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흐릿한 꼬꼬마 시절, 놀다 보면 목이 말랐다.
내 집은 5층이었고,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난 1층 문을 발로 차며 물을 달라했다.
엄마의 말론 그렇게 물을 먹고 또 놀고 그랬단다.
어릴 적 누구나 그랬듯, 순수했던 것 같다.
그냥 목이 말랐고, 물을 주셨고, 그래서 찾았다.
그리고 난 아직도 그때의 순수함이 남아있나 보다.
순수한 마음
난 순수하게 살고 싶다.
좋은 것을 좋다고 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하겠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겠다.
하지만 순수함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날 좋아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한 잔 기울이련다.
억지로 먹이려는 그런 자리는 거부한다.
주말에 술을 한잔 했다.
교장선생님, 교무부장님 셋이 남았다.
누군가에겐 지옥 같은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난 좋았다.
내가 그냥 사람으로서 그들을 좋아했듯, 그들도 나를 사람으로 좋아해 줬다.
어리다고 함부로 하지 않았고, 경청이 아닌 대화가 되는 시간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먼저 들어갔고, 교무부장님은 집으로 가자했다.
난 더 먹고 싶었고, 불러 주셨고, 그래서 갔다.
어린날의 그 발길질처럼.
교직사회
어떻게 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내 순수함만으로 가능했겠는가.
나에겐 세 가지가 크게 느껴진다.
1. 모든 평교사는 같은 직급이다.
교감, 교장을 제외하면 나이, 경력은 있어도 다 똑같은 교사다.
물론 학년부장, 업무부장도 나뉘어 있지만 기본은 담임이다.
각자 한 교실을 맡는 교사로서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권위적인 사람도 있지만 인턴, 사원, 대리로 올라가는 일반 직장에 비할 것인가.
2. 거의가 같은 동문이라는 것.
일반 회사에서 정말 친해지지 않는 한 형이 될까.
하지만 교직은 같은 교대, 평생 가는 식구라는 개념이 있다.
대학교 때는 1학번도 '하늘 같은 선배'였지만, 현장은 다르다.
내 경험으로 대충 10살까지는 사석에선 다 형이다.
물론 형이랍시고 아래로 함부로 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면 차라리 빨리 손절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대부분은 형으로서 베풀고, 알려주려 노력했다.
3. 교장이 날 자를 수 없다.
흔히 이런 말이 있다.
'승진만 포기하면 교직이 편해진다.'
내가 윗사람에게 잘 보여서 뭘 할 생각만 없으면 당당해진다.
그리고 교사는 다행히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적어도 내 밥줄이 끊길까 비굴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평등하되 존중하는 관계를 맺으며.
그렇다고 모든 교사가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인간적 사회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회에도 나쁜 사람은 있다.
교회에도 나쁜 사람이 있고, 천국에도 악마가 있다.
교사라고 해서 다 따뜻하고 교육적인 사람만 있지도 않다.
때론 권위적이고 자신의 옳음만 강요하는 사람도 있다.
난 그저 내가 좋다고 느끼는 사람을 곁에 둘 뿐이다.
내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어떤 사람은 교장에게 편하게 대하는 나를 건방지다 했다.
또, 윗사람에게 할 말 하는 나를 줄이라고 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말에 주눅 들었다면 지금 내 곁의 부장과 교장은 없다.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 가치, 그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당신의 삶에 천사 하나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옥 같은 세상이라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위계로 가득한 직장이라도 사람으로 보이는 한 명은 있을 것이다.
날 사람으로 대해주는 한 사람만 곁에 있다면, 그래도 그 직장은 살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