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복직을 했다.
아내가 바쁜 만큼 나도 바빠진다.
아침부터 밤까지 다시 조정해야 한다.
남녀의 차이
아내는 30분 정도 먼저 일어난다.
화장도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애들까지 깨서 엄마를 내놓으라 하면 답도 없다.
저녁엔 회식도 있다.
나는 1주에 2번, 아내는 1번.
우리의 평균치를 대충 그렇게 잡았다.
분노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같이 일어나서 남편이 애들 준비시키면 되지.
같이 일하는데 회식이 왜 달라!"
요즘 시대에 남녀의 차이를 말하는 건 위험할지 모른다.
그래도 내 아내는 불평하지 않는다.
조건이 같아서 같이 사는 건 아니기에.
능력의 차이
둘 중에 더 많은 시간 일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돈을 더 많이 벌기도 한다.
남녀가 아무리 평등해져도 개별적 만남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돈을 많이 버는 쪽에서 평등을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내가 번만큼 당신도 벌라 하던가, 내가 번만큼의 보상을 요구하면.
능력의 차이가 있음에도 같음을 요구하는 건 폭력이다.
같은 교사 중에서도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돈도 많이 벌고 잘 났는데도 집에선 약자다.
같이 써야 할 시간을 혼자 쓰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사랑 앞에 위에 설 수 없다.
함께 하는 사람은 차이를 이용하지 않는다.
같지 않음에도 같이 나누기에 공평하다.
차이를 함께
내 아내는 군대도 기다려줬다.
하지만 난 이 말이 별로 좋지 않다.
기다림은 여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이런 반박이 올지 모른다.
여자는 밖에서의 다른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고.
뒤에 여자도 군대를 가라, 남자가 임신하냐로 이어질 줄 안다.
미워하는 사람끼리의 토론은 옳지 않다.
나와 너를 구분한 마음이 좋게 흘러갈 리 없다.
아들을 보낸 엄마처럼,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고통을 함께 한다.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되는 것.
너의 일이 내 일이고, 너의 아픔이 내 아픔이다.
앞으로의 삶에 그 어떤 차이가 생기더라도, 함께 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