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밥은 누룽지가 돼요

by 삐딱한 나선생

부부는 애 땜에 산다고 한다.

꼭 미운 관계에 있는 게 아니어도.

배우자보다 애가 더 중요해지는 경우가 있다.



목숨


우리 부부는 35살이다.

아직 살 날이 많지만, 내 아이보다는 아니다.

객관적으로 놓고 봐도, 나보단 아이가 사는 게 낫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지 않은가 싶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내 목숨을 아이에게 주려는.

가족이 물에 빠졌다 해도, 내 목숨보다, 아내보다, 아이를 먼저.


얼마 전 삼척 강 줄기에 황어 떼가 올라왔다.

알을 낳으러 먼길을,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왔다.

다리 위 쪽에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알을 낳고, 힘이 빠져 다리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이것이 어쩌면 동물적 본분인지 모르겠다.

우리 부부도 아이를 낳고 삶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

내 앞의 작은 생명은 우리의 목숨을 걸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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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여기서 마치면 아이를 위한 감동적인 이야기로 끝날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의 시작은 사실 반대였다.

아내가 아이보다 날 더 소중히 여기는 그런 느낌에서.


술을 마신 다음 날은 라면을 먹는다.

국물에 밥을 말고 김치를 얹어야 짱이다.

근데.. 밥이 애매하게 많아서 먹긴 부담, 남기긴 민망.


아내는 말했다.

"많으면 남겨. 애들 누룽지 해주면 돼."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제목이 되었다.


TV에선 "유통기한 지났어?? 니네 아빠 먹이면 돼!"라고 농담 반 말한다.

난 통계를 내 본 적도 없고, 다른 부부는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다만, 우리 부부의 기본 삶엔 아이보단 서로가 우선이다.



서로


어쩌면 1문단과 2문단은 서로 모순적 내용으로 보일지 모른다.

아이를 최우선으로 한다 했다가 다시 또 아니라니.

하지만 목숨을 바치는 것과 평상시 삶은 다르다.


정말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새끼지만, 나도 죽으려 사는 건 아니다.

너희들은 커서 떠나겠지만, 나이 든 우리는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몫은 너희가 잘 클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다.


아이는 키울 때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한다.

날 향해 웃어주고, 손을 잡고 걷고, 널 품에 안은 그 모든 순간.

커서 성공하길, 효도하길, 전화하길, 자주 오길 바라는 건 욕심일지 모른다.


우리는 이제 알을 낳고 떠내려가는 중이다.

인간의 목숨은 모질게도 길어, 동물적 삶을 끝내도 사회적 삶이 남는다.

두 딸을 보내고 둘이 남아도, 아내와 난 서로 기대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죽음은 아이를 위해, 우리의 삶은 서로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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