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가 싫어 좋아졌다

by 삐딱한 나선생
"스승으로부터 스승의 날이라고 꽃을 받았다. 오후엔 책도 받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지혜로운 스승의 스승이 되어봐야겠다. 나보다 나이 어린 스승을 만난 행운을 기뻐하며"
- [책은 도끼다] 중


그래. 꼭 스승이 위로만 있는가.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특히 그렇다.

나보다 어린 스승을 매일 만나며 얼마나 많은 배움을 얻는데.



아래에선


난 권위적인 게 싫었다.

군인 집안에 자라, 편치 못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강압적인 위계에 저항했다.


교사가 되고도 가끔은 싸워야 했다.

나이 많은 선배고 교장, 교감이고 권위로 누르려 할 때면.

말도 안 되는 걸 위에 있다고 억지로 시킬 땐,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젊을 땐 다른 교사들이 나보다 위에 있었다.

신규라고, 어리다고 살짝 무시하는 태도도 감내해야 했다.

뭔가 말하려 하면 대드는 게 됐고, 발언할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내가 나를 돌이켜보면 부족함이 있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젠 좀 알았다고 젊은 교사를 무시하진 않는다.

내가 위로 거부했던 태도를 아래로 하진 않겠다.



위에선


얼마 전 책 모임이 있었다.

구성은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

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스스로 모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말을 쥐는 사람이 생긴다.

대화를 혼자 먹지 말고 쪼개 달라고, 그리 외치고 있건만.

일을 떠나 평등한 관계로 모였다고 생각하는 건 내 헛된 기대일까.


심지어 말에서 가르치려는 뉘앙스를 풍길 때면 자리를 뜨고 싶어 진다.

아이가 물어볼 때 대답해주면 도움이다.

하나, 묻지도 않는데 말하고 있으면 꼰대가 된다.


그런 점에서 모든 교사는 이미 꼰대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듣기 싫어해도 수학이고 영어고 가르쳐야 하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직업적 필요성에 의한 것인지 내 태도인지 경계해야 한다.



아래로


모임에는 신규교사도 있다.

교사의 기준으론 갓난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임용을 보는 학생의 입장엔 성공한 선배님이다.


그를 위에서 볼 땐 아래로 보인다.

내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래로 본다.

배움을 위로만 두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스승을 잃어 간다.


아이를 키워보면 옆집 초등학생 엄마가 대단해 보인다.

중고등학교 공부를 시켜보면 대학 잘 보낸 부모가 부럽다.


갓난아이를 키우면서 중학교, 대학까지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육아를 할 땐 어린이집 어디가 좋은지 묻고, 학생을 키울 때 어느 학원이 좋은지 묻는다.

다들 자신의 삶에서 다음 단계를 아는 사람을 찾는다.

스승은 현재의 한 걸음 앞에 있다.


하지만 또 그 걸음을 가다 보면 다시 순환한다.

내 뒤에 있는 후배는 삶을 돌아 다시 나의 선배가 된다.

내가 그를 스승으로 생각하는 건 그의 한 걸음 뒤에 서려는 태도이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 세대라고, 동영상을 만들고 올리고 논다.

난 대단하고 멋져 보여, 나도 가르쳐 달라 했다.

내가 나이가 들고 위에 있다 해도 난 여전히 스승을 얻을 수 있겠다.

다시 아래가 되는 자세를 잊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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