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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Dec 02. 2021

다정한 것이 살아남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지금까지의 인류사는 그랬다. 하지만 덕분에 많이 죽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 부족을 향한 편협한 다정함이, 더 넓은 집단을 향한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 -312p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중


글을 의뢰받았다.

친구개인적 요구였다.

그리고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순진한 편


예전 친구 부부'카탄'이라는 보드게임을 했다.

정해진 구역 안에 도로와 마을을 지어 이기는 게임이다.

주사위를 던져 자원을 얻고, 플레이어들과 거래할 수 있다.


네 명이 하면 자리 경쟁도 심하기 때문에 원하는 자원을 얻기 힘들다.

나에겐 많은 자원이 상대에겐 없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필요한 자원을 잘 교환해야 이득을 본다.


그녀의 거래방식은 극과 극이었다.

는 내 카드 한 장에 상대 카드 두 장을 원했다.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고, 최대한의 이득을 보려 했다.


그녀는 상대가 원하는 거래에 거의 다 응해줬다.

자신이 이기기보다, 타인을 도와주려는 태도였다.

어찌 보면 어리숙해 보이기도, 규칙을 잘 모르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엔 그녀가 이겼다.

많은 걸 요구한 의 거래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거래 하나하나는 손해인 것 같아도, 상대의 이득은 셋으 나뉘고 자신의 이득은 쌓였다.


여기까지 다정한 사람의 아름다운 승리를 하나 더 든 것일까.

이기적인 건 질 거고, 이타적인 게 결국 승리할 거라고.

그러나 현실은 악한 사람 착한 사람이 나뉜 권선징악의 드라마가 아니다.



네 편 내편


친구는 왜 그리 흥분했을까.

왜 그거밖에 안 받냐 아내에게 뭐라 하기도.

그 거래를 하려고 하는 우리를 약탈자로 보기도 했다.


친구는 자신 또는 아내가 이기기를 바랐다.

게임을 하면 누구나 하는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이게 지나치면 함께 하기 부담스럽다.


운동에서는 스포츠맨십을 중요하게 여긴다.

치열한 경쟁 끝에는 승부를 인정하고 서로 예를 지키는 것이다.

하나 한일전처럼, 네 편 내편이 극명하게 갈린 경기에는 객관적이기 어렵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한 사랑이, 정체성이 다른 타인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공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187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같이 놀러 가면 우리 가족도 생각해 달라고.

나도 너의 머릿속에, 너의 편에 넣어 달라고.


그 이후로 친구는 우리도 많이 챙긴다.

먹고 싶은 음식도, 갈 곳도, 잘 곳도.

그리고 모든 인간 사회는 비슷하다.


학부모 상담에 가장 큰 주제는 교우관계이다.

친구와 잘 지내는지, 아이의 편이 돼주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어른도 일이든 정치적이든 어디에 소속되어,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한다.



옳은 편


난 그녀의 순수함이 깨지지 않길 바란다.

그렇기에 네 편과 내편을 잘 구분해서 보기를.

그럼에도 내편이 별로 없다면 옳은 편에 기대기를.


민주주의를 확립함으로써 오는 평화는 독재자들이 만들어 내는 안정과는 다르다. 민주주의는 인권을 보호하고 평등주의적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다. 이는 한 집단이 권력을 상실하더라도, 혹은 처음 집권하는 집단도 예외 없이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239p


다정한 그녀는 감당하지 못할 일까지 떠안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다정함을 기대하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이제 개인의 호의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위원회를 열든, 휴직계를 내든, 절차가 시작되면 움직일 수밖에.

아무 일 없기만을 바라던 윗사람도, 나에게 관심 없던 동료들도.

그것이 다정하지 않은 사람도 옳은 편이 되는 제도의 힘이다.


당신이 네 편 내편 가리지 않는 다정한 사람이기를.

당신이 네 편 내편 가릴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기를.

당신이 있는 곳에 옳은 제도가 온전히 작동하기를.

당신의 맘 속에, 당신의 주변에 다정한 것이 살아남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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