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분명 그걸 즐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널 화나게 하고 있구나.
그럴 땐, 멈추어 멀어지는 시간을 가져보자.
목욕
회식이나 특별한 일을 제외하곤 내가 주로 딸들을 씻긴다.
한 명을 씻기면 딴 놈이 놀고, 내가 씻으면 둘이 논다.
그 시간을 위해 장난감이 필요하다.
첨엔 칫솔, 컵, 빗 이런 게 장난감이었다.
나중엔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갖고 오게 해 줬다.
그런데 장난감은 많아지는데, 놀게 많은데도 분쟁은 더 늘었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느니, 내가 갖고 왔냐는 등 소유를 따지기 시작했다.
웃긴 건 그 많은 것들 중에 누가 고르면 꼭 욕심이 생긴다는 거다.
본능적으로 경쟁, 기회비용, 희소가치를 아는 건가..
난 분쟁이 생기는 장난감을 치우겠다고 경고했다.
난 너희가 즐겁게 놀겠다 해서 장난감을 주었다.
난 너희를 싸우게 만들려고 준 적이 없다.
목적
우리 집은 TV를 거의 안 본다.
기본 수신료 2500원만 낸다.
하지만 할머니 집에 가면 해방이다.
첫째는 TV를 보면 하루 종일도 본다.
우리도 할머니 집 왔으니 좀 편하게 둔다.
문제는 TV를 보면 볼수록 짜증이 오르는 거다.
"밥 먹으러 와~"이러면 "이거 다 보고!!"
"이제 옷 입고 준비해야지~"이러면 "싫어, 안 갈래!!"
자기가 좋아서 보는 TV가 오히려 화나게 만드는 대상이 된다.
물론 아이 입장에선 즐거움을 주는 대상을 끊게 만드니 화날 만도 하다.
하지만 난 그렇게 널 만들려고 TV를 보게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의 목적이 변질되는 순간, 그건 독이 된다.
화목
둘째도 5살이 되니 둘이서 앵간히 논다.
얼마 전엔 숨바꼭질을 한다고 숨고 찾고 했다.
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 첫째가 소리를 지른다.
첫째 입장에선 둘째 하는 게 맘에 안 드는 거다.
숨어도 다 보이고, 규칙이고 뭐고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 첫째는 분노 폭발, 동생은 언니가 무섭고, 난 지친다.
"연수야, 이렇게 화를 낼 거면 차라리 따로 놀아.
너 혼자 놀다가 심심해지니까 동생을 데리고 노는 거잖아.
처음엔 동생하고 즐겁게 노는 거 같았는데, 지금은 잡아먹으려는 거 같아.
그렇게 무서워져 버리면 동생은 언니를 무서워할 거고, 난 널 도와줄 수 없게 돼."
네가 원한 것이 너의 행복을 막는다면 멈추겠다.
껌을 달라고 떼를 쓰면 난 껌을 줄 수 없다.
새 옷이 널 화나게 하면 사주지 않는다.
요샌 씻을 때 둘이서 장난하며 논다.
"밥 먹자~"하면 TV 일시정지를 누르고 온다.
놀이 자체보다 동생과의 즐거움을 생각할 때, 우린 함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