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다 보면 간혹 논쟁도 하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일도 아닌 이야기다.
하나 날 말리기 시작하면 점점 말린다.
오해
작은 학교는 연합 수업도 한다.
두 학교를 모아도 한 학년에 20명이 안 되니까.
영어뮤지컬 같이 원어민 선생님도 오고 하는 큰 행사는 말이다.
덕분에 친하게 지내는 형도 보게 되었다.
같은 학년 담임이라 교실에서 같이 얘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형은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어디 가서 짱박히나..
우리 애들 잘해~
애이 2명밖에 안 되는데."
그날 저녁 한 잔 하러 모였다.
난 살짝 서운했던 마음을 전했다.
"아~ 형 그래도 아예 안 들어온다고 딱 그러니까 좀 그랬죠."
몇 번 말이 오가는데 옆에 있는 친구는 불안했는지 날 말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형을 오늘 처음 보는 거고 내가 말하는 게 세 보였단다.
내가 좀 흥분했나,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았다.
아니.. 난 사실 뒤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첨엔 좀 서운했는데 사실 형 교실도 아니고 계속 있는 것도 애매하긴 하죠.
멀리서 고생해 오셨으니 우리 학교 영어마을 위탁교육이다 생각하죠 뭐 ㅋ..)
지나고 나서의 핑계가 아니라.
이미 하루를 보냈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뒤의 말들을 전하지 못하니 앞의 미움만 전달이 됐다.
태클
나중엔 오해를 풀었다.
대화라는 건 한 번 뱉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한 측면이 있다.
토론 프로그램들을 보면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처음엔 점잖게 웃으며 시작해, 흥분해서 붉히며 끝난다.
상대의 발언 시간에도 끊고 들어오더니 각자 자기 말만 하기도 한다.
토론에선 사회자가 중재라도 한다.
나이나 직급을 떠나 공평한 시간을 받는다.
하지만 사회의 토론문화는 공정하기가 참 어렵다.
형은 내 말을 끊어도 되지만 내가 형을 끊으면 건방지다.
상급자의 지적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면 대드는 게 된다.
아래로 누르는 힘이 작용하는 곳엔 발언 시간과 주도권이 편향된다.
그렇다고 마냥 사회비판만 하고 싶진 않다.
아직까지 발끈발끈 열 올리는 내 모습도 그닥이다.
차분하게 내 시간을 확보하는 일, 이제는 좀 할 수 있지 않나.
잠시
친형과도 나이 먹고선 잘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이에 중요한 역할을 해 준 건 '타이머'였다.
뭔가 목소리가 커지거나 논쟁이 될 소지가 있으면 폰을 켠다.
자기 논리만 충분히 다 풀어내어도.
말에 말이 겹쳐지지만 않아도 화낼 일이 준다.
서로를 자르지 않으니 생각이 달라도 존중할 수 있다.
물론 만나는 자리마다 스탑워치를 누르란 얘긴 아니다.
다만 꼭 해야 할 말이 생겼을 땐 마음속 스탑워치를 누른다.
내가 얻을 1분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몇 분을 기다린다.
내가 한동안 듣고만 있으면 대부분 나에게 발언권을 넘겨준다.
그것도 안 되면 '저도 1분만 말할게요~' 얘기한다.
아예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면 꺼내지도 않고.
예전, 내 목소리가 커졌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누군가는 날 건드렸고, 난 발끈했다.
그런 나를 말려서 또 흥분한다.
이제 그런 악순환을 끊을 때도 됐다.
글은 내 말을 온전히 다 적을 수 있어서 좋다.
당신의 말을, 나의 말을 온전히 전하는 글과 같은 관계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