공부하기 위해 아직 팀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스스로' 얘기했다. 햇병아리 신입사원인 나에게는 세상 멋진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병맛이지만 그 당시에는 괜한 후광이 보였다.


자칭 기획 전문가와 함께하는 첫 회의, 김씨는 다른 후배 직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IA 좀 봅시다. 아 저기 레이블링은 잘못된 것 같고, 좀 더 포멀한 걸로 고민해보고 랜딩 페이지는 블랭크로 A페이지로 보내도록 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보기에 '우와 무슨 소리지.. 뭔가 멋있다'라는 마음이 들었었던 것 같다. 이 말을 가볍게 해석해보면 "저기 메뉴명 수정하고 새창으로 A페이지 띄워주세요." 정도가 되겠다. 김씨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굳이 안 해도 될 용어를 뒤섞어가며 왜 이런 문장 구성을 했을까?


가끔 업계 용어 중에는 그 단어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것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단어들이 아님에도 그는 꾸준하게 일부러 어렵거나 멋진 용어를 섞어 문장을 구사했고, 신입사원이나 신규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그를 의기양양하게 만들어주었다. 세상 쓸모없는 단어 선택이거늘... 김씨는 그렇게 제 밥그릇을 챙기고 있었다. '자칭 전문가'로 말이다.


막말로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그에 준하는 삶이라 대부분의 단어가 영어가 더 편했다면 그래도 좀 이해가 된다. 그렇게 화려한 언변 뒤에 숨어 전문가인척 스스로를 높이고 싶었던 것일까. 일부러 어렵게 말하면서 부족한 본인의 지식이 드러내지 않도록 엎어버리려 했을까. 그래, 쓰는 건 자유지만 먼저 한국어로 된 기획서부터 좀 명확하고 알아듣게 썼으면 좋겠다. 지금도 똑같으려나 그 양반.




컨퍼런스를 가도 가짜들이 판친다. 인터넷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갔다. 라인업을 봤더니 삐까뻔쩍하다. 대한민국에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이름 좀 날렸다는 사람들이 연사로 들어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컨퍼런스에 참여한다. 신분증을 제시하면 내 회사와 이름이 입력된 이름표를 준다. 회사에서 매일 차고 다니는 개목걸이(사원증)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름 좀 있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깨에 힘도 제법 들어가 있는 것이 뽄새에서 느껴진다. 일명 '판교라인'이면 말 다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저 앞에서 연사란 말이야 짜식들아 라는 듯한 거만한 표정을 하고는 앞쪽에 앉아 주변을 의식한다. 서로 명함도 교환하고 북 치고 장구 치는 장면이 목격된다.


그렇게 컨퍼런스가 시작된다. 앞에는 교수나 컨퍼런스 주최 측에서 나와 인사이트를 주기 위한 큰 범주 내의 내용들을 주로 다룬다. 디테일한 내용은 어차피 뒤에서 알아서 할 테니 조금은 두리뭉실하게 우리는 이렇게나 밝은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이에요. 모두 같이 잘해봅시다. 따위의 발언을 하고는 내려온다.


그리고 드디어 '실무'의 차례다. 주로 기획팀이나 전략팀, 또는 비즈니스팀과 같이 말을 잘하는 사람들 위주로 강연이 진행된다. 판교라인 회사들에게 아무래도 이목이 집중된다. 초반에는 해외 사이트에서 복붙한 것 같은 알 수 없는 화려한 이론과 방법론을 설명한다. 그러나 곧 이어서 자신들 회사 자랑이 시작된다. 너희 회사 좋은 건 알겠으니까 이제 나에게 무엇이라도 얻을 것을 달라는 눈빛을 보내도 변할리 없다.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강연 전에 내용에 대한 내부 점검 안 하나?


이들은 업계 '전문가'로 초빙된 연사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큰 프로젝트를 많이 했을 것이니 그 소중한 경험에서 나오는 인사이트를 배우기 위해온 것이지 그들의 회사 자랑이나 들으려고 앉아있는 게 아니다. 내 피 같은 돈과 시간이 그렇게 그들의 회사 자랑만 잔뜩 듣다 끝이 난다.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결국 아무 소득을 얻지 못하고 집에 가는 길에 항상 드는 한 가지 생각, '전문가의 기준은 뭘까'






두 번째 특징은 주변에 하나쯤 있는 전문가의 모습일 것이다. 바로 '경험의 객관화'다. 회사에 꼭 하나씩 있는 라떼도 이 유형에 속한다.


"에이 내가 봤을 땐 그건 틀렸어, 이게 맞아"

"아니~ 그건 전에도 내가 해봤는데 어차피 안돼"

"나 때는 그렇게 안 했어. 이렇게 바꿔"

"야, 내가 장담하는데 이렇게 가야 반응 좋아"


회사를 다니면 참 다양한 자칭 전문가를 만난다. 진짜 전문가인지 아닌지 내 알바 아니지만 자신은 나보다 연차도 많고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너를 가르쳐야 할 임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작 듣고 있는 나는 배울 생각이 없는데 끊임없이 나에게 그의 옳은 방식을 주입한다. 그것은 틀렸고, 이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경험은 객관화될 수 없다. '참고자료'일 뿐이다. 물론 경험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 경험이 많다고 자부해도 일반 회사원이 객관적 데이터로 힘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의 경험을 했을 리는 없다. 즉, 그 경험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틀렸다'는 1인 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일궈낸 수준의 경험이 아니라면 발언하기 어려운 발언인데, 회사의 자칭 전문가들은 그렇게 쉽게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한다. 대체 뭘 믿고.


