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코로나에 걸렸다.
아이와 아내는 격리 기간이 끝났었는데.
심지어 아내는 친구와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나의 고통
밤새 목이 찢어질 듯 아프고, 오한이 들었다.
코로나는 걸려보면 바로 안다더니.
보통 감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 잠을 잘 수 없었다.
겨우 찾은 아이들 타이레놀을 두 알 삼켰다.
아침까지 버티고 버텨 보건소에서 코를 찔렀다.
다행히 일요일이라 학교에 연락하고 상황을 정리할 여유는 좀 있었다.
물론 우리 반 수업은 누가 할지, 복무는 어찌 하나 막막했지만..
아차, 급한 불을 끄고 보니 이제야 내 아이들이 보인다.
아침까지는 그래도 잘 버텨주었다.
"아빠 두 줄 나왔어? 코로나 걸린 거야?"
걱정도 해주던 딸내미들이다.
하지만 이미 10일 가까이 집에 갇혀 있었다.
이제 자유를 얻었다고 며칠 나가다 또 갇혔다.
나는 뻗어 있고, 둘은 소리 지르고 자주 싸웠다.
아빠 힘든데 계속 싸우냐고 말려도 보았지만.
불쌍한 우리 애들이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내 아내가 지독히도 보고 싶은, 부르고 싶은 하루였다.
너의 기쁨, 나의 질투
"너 빨리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아내와 놀러 간 친구는 말했다.
"남편이 코로나 걸렸는데 정신이 나갔구만!"
장인어른은 사위 입장에서 말해 주셨다.
"아니에요, 아버님. 저희는 쿨해요~"
내가 아프다고 당신까지 힘들 필욘 없다.
솔직히 내가 정말 너무 아프다고 하면 좀 일찍 오진 않을까 기대도 했다.
"아이구.. 어떡해. 저녁에 뭐라도 시켜줄게~"
오지 않겠다는 확실한 대답이었다.
아프면 서럽다.
난 아픈데 넌 즐거우면 밉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살면 악순환일 뿐이다.
나와 나로
'내가 바람 펴도 넌 절대 피지 마.'
난 당신을 쉽게 소환하고, 반대로는 아닌 사람.
모든 감정을 자기중심으로만 놓는 치사한 사람도 있다.
하나, 난 내로남불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라고 본다.
누구나 몸을 가진 인간인 이상 자신의 감각이 가장 크게 느껴질 수밖에.
그러니까 그 비교는 내가 너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아픈 것도 나고, 친구와 놀러 간 것도 나다.
내가 견디지 못해 널 부르면 친구와의 여행을 포기하는 것도 나다.
난 아픈데 넌 놀러 간 게 아니라, 내 아픔과 내 놀러 간 마음을 비교해야 한다.
물론 당신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도 있다.
나 혼자서 도저히 감당 못할 정도의 아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겪어낼 한계를 쉽게 당신에게 넘기지 않으려 한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은 너를 나와 같이 보는 것.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고 더 나은 우리를 찾아가는 것.
당신이 보낸 2박 3일의 즐거움은 내가 견딘 2박 3일의 고통.
내가 견딘 그 고통은 또다시 내가 받을 자유와 행복의 양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