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첫 지점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어느 치킨집 사장님이다. 그는 우리 지점의 '요주의 인물'이었다. 주기적으로 창구에 나타나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소동을 피우곤 했기 때문이다. 늘 흥분한 상태로 대기표를 쥐고 기다리다 그가 한 일은 언제나 같았다. 체크카드 재발급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지체장애가 있는 분이었다. 배달 전문 치킨집을 운영하며 직접 오토바이를 탔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카드를 분실하니 창구에 올 때마다 마음이 급해 소리를 지르곤 했던 것이다. 보다 못한 책임자분이 아예 나를 전담 직원으로 지정했다. 나는 체크카드 재발급 서류를 한 뭉텅이 미리 받아 두었다가 그가 오면 재빨리 재발급해주었다. 그렇게 몇 번의 '특급 재발급'이 오가자, 그는 점점 마음을 열었다. 나중에는 창구에 앉아 쑥스러운 표정으로 멋쩍게 웃으며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곤 했다.
그는 닭 튀기는 직원 한 명과 배달하는 본인, 딱 둘이서 가게를 꾸려갔다. 일 년 중 설날과 추석 당일, 딱 이틀만 쉬고 매일 오토바이에 올랐다. 책임자분이 “사장님, 주머니 깊숙이 좀 넣고 다니세요”라고 핀잔 섞인 걱정을 하면 그는 “잔돈 거슬러 주다 보면 자꾸 흘리네요” 하며 헤헤거렸다.
조사해 보니 그는 대부업체에서 고금리 신용대출을 쓰고 있었다. 지체장애인이라는 편견과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1금융권 문턱을 넘지 못한 탓이었다. 우리지점에서는 그의 363일치 성실함을 담보 삼아 은행 대출로 대환을 진행했다. 그가 매일 흘리고 다니는 체크카드의 횟수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를 증명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계획적으로 부도를 내고 은행에 피해를 끼치고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자칭 '회장님'들보다, 매일 닭 냄새를 풍기며 창구에 오는 그가 훨씬 더 은행과 고객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무탈하게 전액 상환을 완료했다.
하루는 그가 웬 공문 하나를 들고 방문했다. 구청에서 주최하는 지체장애인 남녀 만남의 광장 안내문이었다. 참가비를 내러 온 그에게 물었다. “사장님, 이 날은 장사 어떡하시게요?” “에이, 하루 쉬어야죠.” 일 년에 단 이틀 쉬는 이 남자에게, 여자를 만나는 날은 가게 문을 닫을 만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날이었던 셈이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잘 다녀오시라고 응원하니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며칠 후, 그는 어김없이 체크카드를 잃어버려 다시 창구에 나타났다. 모임 결과가 어땠냐고 넌지시 물으니 그가 답했다. “거 가보니까 여자는 별로 없고 남자만 바글바글하더라고요.” “어딜 가나 남녀 성비 안 맞는 건 똑같네요.” 우리는 마주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이제는 전화 주문 대신 배달 플랫폼이 세상을 점령했다. 직접 배달을 뛰며 손님과 잔돈을 주고받던 그 시절의 치킨집 사장님들은 그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났을 것이다. 성실함 하나로 고금리 대출을 버텨내던 그 사장님은 지금 어디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주머니에 카드를 잘 챙겨 넣었을지 모를 그의 뒷모습을 잠시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