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무서워서 애를 가르치지
애들도 안 깬 시간이라 아주 편안하게.
하지만 고요한 자유와 함께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낀다.
아빠를 치우지
난 매운 라면을 먹으니 애들은 튀김우동 하나 끓여준다.
어차피 컵라면에 물 하나 더 붓는 거,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면 문제다.
애들이 학교 갈 준비도 안 하고 달라하거나.
굳이 건강에도 좋지 않은 인스턴트를 먹인다고 하면 말이다.
출근 준비로도 바쁜데 애까지 변수가 생기면 짜증 난다.
그 원인을 아빠가 제공하니 화살이 돌아오는 것도 당연하다.
전날에 술이 진탕 돼서 온 것도 참아줬는데 아침까지 열 받게 하나.
"애들 안 보이는데 가서 먹어! 아니면 아예 애들 잘 때 먹던가!!"
정말 분노를 일으키는, 철없는 '남자 어른 아이'를 전부 감싸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빠를 치우면 아이가 떼 부리는 현상은 당장 없어도, 그런 태도는 고치지 못한다.
애를 가르치지
친척 아들은 사이다를 좋아한다.
눈에 보이면 꼭 먹으려 하기에 숨겨야 한다.
방에 가서 몰래 먹으라는 아내에게.. 고마우면서도 안타까웠다.
솔직히 내 아들이면 사이다를 적당히 먹도록 가르쳤을 것이다.
"아까 하나 먹었으니까 안 돼. 이번 한 모금만이야."
나를 숨길 게 아니라, 가르칠 내용으로서.
우리 애도 사탕 달라고 떼쓴 적 많았다.
만약 그때마다 사탕을 치우는 방식으로 대처했다면.
지금도 아이가 욕구하는 모든 건 남겨놓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혼자 먹으려 했으면 치사한 거다.
애가 자기는 먹어놓고 더 달라고 하면 지나치다.
치사하지 않게 주고, 지나치지 않게 주자.
자극을 없애지 말고, 조절을 가르치도록.
누구나 이기적
그래. 어쩌면 나도 뻔지르르하게 써 놨지만 이기심을 포장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내 먹을 거 눈치 안 보고 편하게 하려는 목적이니까.
또, 나에겐 애를 가르치는 게 더 쉬운 방식이니.
그러니까 그 누구든, 자신이 지금 하는 방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정말 옳다고, 합당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을.
과거에 남편이 아내만 닦달했듯, 지금은 아내가 남편을 쉬이 갖다 버리는 건 아닌지.
난 요즘 시대에 비추어 제법 떵떵거리고 사는 것 같다.
애보다는 내가 세니, 아내의 가르침도 나보다는 아이로 흐른다.
적어도 라면 먹는 민폐 캐릭이 아닌 가르치고 같이 먹는 아빠니까.
철없는 남편을 가르칠 것인가.
떼쓰는 아이를 가르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