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앉아 있어."
식당에서 아이에게 하는 말을 듣는다.
그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안다.
행동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둘째는 손으로 집어 먹는다.
도구를 쓰는 게 불편하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부모에게 불편하다.
흘려놓은 뒤처리는 내 몫이니까.
심지어 그 손으로 날 잡기라도 하면..
확실히 첫째는 안 흘리고 잘 먹는다.
둘째에 비하면 훨씬 나은 모습이다.
그렇다고 둘째에게 그렇게 요구할 수 없다.
행동 하나하나를 가르치는 교육도 꼭 필요하다.
그러나 행동의 모양에만 초점을 두면 그르칠 수 있다.
아이의 능력과 한계, 그 가능성의 범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범위
두 돌도 안 된 아이가 흘린다고 혼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직 손을 사용하기에 미숙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 바르게 앉지 못하는 아이는 어떤가.
'바르게 앉는다'
당신의 머릿속엔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당신이 떠올리는 한 동작을 아이가 수행할 수 있을까.
어른이 뛰기 싫은 만큼, 아이는 뛰고 싶어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너무 잔인하다.
아이의 정신적 미성숙을 이해한다면 말이다.
하나를 지시하는 건 쉽다.
하나의 행동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부모의 생각이 열리면 아이는 선택할 수 있다.
자율
물론 무작정 뛰게 두란 말은 아니다.
다만 되는 행동 하나를 주지는 않길 바란다.
되지 않는 행동까지의 한계선을 그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식당에서 먹는 것도 흥미가 없을 때가 있다.
우리 테이블에서만 돌아다닐 수 있다.
쿵쿵 거리면 방석을 두 개 깔아준다.
둘째는 손으로 먹을 자유가 있다.
흘린 건 다시 주워 먹되, 날 만지지만 않으면 된다.
난 내 밥만 먹으면 되기에 외식을 하면서 힘들지 않다.
숙련된 양치기는 호루라기 하나로 양을 모은다.
일일이 쫓아가거나, 목줄을 매지 않는다.
양 스스로 돌아오도록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