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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Mar 23. 2017

대화의 수준

누군가를 만난다.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안에는 웃음도 많다.

하지만 무언가의 한계를 느낀다.

대화가 올라가지 않는 한계를 말이다.



생존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나면 우리는 안부를 묻는다.

"잘 지냈냐. 별일 없었냐."

안녕하신지, 우린 생사여부가 중요한 민족이다.

한참 서로 살아온 일을 확인하고 나면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다.


일로서 하는 대화는 모두 생존에 들어간다.

자신과 가족이 생존하기 위한 돈을 목적으로 하니까.

물론 직장에서의 모든 대화가 생존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계라면 분명 생존이 아닌 더 높은 수준의 대화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난 부모님과의 대화가 답답했던 것 같다.

공부, 직장, 결혼, 안정적인 삶.

그저 살아남으라는 대화들이 대부분이었다.

웃고 떠드는, 그런 만족적인 대화도 많지 않았다.


오랜만의 만남이 그저 살아있는지를 묻는 대화로 끝난다면 어떻겠는가.

직장의 모든 대화가 일로만 가득하다면 난 컴퓨터와 다를 바가 무언가.

당신이 하는 대화가 생존에서 끝난다면 삶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만족


우리는 생존을 넘어 만족스러운 대화를 하기도 한다.

어제 있었던 핫한 뉴스는 아침 커피타임에 중요한 씹을 거리가 된다.

잘 나가는 드라마, 연예계 뒷얘기, 개그 프로도 좋다.

대화가 유쾌하고 즐거울 수만 있다면 말이다.


웃고 떠드는 수다가 관계를 가깝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대화가 가득하다면 삶 또한 얼마나 만족스럽겠는가.

하지만 난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아무리 즐거운 대화라도 속 빈 강정 같은 느낌이다.


그저 떠도는 가십거리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연예인이 사귀다 헤어진 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와 너의 밖에 있는 이야기들로 우리를 채운다면, 대체 우리의 대화는 무엇이란 말인가.



실존


물론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부모의 삶이 그랬듯, 생존의 대화가 대부분일 것이다.

만족의 대화가 곳곳에 있다면 그래도 살만한 삶이라 위로해야 할지도.


하지만 그 삶 속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당신의 삶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

당신의 꿈을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 말이다.


오늘 하루, 당신은 어떤 말들을 하고 살았는가.

당신이 말을 많이 했건 적게 했건 중요치 않다.
아무리 많이 웃고 떠들었어도 그뿐이다.
대화의 질이 곧 삶의 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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