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사회
아래는 말이 없다
주먹, 외로움, 위계 내가 저항하고자 했던 세 가지.
주먹 앞에 있었던 중학시절, 입을 열지 못했다.
외로움 속에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 내 말을 꺼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위계 사회인 대학시절, 드디어 내 말을 꺼냈다.
자신을 지키고자 한다면 주먹 앞에 입을 닫아야 한다.
피하고 숨는 것으로 자신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
허나 그 위험한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몸이라면 숨어도 좋다.
하지만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있다면, 옳은 것을 지키고자 한다면 주먹에 맞서 싸워야 한다.
안전한 세상이 되는 것은 위험을 피하는 안전교육이 아닌, 오로지 위험을 없애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약자는 입을 열 수 없다.
입을 여는 자가 강자이다.
윗물은 더럽다
절대권력은 부패한다.
절대적이란 그 누구도 그 힘에 대항하거나 토를 달 수 없다는 말이다.
소통이 없는 힘은 폭력이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이 나라가 친일파를, 불의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로 썩어버린 윗물이 되었다.
깨끗한 물도 고이면 썩어 버리는데 썩은 물이 위에 고여버렸다.
윗물이 더러우면 아랫물도 더러워진다.
더러워지기 전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말하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 그런 시스템을 가진 사회를 말이다.
전교어린이회
난 이전 학교에서 전교어린이회를 2년 동안 했었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의 '자치'에 초점을 맞췄었다. 학교의 행사들에서 스스로 의견을 내고 결정해보고, 그 일의 추진도 아이들이 역할을 나누어 진행했다. 각종 캠페인, 선포식, 작은 음악회, 학예회, 운동회 준비, 진행 등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려고 했다.
아이들의 건의 사항을 듣고, 회의록에 결재라인을 달아 교감선생님께 알려드리고 해결해주려고 노력했다. 불가능한 사안은 왜 되지 않는지 아이들에게 이해시키려고도 노력했다.
명찰 사건
그러다 내가 '자치'의 의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하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명찰 사건'이라 하겠다.
교장, 교감선생님이 직원회의에서 아이들에게 명찰을 다는 것을 제안했다. 자신의 이름을 달고 있으면 자신의 행동에 더 책임을 질 것이고 다른 학년 학생도 이름을 부를 수 있으니 생활지도에도 용이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대부분 반대를 했다. 아이들의 이름은 동학년 선생님들은 거의 다 외우고 있는데다 아이들의 명찰을 다는 것은 인권과 관련하여 많이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 좋지 않다고 말이다.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된 것 같았으나 교감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어린이회의에 명찰을 안건으로 올려보라고 하셨다. 되도록 긍정적으로 말이다. 난 안 그래도 상시평가로 한 번 부딪혔던 터라 또 부딪히고 싶진 않았다. 내가 앞에서 말로 싸우는 건 나만 나쁜 놈으로, 나의 패배로 끝날 것이기에. 우선 "네"라고 대답하고 아이들의 표로써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회의를 열어 아이들에게 이 안건에 대해 설명하다 이 회의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말해준 명찰의 장점만 아이들에게 부각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중, 고등학생들처럼 명찰을 달고 있는 멋진 모습만 상상했다. 아이들은 명찰의 목적이 본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함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명찰을 시행하면 그 관리와 책임이 학생들에게 있음을 말해줬고 다행히 명찰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이들의 의견을 꺼내고 반영해야 할 어린이회의가 반대로 위의 의견을 아래로 전달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한 일도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난 내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권력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으므로.
사람의 문제
어떠한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해도 언제나 악용될 수 있다. 올바른 방향을 잡고 이끌어줄 사람이 없다면 말이다.
아이들이 적어놓은 의견을 한낱 종이 따위로 무시해 버린다면 어린이회의 따위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위에서 원하는 바를 아래로 전하는 어린이회의라면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아래의 글은 이미 썼던 '교육에서 민주주의 죽이기'이다.
우리 학교는 9개의 방과 후를 했다. 학년말이 되어 설문조사를 했다. 통기타, 영어가 8, 9등을 했다. 아이들은 혼났다. 민주주의는 죽었다.
아이들이 혼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힘들다는 이유로 '중요한' 방과후를 싫다고 했으니까..
영어는 '공부'로서 중요하고 기타는 '학교특색활동'으로서 중요하다.
아이들이 '왜' 싫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안다고 해도 그것보단 '교육'이 중요하단다..
그래도 올해는 통기타도 아이들 크기에 맞도록 작은 사이즈를 구입하고, 영어 강사도 바뀌었다. 하지만.. 지도자, 선생님,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변할 수 있으려나.. 아이들의 입이 이미 닫힌다면..
나라의 민주주의를 얘기하긴 너무 멀다. 난 아직 내가 있는 이 학교조차 민주화하지 못했으니..
난 어리고 힘없는 일개 '교사'다..
그래도 내 역량만큼 목숨 걸고 입을 열리라..
이번 해에는 내가 자진해서 어린이회를 맡는다. 자기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할 '시스템'을 제대로 지켜 주고 싶다.
내가 전교 어린이회의를 맡아하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학생이 교사에게 말해서 들어주고 말고는 그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전교 어린이회의는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정당하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구축하라
정도전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국가의 시스템.
권력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것.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길을 여는 것이다.
권력 내에서도 그러할진대 아래에서 위로는 오죽하겠는가.
보장된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말하는 것이 죄가 된다.
부모에게 자기 말을 하는 아이나 선생님에게 말대답을 하는 학생은 예의가 없다.
상사에게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저 좋은 윗사람을 기대하는 수밖에..
시스템이 있어도 악용될 수 있다고 했다.
하물며 그런 시스템조차 없다면 말할 기회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허나 그런 시스템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이 모습 또한 권력에 맞서 싸운 수많은 목숨이 있었기에 찾아온 것이다.
시스템이란, 말을 하고 있는 우리 자체이다.
모두가 말할 수 있는 세상
주먹의 두려움을 이겨낸 자만이 힘 앞에 자신의 말을 할 수 있으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자만이 친구에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다.
관계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사회를 이기고, 위계를 깰 수 있는 사람이 권력자를 이긴다.
폭력을 당한 아이가 그 폭력을 그대로 행사하고, 악폐습을 당했던 이등병이 병장이 되면 그 악폐습을 더 하게 된다. 폭력 앞에 저항하지 못하고 적응해버렸다면 말이다.
권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면 나도 그 권력을 옹호하게 된다. 교장이 되어야만, 권력을 가져야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부정한다.
꼬우면 니가 선생하던가.
꼬우면 니가 교장하던가.
이런 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이 민주화되는 것은 위에서 아래를 허락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권력에 허락받는 민주주의 따위는 없다.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이 입을 열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 입을 여는 것은 교사가 아래로 귀를 열고 위로 입을 여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