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한 '줄스'의 꿈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고 평론을 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그저 시청했던 영화가 그 순간 즐거웠다면 그걸로 됐다 생각해버리는 편이다. 때문에 나의 기억 속에 온전하게 남아있는 영화가 몇 편 없다. 남편은 가끔 나와 함께 봤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짜증을 내기도 한다. 분명 둘이 본 기억은 있는데 영화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그 이상의 대화가 안 될 때가 있기 때문. 가끔 미안하긴 하지만, 기억할 것도 많은 내 인생에서 굳이 영화의 모든 줄거리와 의미를 기억하며 살아야 하나 싶다.
그런 내게도 분명 온전하게 기억에 남은 영화가 있기는 하다. 그중 한 편이 영화 '인턴'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꿈꾸었던 모든 이상향을 그대로 담아준 영화이기도 했고, 마침 창업했던 쇼핑몰이 처참하게 망한 지 얼마 안 지나 개봉했었기 때문에 영화 개봉 시기까지 완벽하게 기억에 있는 영화다. 얼마 전 어쩌다 다시 보게 됐는데, 문득 떠올랐다. 찬란했던 쇼핑몰 창업. 과거의 나는 내가 영화 속 주인공 '줄스'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학창 시절,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서비스 프리챌이라는 서비스가 있었다. 그 시절 프리챌 얼짱이었던 사람들이(지금으로 따지면 인플루언서) 싸이월드로 갈아타 '마켓'이라는 걸 열면서 이커머스 시장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고 결정타로 TV 프로그램 진실게임에 개인 쇼핑몰을 성공시킨 '4억 소녀'가 붐이 되면서 너도나도 쇼핑몰 창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 유명했던 프리챌도 싸이월드도 살아남지 못했지만 4억 소녀의 쇼핑몰은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이처럼 쇼핑몰은 많은 사람들에게 '서민인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심어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쇼핑몰의 창업을 많은 사람들이 권하고 있다. 사실 운 좋으면 성공신화 쓰는 게 실제로 가능하기도 하다. 지인도 회사에서 부업으로 시작해 시원하게 퇴직서를 제출한 경우도 봤으니 말이다.
그러나 쇼핑몰 창업은 정말 권장할 일인가.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쇼핑몰 창업의 약 80~90%는 망한다. 왜냐! 쉽게 생각하고 덤볐기 때문에 생각처럼 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사업자 및 통신사업자 등록, 로고 상표권 체크, 세금 문제, 터무니없이 센 오픈마켓 수수료, 콘텐츠 저작권, 상품공급 이슈 등 처리해야 될 것도 확인해야 될 것도 끊임없이 나온다. 쇼핑몰은 생각처럼 쉽게 덤벼들 것은 못된다.
때문에 쇼핑몰 창업을 쉽게 툭 권장할 것은 아니라 판단한다. 그럼에도 쇼핑몰을 창업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한때 나에게는 인생의 목표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시 나는 한 게임회사의 모바일 기획팀에서 근무를 했었다. 게임회사의 기획자는(게임 기획을 제외한) 게임에 대한 프로모션이나 공식 사이트를 만드는 업무가 주 업무였는데, 사실 게임 사이트들 보면 알겠지만 주로 그래픽 이펙트을 넣거나 게임 정보를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나는 어느 정도 규격화된 프레임 안에 콘텐츠만 잘 작성해내면 됐고, 딱히 어려울 일이 없었다.
