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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Oct 23. 2022

내 편이 아니어서 감사합니다

내 편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내 편에 마음이 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내 편이 아니어서 감사한 일도 있다.



남의 집


우리 부모님은 내 아내를 더 좋아한다.

요즘 애들 같지 않고 순하고 참해서 좋단다.

내가 본인들 아들인데 데려온 며느리를 더 아낀다.


아무래도 내가 커온 과정을 알기에 더 그런가 보다.

아빠를 닮아서 성질이 나면 아주 불같아 지니까.

그런 나를 받아주는 착한 아내라는 거다.


반대로 처가에서는 내가 꽤 대접받는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 했던가.

나서방의 식탁엔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장인어른도 옛날 사람이라 가부장적인 멘트가 많다.

"정신 빠져서 늦게까지 술 먹고! 남편 밥이나 잘 챙겨!"

남자가 하는 사회생활을 중시하고 여자는 내조를 하라는.


물론 말이 그렇다고 딸보다 사위겠나.

사위를 챙겨줘야 딸이 행복할 거라 믿는 거지.

며느리, 사위는 남의 집 식구였으니 좀 더 예의를 차리는 거지.



나의 것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서 감사하다.

만약 거꾸로 아들 편들고 딸 편드는 부모였다면.

아마 자기네 부모님은 왜 그러냐 서로 싸우지 않았을까?


"애가 당신 닮아 이모양이지." "넌 누굴 닮아 이러니?"

꼭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을 해야 나쁜 건 아니다.

이미 자기 쪽만 편들 생각이라면 말이다.


어떤 가정을 보면 누구를 편애하는 게 보인다.

막내라서 귀엽다는 정도면 말도 안 한다.

너무 티가 나게 한쪽 편이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게을러. 둘째처럼 똑 부러져야지."

"둘째는 너무 독해. 다 이겨먹으려고만 들어. 첫째가 다 져주잖아."

둘이서 같은 아이를 키우지만 보는 건 정반대다.


더 안타까운 건 그 안에 자기밖에 안 보인다는 거다.

내가 옳고, 나를 최대한 닮은 네가 우월하다.

결국은 다시 내가 나를 편들려는 생각.



없는 것


"엄마는 나 사랑해? 안 사랑해?"

우리 첫째는 하루에도 몇 번 묻는다.

앵기고 부비고 만지고 치근덕거린다.


아내가 표현이 적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날 닮아서 뭔가 끈적하게 달라붙는 게 있다.

아내는 첫째를 낳으면서 나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냥 느끼는 감각이 훨씬 예민하구나.

마음을 다 표현하고 표현받고 싶어 하는구나.'

아내는 그런 첫째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좋은 감정만 많이 나올 때다.

난 오히려 그런 첫째와 부딪치기도 한다.

적당히 멈춰야 하는데 둘 다 끝까지 간다.


그래서 난 둘째가 좋다.

언니를 받아주고 양보해준다.

엄마를 닮아 무심해서, 무던해서 견딘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이해하면서 성장했다.

지금의 이 태도도 우리가 성장해온 결과다.

내가 가지지 못한 마음을 당신에게서 받은 아이라서 고맙다고.


물론 둘째가 애교를 더 부린데도 혼낼 땐 혼낼 것이다.

첫째가 좀 얄미운 짓을 해도 똑같이 뽀뽀하고 안아 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우리 부모님이 그랬듯, 우리가 그랬듯 내편만 드는 사람으로 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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