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차이에 관한 글을 이미 몇 개 썼다.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해온 이야기들.
이젠 심지어 태어나기 이전의 당신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행동의 방식
얼마 전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다.
역시 국밥엔 새콤달콤한 깍두기가 필수다.
난 큼지막한 놈을 숟가락에 올려 한 입에 넣는다.
아내는 센 맛을 싫어해서 깍두기를 조금만 깨물어 먹는다.
그런데 웃긴 건 작은놈들도 많은데 굳이 큰 놈을 베어 물어놨다.
"야~ 여기 작은 거 많은데.. 일부터 씹는 식감을 느끼고 싶어 그래? ㅋ"
물어보면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잡히는 데로 먹었는데.."
아내는 뭘 이런 거까지 따지냐 한다.
아내는 내가 밥 먹는 시간까지 잔소리하니 짜증이 난다.
난 아내가 그렇게 하면 작은 거 두세 개 올려야 돼서 귀찮다.
화성인지 안드로메단지 우린 분명 다른 별에서 온 게 확실하다.
생각의 방식
난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깍두기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크기는 적당하고, 이 정도면 두 번은 리필해야겠군.'
난 깍두기를 먹으면서도 생각하나 보다.
내 아내는 생각하는 걸 엄청 피곤해한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빼면 넋을 놓는다.
"학교에서 학급붕괴 안 되고 살아오는 것만도 훌륭한 거 아니냐고~"
20살부터 만났지만, 이건 단지 순대국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방 가면서 불을 켜고, 저 방 가면서 또 켜고, 끄는 건 대체 언제?
"아.. 교실에 히터 껐는지 켰는지 모르겠어. 학교 좀 잠깐 갔다 올게!"
난 아내 보고 왜 그리 아무 생각 없이 사냐고.
아내는 나에게 왜 그리 모든 걸 깊게 파냐고.
당신을 이해하기엔 우리의 짧은 삶으론 불가능하다.
과거로부터
최근에 '사피엔스'를 읽었다.
지금에서야 뇌 용량이 크고, 똑똑할수록 좋다 여긴다.
하지만 먼 과거에는 에너지만 왕창 빨아먹는 비효율적 기관이었다고.
당장 내 앞에 곰, 호랑이가 입을 벌리는데 언제 생각하고 자빠졌나.
뇌가 커가는 시점은 최소한의 안전이 도모된 이후 이리라.
사피엔스가 다른 경쟁종들을 말살시킨 이후 말이다.
우리의 뇌는 각기 다른 조건에서 진화해 온 것 같다.
내 DNA에는 생각하고 싸우고 경계하던 유전자가 남아있고.
아내의 DNA에는 순종하고 여유 있고 유유자적하던 유전자가 있는 듯하다.
우리가 숱하게 배웠던 선사시대의 남자는 사냥, 여자는 수렵, 채집 말이다.
나에게 경계하지 말라 할 수 없듯, 나도 아내에게 생각을 강요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수천, 수만 년 전부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지켜왔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