그렇게 지루하게 일하던 하루, 지인으로부터 쇼핑몰을 차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고 너도나도 한다니까 그냥 한 번 찾아볼 심산으로 '쇼핑몰 창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봤다. 어차피 회사 분위기가 야근은 해야 되는 분위기니 시간은 넘쳐났고 쇼핑몰에 대한 정보수집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국세청 사이트에 [사업자등록 신청] 메뉴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쇼핑몰 창업이 '직장인 부업' 이라는데 진짜인가 였다. 내가 세무사도 아니고 사업자등록을 하면 실제로 회사에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식인 피셜로 회사에서는 내가 사업자 등록을 한 것을 알 수는 없다고 한다. 부업 금지가 사칙에 있는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만, 전산상으로 확인할 길은 없다는 것. 단, 매출이 너무 많아져서 세금폭탄이 되는 경우 회사에서 의심해볼 여지는 있다고 했다. 뭐, 매출이 그 정도로 늘어서 회사에서 알게 될 정도면 사직서로 종이비행기 접어서 회사에 던지고 퇴사해도 되지 않겠나.
그렇게 회사원이 해도 안전하다는 쇼핑몰 창업을 위해 '사업자등록'을 시전 했다. 대표님이 됐다. 기분이 이상했다. 회사에서는 개처럼 노예처럼 일하는데, 내가 사장이라니! 당시 '자포스' CEO의 인터뷰에 푹 빠져있었던지라 나도 저런 쇼핑몰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꿨었더랬다. 한국에서도 자포스의 신화를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자포스(Zappos): 미국의 신발 전문 쇼핑몰, 2009년 아마존이 인수하며 화재가 됐던 회사다.
그 꿈을 이룰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렇게 한 단계씩 밟아 나가는 거라고, 자포스도 처음에는 이렇게 작게 시작했을 거라며 열의를 다졌다. 이렇게 한 계단을 올랐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평일에 여유시간은 넘쳐나지만 밖으로 나돌아 다닐 시간은 없는 회사생활로 판매할 아이템을 외부에서 탐색할 수가 없었다. 결국 가장 정보가 많고 좋아했던 '의류'를 선택했고 인터넷 상의 도매사이트를 발견, 사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소심한 성격으로 직접 대면해서는 절대 사입을 못했겠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수많은 정보들을 탐색하고 그들만의 용어로 소통을 한 뒤, 인터넷 도매처에서 첫 사입을 했다.
공급처까지 갖추니 문득 나의 이 상황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도매로 물건을 공급하는데도 문제 없었고 이 상품을 담아낼 DSLR이나 렌즈와 같은 장비도 탄탄했다. 게다가 가장 큰 장벽이라는 쇼핑몰을 만드는 작업도 문제가 없었다. 직업이 IT회사 기획자였고, 과거 웹디자인의 경력이 있었기에 인터넷 쇼핑몰 차리기에는 최적화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느낌이 좋다. 내 감각이 똥만 아니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쇼핑몰을 만든다고 해도 내 쇼핑몰로의 유입은 없을 것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때문에 명목상 쇼핑몰을 먼저 그럴듯하게 갖추고 오픈마켓으로 판매를 시작하게 됐다. 첫 판매처로 G마켓과 11번가를 선택했다. 나름대로 언론 데이터 분석 상 당시 두 개 오픈마켓이 여성의류에 가장 강세였기 때문이었다. 내 판매상품의 메리트는 '나'를 기준으로 설명한 상세페이지였다. 보통은 숫자로 그 의류의 품이나 길이를 알려주기 마련이지만 '나의 체형은 어떻고 키가 이 정도 되면 길이는 여기까지 온다. 팔을 벌렸을 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품이 넓다' 식의 주관적 정보를 담았다. 그렇게 약간의 차별화를 두고 오픈마켓의 서브 키워드로 광고를 돌렸다. 판매 시작!
[G마켓] 판매자님, 1건의 주문이 있습니다. 상품을 배송해주세요.
