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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준 May 03. 2019

어떻게 살 것인가

[국내 도서 > 인문 > 인문학 일반 > 인문 교양]

유시민 지음 | 생각의 길 | 2013년 03월 13일 출간


  뇌피셜 선정 도서 목록에 들어있었던 책을 회사 장터에서 발견했다. 나눔이었는지 천 원에 팔고 있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순간적인 판단은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엄지 근육을 이용해 댓글을 남겼다. 그렇게 책을 자리로 가져왔다. 책을 보면 겉표지와 제목을 보고 대충 어떤 내용으로 전개를 해 나갈지 예상이 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성공하는 삶을 위해 해야 할 일 리스트를 나열한 자기 계발서라고 유추하기엔 평소에 미디어에서 봤던 저자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그런데 또 제목을 보면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책을 펼치고 프롤로그를 읽기 시작했다.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저자 또한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쓰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고 한다. 수많은 수행 착오를 거쳤고, 정치적 자기 검열 습관을 버리기 위한 노력을 통해 탄생한 책이었다. 제목과 책 표지만 보고 내용을 유추하는 데에 실패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사는 것, 죽는 것, 삶에 도움이 되는 것, 삶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먼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좋아한다면 부딪쳐, 까짓 거 부딪쳐!라고 대답하는 '크라잉넛'이 자주 등장한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살아가는 모습에 반했다. 이러한 자기 결정권(스스로 설계한 삶은 올다고 믿는 방식)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더불어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도 인용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멋진 말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판단하에 맞다고 생각하고 순간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했을 때,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 하지만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남들이 최선을 다하니까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잘못된 삶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통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힘들거나 마음이 지쳐있지 않으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삶과 바로 맞닿아 있는 죽음을 무섭고 두렵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죽음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에 대한 장에서는 저자가 군대에서 맞고 밟히면서 종종 계곡의 낭떠러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단순히 삶이나 죽음에 대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지식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삶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책에 더 빠져들게 된다. 박정희 시절부터 시작해서 전두환, 노태우 시절을 유시민 작가의 관점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보는 것 같았다. 


  저자는 유물론을 통해서 죽음을 세포의 소멸로 정의하기도 한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내가 하는 행동은 모두 뇌가 시키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뇌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인간 일반과 저자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철학서를 비롯한 인문학 책 보다 뇌과학 관련 진화심리학 책들이 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이과생인 내가 읽기가 쉬웠을 수도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음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철학적 자아의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한 레이건의 마지막을 지는 해가 만드는 낙조에 비유했다. 일출만큼 눈부시지는 않지만 아름다움으로 치면 낙조가 일출을 능가할 수 있다고 말하며 레이건의 마지막을 아릅답다고 표현했다. 최근에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엔드게임'에서 영웅의 화려한 죽음을 보고 난 후라서 그런지 저자의 표현에 더욱 공감된다. 아직도 장렬히 전사한 영웅의 마지막 한마디가 귓가를 울린다. 


  죽음의 존엄성과 죽음에 대한 자유 의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삶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사람에게 무작정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 제3자가 봤을 때 같은 병에 걸리거나 같은 사고를 당한 사람일지라도 개개인이 느끼는 무력감과 생각은 다르다. 라몬 삼페드로가 '죽음은 내개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라는 책을 썼을 정도이다. 하지만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인 경우에는 당사자가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 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안락사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세 번째인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에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삶의 네 가지 중요한 요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 놀이, 사랑, 연대가 삶을 의미 있고 존엄하고 품격 있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먼저, 저자는 일 그 자체가 즐겁게 느껴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직업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경찰에게서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던 당시에 저자가 맞지 않으려고 있는 기억, 없는 기억 다 꺼내서 글을 썼다고 한 부분에서는 갑자기 울컥했다. 자신의 삶과 함께 글쓰기에 대한 연습과 훈련 방법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했다. 


