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남기고 싶지 않아요

by 삐딱한 나선생

올해까지 6학년 졸업을 세 번째 시켜본다.

초등학교를 아주 마치는 이별이기에 아쉬움도 크다.

힘든 만큼 보람도 큰 6학년이지만 난 굳이 원치 않는다.



나의 제자


예전엔 제자가 많은 것이 참 좋게 느껴졌다.

스승의 날, 연말이면 감사인사와 선물을 보내오는.

제자가 많으면 참 교사, 제자가 없으면 실패한 교사인 듯한.


같은 수업 시수에 이왕 고생할 거면 5학년보다 6학년을 하시겠다는 분도 있었다.

아무리 5학년 때 잘해주고 따랐어도 결국 6학년 담임을 기억한단 얘기다.

하지만 그래서 6학년이 더 부담스럽다.


나도 졸업시킨 아이들과 밥을 같이 먹기도 했다.

대학을 어디로 갈지, 진로상담을 카톡으로 한참 해주기도 했다.

이미 보낸 학생들이 연락 오는 게 반갑고 뿌듯함이 있지만 어렵기도 하다.


주기적으로 제자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는 선생님이 참 대단해 보인다.

아무리 제자들을 아껴도 어떻게 그 삶에 유지가 가능할까.

난 그 정도 그릇은 되지 못하나 보다.


난 그저 너의 삶을 아무 문제없이 살아주기를 바란다.

나쁜 뉴스로, 슬픈 소식으로 이름을 듣게 되지는 않기를.

내가 너의 어느 한 구석에라도 녹아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제자로서


교사가 된 후엔 스승의 날이 부담스러웠다.

가정에서 보내는 무엇이 김영란법에 걸릴까 봐?

아니, 내 스승을 찾아뵈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다.


학창 시절에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다.

착하고 말 잘 듣던 애들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꼭 말썽 부리고 많이 맞았던 놈들이 기억하고 찾아온다고.


나는 찾아가는 말 잘 듣던 학생이 되고 싶었다.

'자기 스승도 챙기지 않으면서 스승의 날을 받으려 하나'

어디선가 들었던 누군가의 말도 내 양심을 계속 찔러댔다.


몇 년 간은 혼자라도, 어색해도 찾아뵈었다.

그러다 바쁘다는 핑계로 카톡 기프티콘을 보냈다.

그 후론 메시지를 보내기도 애매해진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나 하나로는 대화의 소재를 찾기도, 동창회처럼 분위기를 띄우기도 어려웠으니.

내가 나의 제자를 생각하는 것처럼, 선생님께서도 나의 삶이 평안하길 바라 주실 거라고.

(선생님 제가 연락드리지 못해도 건강히, 행복하게 잘 지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자리에


언젠가 결혼식을 갔다가 아내가 말했다.

"꼭 결혼식장이 부부를 찍어내는 공장 같아.

저 안에 들어가면 1시간 만에 부부가 되어 나오잖아."


어쩌면 학교도 같은지 모른다.

학생들이 왔다가 가고, 또 새로운 아이가 오고.

주기만 1년으로 길뿐, 과정을 반복하는 건 똑같으니까.


하지만 그건 밖에서의 시각일 뿐이다.

결혼식장에 사람은 바뀌어도 그들의 사랑은 최상일 것이다.

교실에 아이들이 바뀐대도 난 그들과 작은 일에 분노하고 감동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학생은 학년이 올라가고 어른이 되는데, 교사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

그 자리에서 이별하고 다시 만나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일을 반복한다.

모든 걸 손에서 놓고, 다시 온 힘을 다해 그러쥔다.


난 멀리 있는 사람을 굳이 연락하고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함께 있는 순간에 최선이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아이들과의 만남도 그때가 나의 전부였으면 됐다.


떠나보내기 위해 새를 키운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모른다.

부디 무사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를.

오늘도 난 나의 자리에서 새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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