어김없이 야근을 하던 어느 날, 문자가 울린다. 처음에는 내가 오픈마켓으로 뭘 샀더라 생각을 했는데 다시 잘 보니까 상품을 '배송'해달란다. 오픈마켓에 상품을 올린 지 10일 만에 발생한 일이다. 첫 주문이다! 야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지. 일을 대충 정리하고 집으로 달려가 상품을 포장하고 감사하다는 손편지까지 써가며 택배를 포장했다. 다음날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수십 번 주소를 확인한 뒤 송장번호를 G마켓 판매자 시스템에 입력한다. 첫 배송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오픈마켓 판매를 시작한 지 약 3개월이 지났을까, 정말 내가 쇼핑몰에 최적화된 인재였던 건지 생각보다 판매가 잘되기 시작했고 부업으로 200만 원이라는 금액이 통장에 찍히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세상에! 나는 생각보다 난놈이었어!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매출은 매달 상승 곡선을 그렸고 매출이 500만 원을 넘긴 6개월 차. 인생 한방, 결국 20대 막바지에 회사를 때려치운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까지의 노예 생활도 안녕할 줄 알았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쯤, 누구나 알고 있는 저명한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그런데 일이 좀 잘 풀리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나를 과대평가하기 시작하며 주변의 환경이 눈에 잘 안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성적 판단이 잘 안된다. 쇼핑몰에 최적화된 완벽한 조합체라고 생각했던 나, 예상하지 못한 사회적 이슈들을 간과했던 것이다.
쇼핑몰 창업을 하고 나서 가장 대비를 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이 소비침체의 장기화가 되면 자영업자들은 정말 살아남기 힘들다. 최근 유명했던 1세대 쇼핑몰들이 하나둘 폐업하는 것을 보며 정말 코로나가 무섭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다른 시간적 문제는 내가 좀 덜자고 덜먹고 일하면 된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는 피할 수 없다. 때문에 미리미리 잘 대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하루에 3~4시간 눈만 겨우 붙여가며 밤낮으로 일했고 꾸렸던 쇼핑몰. 1인이기 때문에 인력 비용은 들지 않았지만 포장을 위한 자재비용, 재고를 쌓아두는 창고 또는 사무실 비용, 택배비용 등 부수적으로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들은 상당했다. 밥도 거의 빵과 우유로 때우며 그렇게 열심히 꾸려서 몇 명의 일을 혼자 다 해냈는데 사회적 이슈는 내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 코로나까지의 침체는 아니었지만 2014년, 나 역시 직격타를 맞으며 매출은 감소했고 결국 생활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매출은 떨어졌다. 결국 폐업을 했고 그 해, 다시 취직을 했다.
영화 '인턴'에 나온 벤의 대사가 있다.
1년 반 전에 혼자 창업해서
직원 220명의 회사로 키운 게
누군지 잊지 말아요.
내가 꿈꿨던 창업의 모습은 영화 '인턴'의 줄스의 회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창업에 대한 원대한 꿈을 지니고 있지만 나에게는 자포스라는 명확한 롤모델의 회사가 있었고, 조금씩 따라가다 보면 그 정도는 아니어도 내가 원하는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쇼핑몰을 하기 위한 대부분의 기술과 환경이 갖춰져 있으니 잘될 거라고 믿었던 나의 착각도 있겠지만 운도 따르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성공한 사업가인 친오빠가 말하길 운도 실력이라 했다. 준비된 사람에게 운이 따랐을 때, 그 합이 좋은 경우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일부 사람들은 쇼핑몰이 무슨 창업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하나의 쇼핑몰(회사)을 차리기 위해 공식적으로 밟아야 하는 대부분의 절차를 거쳤고 이것은 창업이 맞다고 판단한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도매매같은 덤핑 형식의 재판매 사업모델은 부업처럼 느낄 수 있지만, 나의 쇼핑몰 하나를 브랜딩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단순 부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는 쇼핑몰의 미래를 보고 이커머스 업계를 선택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분야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다시 기회가 왔을 때 다가온 행운의 여신을 놓치지 않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30대 중반밖에 안됐다. 한낱 꿈으로 안타깝게 막을 내린 내 인생의 한 편의 영화. 한국의 '자포스' 신화를 쓰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이루지 못한 성공한 창업가, 그 찬란한 꿈의 반짝임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