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매이는 것과 과거를 여는 것

14. 후회와 반성

by 삐딱한 나선생

강신주의 다상담

당신의 과거를 참을 수 없는 애인 - 59p


얼마전, 헤어진 남자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어떻게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고 그 이후로 소원해졌다.



철학자 강신주는 이를 받아주지 못하는 남자를 탓했으나 난 여자를 탓하고 싶다.

난 당신의 과거는 참을 수 있다.

허나 과거에 머물러 있는 당신을 참을 수는 없다.



과거에 있는 나


'후회와 반성' 글에서 후회는 한 개의 자아, 반성은 두 개의 자아라고 했다.


헤어진 과거의 내가 너무 불쌍하고 헤어진 남자친구가 너무 밉다.

그 아픔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 얼마가 정확히 몇 일인지, 몇 달인지 난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아직 난 아프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결혼이 나에게 충격적이라는 것은 내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과거의 미움과 슬픔의 감정이 지금의 내 자아까지 이어져있는 것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감정을 가진 '하나의 자아'이다.

그리고 그 자아가 현재의 남자친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의 아픔들을 감싸주고 이해해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늪에 빠진 나를 계속 위로해주고 지켜달라는 것은 그 사람마저 그 늪으로 끌어당길 뿐이다.



과거를 여는 것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전제는 지금이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자위적인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되기 힘들다.

당신 앞의 그를 '지우개'정도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과거를 여는 것은 낡고 더럽혀진 공책을 펴는 것이다.

그 안에는 정말 지우고 싶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아무리 깨끗이 지운다고 해도 행복한 말들이, 그림이 생기지는 않는다.


당신은 지우기 위해 폈는가 쓰기 위해 폈는가.

적어도 지금의 사랑이 '새로운 연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낡은 종이에라도 새로 쓸 여백이 필요하다.



미래로 가기 위하여


과거를 여는 것은 진정한 나를 여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가진 결과나 겉모습이 아닌 내 삶의 과정들을 여는 것이다.

나의 아픔, 슬픔, 어쩌면 치욕, 더러움까지 온전한 나를 당신에게 연다.


허나 당신이 과거의 늪에 있기에 꺼내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 늪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기에 꺼내 주는 것이다.

당신의 손이, 마음이 나를 향하는 것이라 믿기에..


당신이 나에게 올 때, 당신이 가진 상처와 아픔들도 함께 온다.

하지만 그 아픔조차 감당하려 한다.

당신이 나를 통해 과거의 당신을 죽이고 현재에 태어나, 미래로 함께 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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