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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Apr 29. 2024

죽어버린 지구를 애도하며

3학년 과학시간에 배추흰나비를 키운다.

나비가 되기까지 동물의 한살이를 배우기 위해.

그러나 잎은 다 뜯겼고, 애벌레도 죽었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


'자연이 스스로 자연 자원을 생산하거나 훼손된 자연을 재생할 수 있는 능력'

생태용량은 쉽게 말해 그 안에 생존 가능한, 사용 가능한 정도라 하겠다.

저 작은 케일 화분 두 개로는 애벌레 5마리를 감당하지 못했던 걸까.


"얘들아 저 애벌레가 왜 죽었을까?"

"병에 걸린 거 아니에요?"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이미 얘들이 먹을 잎이 거의 남지 않았어.

우리가 물도 주고, 햇빛도 더 보여주려 했지만 케일이 먼저 없어졌으니까."


"난 저 화분이 지구고, 저 죽은 애벌레가 인간으로 보여.

우리도 지구를 저렇게 다 먹어버려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대.

지금처럼 지구를 파먹으면, 지구가 4개 정도 필요하다고 하니까.

이대로 다 쓰고 살면 우리도 머지않아 저 애벌레처럼 될지도 몰라.


너희들은 애벌레를 보면서 불쌍하다 그랬지.

나도 죽은 한 마리가 안타깝지만, 케일도 불쌍해.

얘네는 그저 애벌레의 먹이로만 여기 갇혀 있거든.


예전에 민물고기 전시관에서 수달 먹이 주기를 봤어.

미꾸라지를 바가지로 풀어주더라고.

자기들도 살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돌 사이로 숨었지.

그리고 날쌘 수달은 그 돌들을 뒤지고 다 찾아 먹더라.

그 장면은 살짝 비치는 피와, 파편의 일방적 살육이었지.

수달에겐 먹이 주기이지만, 미꾸라지에겐 '죽음 주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먹고살아야 하는 생명의 기본을 잔인하게 보려는 건 아니야.

다만, 우리가 지구를 단순히 먹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보면 안 된다고.

적어도 우리가 받은 급식은 다 먹자고 말하는 이유도 이거야.

음식은 얼마 전까지 생명이었고, 버리면 쓰레기가 되니까.

아직 남아 있는 잎이 있는데 죽어버린 애벌레가 안쓰러워서.

먹지 못하고 남은 그 잎은 어쩌면 인간이 남기고 버린 것들이 아닐까."



플라스틱의 날


지난주엔 과학의 날 행사도 있었다.

학년마다 원하는 주제를 고르고 재료를 산다.

우리 학년은 아래의 'LED 태양계 행성 워터볼'을 골랐다.



태양계의 구성과 위치 등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반짝이 가루는 LED를 더 빛나게 해 준다.

글리세린은 반짝이를 슬로 모션으로 바꿔 우주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수많은 쓰레기를 남겼다.


반짝이 가루의 작은 비닐, 글리세린 통.

양면테이프, 재료를 뜯어낸 조각들.

이 모든 걸 담고 있던 큰 봉투.


글리세린 통은 가져갈 사람은 가져가라고 했다.

애들은 물총을 쏘고 싶은지 뭐에 쓰려는지 갖고 싶단다.

반짝이 가루 봉투는 너무 작고, 묻어 있어 도저히 다시 쓸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쓰레기가 많이 안 나온 편이다.

요즘은 키트로 나오는 것이 많아 작은 비닐, 플라스틱이 엄청 들어있다.

다른 체험을 하거나 미술 수업을 해도 고민이 된다.


'수수깡이고 아이클레이고, 잠깐 놀자고 이렇게 써도 될까.

그냥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것에 불과한 건 아닐까.'

분명 교육은 해야 하고, 미술도 과학도 중요한 것인데.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이 지구를 죽이는 일이라면.

이 모순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지구의 가격


어제는 마을 선생님이 오셨다.

초콜릿을 녹여 빼빼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도 비닐과 플라스틱은 필수다.


테이블마다 비닐을 깔고, 개인 위생장갑을 줬다.

중탕할 초콜릿 봉투 4개, 이를 받칠 플라스틱 컵 4개.

초콜릿에 붙이는 데코를 쏟아 놓은 플라스틱 접시 5개.

마지막으로 10개의 소포장 봉투, 그걸 담는 큰 봉투까지.

(아.. 정리할 땐 물티슈도 썼다.)


데코를 위한 과자 부스러기가 난리였지만.

흘린 초콜릿이 바닥과 의자에 굳어서 닦기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정말 좋아했고, 맛있어했고,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건 1인당 15000원 재료비가 드는 활동이다.

이걸로 학급운영비 20만 원과 교육과정 운영비를 다 썼다.

돈은 아깝지 않았다.

다만, 버려지는 모든 것들이 아까웠다.


"강사님~ 혹시 남은 재료는 다 버리실까요?"

"네~ 아무래도 다 섞이고 묻고 해서 버려야 할 거 같아요."

"그럼 애들한테 남은 건 가져가도록 안내해도 되겠지요?"


짤주머니에 눌어붙은 초콜릿을 나눠가졌다.

접시에 있는 과자들도 하나씩 컵에 부었다.

'아.. 이대로 들고 가면 복도가 가루 천지가 될 거다.'


"강사님~ 혹시 컵 뚜껑은 없지요?"

커피를 만드는 게 아니었으니 당연히 없었다.

'그냥 교실에서 종이에 테이프라도 붙여줘야겠다.

아.. 잠깐! 아주 좋은 게 남아 있었잖아~'


각자 손에 끼웠던 장갑.

그게 고무처럼 잘 달라붙었으니까.

결국 아이들은 닭 벼슬 같은 컵 과자를 들고 갔다.



왼손에 예쁘게 꾸며진 빼빼로는 결과물이다.

오른손에 있는 남은 것들은 우리의 잉여물이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쓰레기도 15000원에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남기지 않으려고 해도 우리가 플라스틱을 먹을 수는 없다.

조금 금액이 올라가도 좋으니, 종이나 재사용 가능한 재료를 쓸 수는 없을까.

국가에서도 친환경에 정책, 예산을 지원하고, 기업도 친환경이어야 돈을 벌도록. 

개개인도 지구보다 비싼 건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고, 생활로, 소비로, 투표로 보여주기를.


그러나 만약 소비자들이 조금 더 돈을 들이더라도 환경의 가치를 이해하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기업은 생존을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땀 흘려 번 피 같은 돈으로 소비력을 행사하여 기업들을 '친환경'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기를 희망한다. -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중


인간은 이미 막다른 길에 와있는지 모른다.

풀이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먹던 애벌레일 수는 없다.

15000원의 체험이 되기 위해 지구에 5000원 빚을 졌다.


이제는 지구의 값을 이자까지 쳐서 치러야 할 것이다.

아니면 지구는 인간을 지구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후에도 우리 아이들이 웃으며 즐겁게 빼빼로를 먹을 수 있으려면.

적어도 저렇게 두 손 가득 플라스틱을 안겨주진 말아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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