좋아하는 소설을 필사하기

어휘가 풍부하고 문장이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반복해서 읽기

수첩에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거나 머리에 스쳐가는 상념들을 붙잡아 메모하기


  저자가 정치 활동도 했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저자에게 있어서 정치는 연대(아픔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회적인 선과 미덕을 실현하는 행위)의 한 방법이었다. 예전에 낸 책에서는 정치를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저자의 정치 성향이 진보 쪽이기 때문에 보수 입장인 사람들이 읽기에 불편할 수도 있다. 진보주의를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진화적으로 익숙하고 생물적으로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진보는 진화적으로 새롭고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진보적 정체성을 가지면 진화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필요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더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보수적 정체성을 가진 시민보다 진보적 정체성을 가진 시민이 평균적으로 11점 이상 청소년기의 IQ가 높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요새 노는 것이 너무 즐거운데 저자가 정곡을 찌르는 언급을 했다. 


낚시를 가거나 당구를 칠 때 마음 한 구석이 왠지 불편하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놀 때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저자는 이 불편함의 정체를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자격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남편, 아버지, 아들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항상 도리만 다하며 살 수는 없다 적절히 타협하면 놀 때는 놀아야 한다. 두 번째는 도덕적 부담감이다. 놀 때 쓰는 돈을 기부하는 데에 쓰는 것이 옳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석가모니도 아니고 노는 것을 포기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을 다 구제할 수는 없다. 놀 때에 떳떳하게 놀면서 약간의 부담감을 통해서 노는 시간과 방법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을 저자는 추천하고 있다. 


  책이 부제목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은 싹이 난 감자 맛'이라는 부제목이다. 왜 싹이 난 감자 맛일까? 갑작스럽게 찾아든 영원한 이별에 대한 상상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저자에게 싹이 난 감자처럼 아린 맛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와의 영원한 작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리다면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연인과 헤어지는 꿈을 꾸는 사람이 그 연인을 정말 좋아한다는 의미라는 카더라 통신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혼인한 이후에도 배우자에게 이성으로서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자식에게 행복을 느끼는 능력과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주의를 기울여서 아이를 대해야 한다. 신생아는 우유를 먹여도 아무 말도 걸어주지 않고 만져주지도 않으면 잘 크지 못하고 쉽게 죽는다고 한다. 그만큼 아이가 자라는 초반이 중요하다. 뱃속에 들어 있을 때부터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문장으로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갓난아이 때부터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이를 씻길 때도 지금 목을 할지 좀 더 놀다가 할지 물어보는 것처럼 어느 쪽이든 큰 문제가 없는 경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여러 번 얘기한다. 그리고 부모들이 인지적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정신적, 정서적, 신체적 능력도 경쟁력을 갖추는 데에 있어서 모두 중요한 능력들이므로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폭력을 쓰지 않고, 제대로 된 사랑을 듬뿍 주어서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저자는 멋있는 노인이 되고 싶다며 홍사중 선생이 일흔여덟에 쓴 수필집에서 정리한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을 먼저 공유했다.


1. 평소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를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한다.

2. 없는 체한다.

3. 우는 소리, 넋두리를 잘한다.

4.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5.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

6.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를 정반대로 하면 노인이든 청년이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며 다음 여섯 가지를 언급했다.



1.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2.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3.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4.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5.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6.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한다.


 마지막 장은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로 삶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신념 그 자체보다는 그 신념을 실천하는 방법이 중요한데, 방법을 잘못 선택하면 삶이 죄악으로 가득 찬다. 올바른 이상과 신념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정당하다는 생각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위협한다. 불운과 출생은 정말 뽑기이지만 이런 것들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평소에 살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저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은 그것들의 끝판왕이다. 삶의 좋은 방향들을 모두 모아놓았다. 완전히 새롭거나 기발한 방법들은 아니지만 저자의 삶과 지식에 비추어 듣다 보니 잔소리가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를 경청하고 나온 기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여태까지 내 삶은 어땠는지 돌이켜 볼 수 있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유시민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알쓸신잡에 관심이 있다면 읽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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