자신의 회사 경험을 토대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하고 수정한다. 자신의 경험과 다르면 기획안은 '틀린 기획'으로 취급당한다. 심지어 자기 회사도 아닌데 왜 맞다 틀리다를 본인이 결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본인의 회사 경험을 토대로 하여 기획안을 수정하고 사장님에게 보고를 한다. 사장님이 수정된 기획안을 보더니 기존에 내가 잡아놓은 방향과 일치하는 발언을 하면 자리로 돌아와 얘기한다. "거봐, 내가 그렇게 가자고 했잖아"


뭐 인마...?


자신의 주관을 객관화하여 우리에게 지 성깔대로 가르침을 주는 것인데 이것을 '곤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경험이나 경력이 제법 있는 상태에서 곤조가 있으면 견딜 수 있다. 아무리 성격이 거지 같고 말이 자주 바뀌어도 결과적으로 일처리가 깔끔하면 그래도 봐줄 만하다. 이들보다 더 큰 문제는 할 줄 아는 것도, 하는 일도 딱히 없는 '어쩌다 유명인'이 된 인간들이다.




이전 회사에서 IT업계 트렌드 세미나, 컨퍼런스만 했다 하면 연사로 초대가 되던 디자인 실장이 있었다. 제법 유명해서 많은 디자이너 실무자들이 그녀의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되고 싶어 했고 그녀는 좀 유명한 회사 사람만 가려서 친구로 받곤 했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그걸 또 팀원들 다 있는데서 얘기를 한다.


그녀는 고인물이었다. 어쩌다 들어온 회사에서 그냥 주는 일만 했었다. 당시에는 딱히 브랜딩을 요하는 디자인 업무도 없었기에 다니기 참 편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자신과 비슷하게 들어왔던 디자이너들은 대부분이 큰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녀는 이직이 번거롭고 귀찮아서 회사에 남아있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회사가 커졌을 뿐이다. 존버의 승리다.


그렇게 성장한 회사에서는 유능한 디자이너들을 고용했고, 그녀는 디자인 실장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듯 가르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그녀의 경험대로 일률적인 디자인을 찍어냈다. 딱히 디자인에 대한 메시지가 담기지 않아도 됐었다. 어쩌다 괜찮게 나온 디자인을 보면 대표에게 자신의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창작물이라고 보고를 한다. 그걸 또 대표는 믿는다. 고인물이 그렇게 무섭다.


컨퍼런스에만 가면 우리의 디자인은 창의적인 생각과 대화로부터 나온다고 발언을 한다. 강연 주제와 아무런 맥락 없는 해외의 사례를 읊는다. 회사 이름이 좋으니 뭘 해도 박수는 우선 받는다. 강연이 끝나면 주변에서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고 묻는다. 맥락이 없으니 전달된 메시지도 없다. 그럼에도 일부 업체들은 몇 번씩이고 컨퍼런스에 그녀에게 연사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최 측의 연사 검열 수준도 의심해봐야 한다.


어쩌다 유명인이 되어서는 컨퍼런스 끝나고 회사로 복귀하면 자신의 위대함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디자인 감각은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야. 나처럼 경험 많은 디자이너들에게나 있는 거지"





비전문가가 판치는 세상이다.

전문가는 누가 정하고 기준이 무엇일까?


라떼는 말이야, 애들 그렇게 안 키웠어 (출처: 삼성생명)


회사뿐 아니라 육아하기 요새 참 힘들다. 내가 키워봤고,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은 가짜 전문가들에게 안 들어도 될 것들을 계속 듣는다. 모든 아이의 성격과 기질이 다른데 어디서 검색해서 주워들은 뇌피셜과 자신의 경험을 객관이라 믿고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고 훈수를 둔다. 신경 꺼라.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키운다.


찐전문가들은 자신을 그다지 내놓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따른다. 스스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겸손하고 내공이 대단하기 때문에 보기만 해도 배울 것들이 넘친다.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사이트를 듣고 있자면 나의 일에 대한 열의 같은 것이 생긴다. 가짜와 진짜는 경험의 양과 질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또한 찐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대중성'을 지닌다. 전문가의 깊이가 매우 깊더라도 받아들이는 청중이 이해 못하는 수준의 어려운 발언을 하지 않는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브런치에도 전문가 참 많다. 글 하나하나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회사에서의 경력과 경험이 오래됐다고 해서 스스로 전문가라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면 안 된다. 반대로 난 제법 경력이 오래됐는데 전문가가 안됐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다. 전문가는 기준도 없고 누가 정하는 것도 아니다. 주변이 알아서 그들을 따르고 있을 뿐. 전문가의 말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정말 대체될 수 없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전문가가 되겠다는 노력을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다 보면 언젠가 말에 힘이 생기고 따르는 이들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그냥, 지금처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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