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쓰는 기관은 발전하고 안 쓰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이론.
진화론으로서는 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까 나 하나의 문제만으론 완벽한 이론이다.
퇴화
대학시절, 자취할 땐 스스로 했다.
찌개를 끓이고 밥을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결혼하고 아내가 집안일을 주로 하면서 다 잊었다.
요즘시대에 가부장적으로 산다고 부러워하는 남자들도 많았다.
집안일을 반반 평등하게 나눠야지 하는 여자들의 분노도 들린다.
그래도 난 운전, 경제관리, 자녀 교육 등 절반의 역할은 하고 있다 자신했다.
얼마 전 손님을 초대해 불판에 고기를 구웠다.
다음날, 찌든 기름을 어찌해야 하나 막막해하고 있었다.
아내는 철수세미를 가져와 닦기 시작했다.
난 아내와 내가 역전됐음을 느꼈다.
예전 그녀는 반찬 하나 달라는 것도, 전화로 뭘 시키는 것도 두려워했다.
내가 시켜야만 마지못해 움직이는 척했고, 모든 면에 어리숙해 보였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했던가.
내가 말로만 하고 있을 때, 아내는 행동하고 있었고 강해졌다.
생존
좋은 대학이 목표인 시절이 있었다.
그땐 수능 점수가 능력의 척도였다.
대학만 잘 가면 모든 걸 이룰 것처럼 얘기했다.
그러나 대학을 무사히 마치고 직장을 구하는 것도
취직을 해도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도 쉽지 않다.
전공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하며 버티는 사람도 많다.
"학창 시절엔 쟤가 나보다 훨씬 못했는데.."
이런 말은 시간이 갈수록 의미가 없다.
삶은 한 번의 승리가 아닌 생존의 연속이니까.
사회는 하나의 생물과 같아서 자연스럽고 잔인하다.
모두가 맛집을 고르고, 별로면 망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듯
회사 또한 사람을 고르고, 필요한 능력이 없으면 버리려 든다.
그렇다고 경쟁적인 세상을 응원하는 건 아니다.
금수저도 잘난 사람도 많고 균형이 맞진 않다.
하지만 누구도 어떤 쓸모없이 살 수는 없다.
쓸모
장인어른께서는 건강 문제로 일찍 퇴직하셨다.
야근에 회식에 주말까지도 회사에 바친 분이신데.
부모님 세대의 남자들에겐 삶의 너무 큰 부분이 끝난 것이다.
요즘은 손주들 보는 행복으로 사시는 것 같다.
편의점 데려가서 뭐 하나 사주는 게 낙이시라고..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우리도 맡길 수 있어 감사하다.
나의 존재 가치는 어떤 쓰임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육아에서도 손이 많이 가던 애기 때가 더 아빠였던 것 같다.
아직은 할 일이 있지만, 씻기는 것도 끝났고 잔소리도 못할 날이 올 것이다.
난 멈춰있는데 아내는 계속 성장하는 것 같아 이 글을 썼다.
난 겨우 버티는데 잘 살아내는 남들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자네의 쓸모는 누가 정하지?'
'일수의 탄생' 책에서 말하던 그 고민을 다시 하는 것일까.
내가 하지 않는 것들은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놓고 싶지 않아도 기능이 끝나는 시간이 온다.
아직 끝나려면 멀었는데 끝이 다가옴을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