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은 사전적 의미 자체로 부정적이다.
학교에서도 편견을 갖지 말라고 가르친다.
한 번의 잘못
먼저 통과된 학생이 다른 친구를 검사해 준다.
교사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또래 학습을 독려한다.
그렇다고 완벽할 수는 없다.
잘못 채점을 하거나 답을 그냥 알려주기도 한다.
확인하는 말투도, 맞추러 가는 태도도 가르쳐야 한다.
처음엔 칭찬도 해주고 '집에서 학습지도 시킨다더니' 생각했다.
3번째 되었을 때, "오~ 그래? 가져와볼래?"라고 했다.
그 아이의 익힘책엔 답만 적혀있었다.
세 자릿수의 덧셈을 어떻게 암산으로 풀었을까.
"이거 어떻게 계산했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의 친구 걸 보고 답을 적었니?" 한참 추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이 처음이니까 선생님이 넘어갈게.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다면 난 널 믿지 못할 거야.
빨리 끝내고 싶고, 칭찬도 받고 싶겠지만, 이건 거짓이야.
당분간은 나는 널 계속 확인해야 하고 서로 힘들어진 거야."
이 아이는 또래친구보다 좀 어리다.
결과가 이렇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을 거다.
그러나 이미 신뢰를 쌓아갈 첫 기회는 날린 것이다.
반복되는 실수
난 8시 50분에 아침활동을 시작한다.
적어도 그전에 가방은 놓고 책은 꺼내야 한다.
가정통신에 안내하고 문자도 보냈지만 안 되는 아이가 있다.
아직도 엄마 아빠가 깨워준다면 애기인 거야.
너희들 핸드폰도 다 있다고 했고, 어려운 일은 아니야.
그리고 맨날 늦는 학생이 늦어.
평상시에 잘 오다가 늦는 학생은 뭔 일이 있나 걱정을 할 거야.
그런데 반복되는 애한테는 '얘는 또 지각이냐' 화가 나겠지.
나는 남자건 여자건, 어떤 조건으로 차별하진 않아.
하지만 너희들의 모습은 나에게 쌓여서 어떤 판단을 하게 해.
급식을 남기면서 더 받을 수 없고, 정리하지 않으면서 보드게임을 받을 수는 없어.
시험을 봐도, 어떤 경기를 해도 실수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아.
그 실수를 줄여가는 게 실력이거든.
한두 번의 실수는 이해해 줄 수 있어.
그게 반복된다면 그건 이미 너 자체야."
아이들은 모른다.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어른들은 또 모른다.
내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를.
편견의 주인
"톰 홀랜드가 로미오인데, 줄리엣은 흑인?"
남자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인 백인, 여자는 흑인.
여배우를 향해 인종 차별성 발언에 비난이 이어졌다는 뉴스다.
우리도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말하면 억울한 입장일 수도 있다.
흑인에 대한 공격이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BTS, 손흥민 덕분에 좀 나아졌을까?
학교에서 다문화 교육을 많이 한다.
분명 내 어릴 적보다는 인종개념이 느슨해진 것 같다.
영어 수업에 원어민을 보기도 하고, 유튜브로 외국인도 쉽게 접한다.
그렇다고 외노자(외국인 노동자)라고 부르는 우리의 인식은 또 모르겠다.
국가, 인종, 성별 등 태어나면서 받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주어진 것에 대한 편견은 억울하다.
또한 그것을 바꾸기엔 국가적 규모에 몇 세대에 걸친 시간이 필요하리라.
나는 방탄의 뷔가 아니다.
한국의 이미지를 바꿀 정도의 영향력은 없다.
그래도 나 자신에 대한 평판을 만들어 갈 수는 있다.
"역시 영상이가 생각이 깊어."
"널 만나면 재밌고 유쾌해!~"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갖는 나에 대한 편견.
나는 오늘도 내 편견을 하나씩 쌓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