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자
예전엔 제자가 많은 것이 참 좋게 느껴졌다.
스승의 날, 연말이면 감사인사와 선물을 보내오는.
제자가 많으면 참 교사, 제자가 없으면 실패한 교사인 듯한.
같은 수업 시수에 이왕 고생할 거면 5학년보다 6학년을 하시겠다는 분도 있었다.
아무리 5학년 때 잘해주고 따랐어도 결국 6학년 담임을 기억한단 얘기다.
하지만 그래서 6학년이 더 부담스럽다.
나도 졸업시킨 아이들과 밥을 같이 먹기도 했다.
대학을 어디로 갈지, 진로상담을 카톡으로 한참 해주기도 했다.
이미 보낸 학생들이 연락 오는 게 반갑고 뿌듯함이 있지만 어렵기도 하다.
주기적으로 제자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는 선생님이 참 대단해 보인다.
아무리 제자들을 아껴도 어떻게 그 삶에 유지가 가능할까.
난 그 정도 그릇은 되지 못하나 보다.
난 그저 너의 삶을 아무 문제없이 살아주기를 바란다.
나쁜 뉴스로, 슬픈 소식으로 이름을 듣게 되지는 않기를.
내가 너의 어느 한 구석에라도 녹아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제자로서
교사가 된 후엔 스승의 날이 부담스러웠다.
가정에서 보내는 무엇이 김영란법에 걸릴까 봐?
아니, 내 스승을 찾아뵈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다.
학창 시절에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다.
착하고 말 잘 듣던 애들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꼭 말썽 부리고 많이 맞았던 놈들이 기억하고 찾아온다고.
나는 찾아가는 말 잘 듣던 학생이 되고 싶었다.
'자기 스승도 챙기지 않으면서 스승의 날을 받으려 하나'
어디선가 들었던 누군가의 말도 내 양심을 계속 찔러댔다.
몇 년 간은 혼자라도, 어색해도 찾아뵈었다.
그러다 바쁘다는 핑계로 카톡 기프티콘을 보냈다.
그 후론 메시지를 보내기도 애매해진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나 하나로는 대화의 소재를 찾기도, 동창회처럼 분위기를 띄우기도 어려웠으니.
내가 나의 제자를 생각하는 것처럼, 선생님께서도 나의 삶이 평안하길 바라 주실 거라고.
(선생님 제가 연락드리지 못해도 건강히, 행복하게 잘 지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자리에
언젠가 결혼식을 갔다가 아내가 말했다.
"꼭 결혼식장이 부부를 찍어내는 공장 같아.
저 안에 들어가면 1시간 만에 부부가 되어 나오잖아."
어쩌면 학교도 같은지 모른다.
학생들이 왔다가 가고, 또 새로운 아이가 오고.
주기만 1년으로 길뿐, 과정을 반복하는 건 똑같으니까.
결혼식장에 사람은 바뀌어도 그들의 사랑은 최상일 것이다.
학생은 학년이 올라가고 어른이 되는데, 교사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
그 자리에서 이별하고 다시 만나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일을 반복한다.
모든 걸 손에서 놓고, 다시 온 힘을 다해 그러쥔다.
그저 함께 있는 순간에 최선이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아이들과의 만남도 그때가 나의 전부였으면 됐다.
오늘도 난 나의 자리에서 새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