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자식 된 마음으로

by 삐딱한 나선생

시골 작은 학교는 혜택이 많다.

방과 후, 우유, 현장체험 등 거의 모든 게 무료.

통학버스, 전면 등교로 학원 돌릴 필요 없는 시스템.

그래도 내 아이를 보내기엔 고민이 된다.



주어진 관계


작은 학교는 이름만큼 학생 수도 적다.

한 학년에 한 반, 적으면 두 학년을 묶은 복식도 있다.

전학을 가거나 오지 않는 한, 한 번 친구가 끝까지 간다.


그 안에 잘 맞는 친구가 있으면 다행이다.

6년간 반도 안 바뀌고 쭉 갈 수 있으니.

그러나 담임을 해보면 아닌 경우도 많다.


확연한 성격차로 반복되는 갈등에 양쪽 부모들까지 예민한 경우.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추거나 끌려가는, 기울어진 경우.

아예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남는 경우 등등.


물론 큰 학교라고 이런 일이 없는 건 아니다.

학생 수가 많으니 사건 자체는 훨씬 많다.

그래도 매년 반이 바뀌고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

몇 년을 똑같은 사람과 있으면 관계가 정해지고 굳어버린다.



굳어진 관계


저학년 때는 그래도 낫다.

아직 어리기에 선생님의 영향력이 크고, 이끄는 대로 잘 따라오기도 한다.

부모님들도 아직 초반이기에 싸워도 화해시키고, 개인적으로 친해지라고 집에 초대도 한다.


허나 아무리 노력해도 맞지 않는 걸 억지로 붙이긴 힘들다.

너무 심하게 부딪치는 경우는 학년이 올라가기 전에 한쪽이 떠난다.

고학년까지 양쪽 다 남아 있다면, 서로에 대한 미움이 어딘가 스며 살얼음판 같은 교실이 되곤 한다.


적대적 공존 상태, 또는 완전 전쟁상태.

서로 마주치거나 말을 섞지도 않고.

같은 모둠이 되거나 하면 활동 자체가 되지 않는.


물론 어떤 조직이든 모든 관계가 좋을 순 없다.

다만, 난 그런 관계도 보듬어 가야 하는 교사이기에 괴롭다.

특히, 몇 명 되지 않는 이 교실에 너희가 너무 크게 보여서.



지나갈 관계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너희의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노력은 상처로 끝났고, 서로의 차이만을 확인했으니.

달라도 너무나 다른 너희는, 각자에게 맞는 친구를 찾을 수 있었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것을.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나고 보니 부모의 외모, 경제력, 부부관계 등이 정해져 있었다.

부부 사이가 좋다면 아이도 따뜻한 사랑을 받을 텐데, 반대면 너무 위태롭다.


매일같이 싸우는, 불안한 부모 밑에 있는 학생을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준다.

"이 시간을 견뎌야 해. 네가 어른이 되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님이 싸우는 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단지 서로 다른 점이 많을 뿐이야.

부디 너의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교실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어쩌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모인 우리들.

서로에게 너무 상처가 되지 않게,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관계를 지나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하략)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정현종


어떤 아이는 밝고 어떤 아이는 조용하다.

어떤 아이는 밝음 뒤에 어두운 상처를 숨겨놓기도 한다.

지금 이 아이의 모습과 태도가 왜 이렇게 됐는지, 난 100프로 알 수는 없다.


친구관계의 모양도 그렇다.

어떤 이유로 갈라졌는지, 이야기는 들을 수 있어도 그 내면은 모른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그리하여 이미 부서져있는 관계를 받았다.


예전의 나는 내가 부모인 줄 알았다.

내 아이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상담하여 해결하려 했다.

들어줄 마음도 있었고, 공정하게 해결할 자신도 있었다.


이제는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의 자식 됨을 안다.

너희들의 관계는 나보다 더 오래되었고, 난 그 사이에 들어왔다.

내가 위에서 너희를 움직일 게 아니라, 너희를 보고 내 움직임을 정해야 할 것 같다.


나에게 와준 너희의 과거와 현재, 미래..

그중에 미래는 부서지지 않게, 온전히 보내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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