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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준 May 01. 2019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국내 도서 > 역사/문화 > 역사 일반 > 문명/문명사]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19일 출간


  두께만으로도 압도되는 이 책은 자그마치 700페이지 분량에 그림은 거의 없다. 어지간한 도전정신과 마음가짐으로는 펼쳐보기도 힘들다. 출퇴근을 하면서 미친 독서력으로 집에 있는 책들을 읽어나가는 수준에 이르러서야 서재 한편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던 '총, 균, 쇠'에 눈길이 갔다. 초중고대학생들도 이미 읽은 책을 서른이 다 되어서야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제목만 보고 전쟁에 관한 역사책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이야기 한국사 다음으로 읽어야 할 역사책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터라 큰 기대 없이 먼지를 털어내고 가방에 책을 넣었다.


<<총, 균, 쇠>>는 지리적 조건이 지난 13000년간 전 세계인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책


  책 서두의 첫 문장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책에 대한 오해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위의 문장이 이 책의 완벽한 요약이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처음 읽을 때는 '이게 무슨 소리지' 싶었다. 지리적 조건이 역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도 이 글은 저자가 친애하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드리는 편지라고 소개했으므로 끝까지 읽어보기로 했다. 저자가 바라보는 한국은 이렇다.


농업화와 가축화가 용이한 야생 작물과 동물을 가진 중국에 이웃했기 때문에 황허 문명의 혜택을 받았다.

한국은 중국의 단순한 예속국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한반도의 좁고 긴 지리적 특성, 황해라는 자연의 장벽, 중국보다 북쪽에 위치한 기후적 장벽으로 인해 별도의 역사를 발전시켜 나갔다.

한국을 삼면으로 둘러싼 바다는 풍부한 어장과 해산물을 지녀서 선사 시대의 인간 사회를 부양할 수 있게 했다. 

한국은 아시아 대륙에 잘 융합되어 있는 섬과 같다.

많은 일본인들이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사실이지만 지리적 조건은 한국인들이 일본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했다.

한글은 몽골 또는 티베트의 불교 문자의 예에서 착안한 표음 문자의 개념과 중국 한자의 블록 형식의 문자 형태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한글은 표음문자, 블록 형식의 기본적인 개념은 차용했으나 문자의 운용 원칙과 형태 등의 모든 세부사항은 스스로 고안해 낸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 체계이다.


  간단히 말하면,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한국은 중국에, 일본은 한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면의 바다 덕분에 중국에 예속되지 않고 별도의 역사를 발전시켰다. 한글에 대한 칭찬도 빠지지 않았다.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가는 곳마다 한글을 볼 수 있었던 것과 한글 읽는 방법을 배운 일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한국인으로서 이 편지를 읽고 나니 책을 완독 해야겠다는 의리가 불타올랐다. 일본인이 받아들이기 꺼려한 사실을 굳이 짚고 넘어간 점에서도 상당한 가산점이 부여되었다.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푼다



  저자가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하나의 작은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뉴기니의 해변을 거닐 때 만났던 얄리라는 흑인에게서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저자는 이 질문을 뉴기니인과 유럽 백인의 생활양식 비교 문제에서 현대 세계에 존재하는 더 큰 규모의 불균형에 대한 문제로 확대시켰다. 부와 힘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분포하게 되었을까? 즉, 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 이러한 질문으로 변형해나가면서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고 연구해서 저자는 역사 진행의 차이는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백인이기 때문에 더 나은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인종차별주의적인 설명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흘려들을 수도 있었던 우연히 만난 상대의 질문을 확대시킨 것도 대단하고, 이에 답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자료(참고문헌만 약 50페이지가 되며 각각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고 있다. 논문을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참고문헌에 제목만 쓰는 것도 엄청 귀찮고 무시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넣는 건데 저자는 정말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를 분석한 부분에도 기립박수를 보낸다. 괜히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서가 아니다. 참고문헌과 자료를 하나하나 보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티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이렇게 노력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은 19개의 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없고 급하다면 에필로그 부분만 읽어도 저자의 주장에 대한 대표적인 근거 네 가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1. 가축화,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간 차이

2. 확산과 이동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3. 대륙 사이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4. 각 대륙의 면적 및 전체 인구 규모의 차이


  대부분의 야생 동식물은 가축화, 작물화에 부적합했다. 대륙의 전체 면적 중에서 조건이 좋은 작은 일부 지역에서 소수의 종에 해당하는 야생 동식물에 대한 가축화와 작물화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스스로 발명하는 문물보다 다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문물이 훨씬 많았다. 이로 인해 문물의 확산과 이동은 여러 사회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때, 인류의 확산과 이동은 기후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위도가 같은 방향에서 더 유리하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차와 다양한 의복이 없었기 때문에 기후 변화가 클수록 이동이 힘들었을 것이다. 대륙의 주요 축이 동서 방향인 유라시아는 주요 축이 남북 방향인 남북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보다 더 유리했다. 대륙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바다로 인해 다른 대륙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던지 사하라 사막과 같은 큰 장애물이 있다던지 하는 이유로 인해서 대륙 사이의 확산이 방해를 받았다. 대륙의 면적 및 인구의 규모 측면에서도 차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존재한다. 대륙의 면적이 넓고 인구수가 많을수록 잠재적인 발명가의 수가 많고, 서로 경쟁하는 사회의 수도 많고, 도입할 수 있는 혁신의 수도 많아져 더 발전하게 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결론을 내리는 데에 사용된 근거들에 동의하는 부분들도 있고 애매한 부분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도 100% 맞다고 동의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 책을 대놓고 쓰레기라고 욕하는 블로그의 글도 있다. 하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처럼 다양한 참고 문헌과 자료를 근거로 반박하는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혹시 찾거나 쓸 수 있다면 댓글로 꼭 공유해주기 바란다.)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인종차별주의적인 시각을 다른 시각으로 돌리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저자처럼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보고 파헤쳐 보는 데에 관심이 있다면 연구 쪽에 적성이 알맞을 수 있다. 꼭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인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이런 태도는 꼭 필요하다.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보고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해결방안을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냥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저자의 근거들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보고 자신만의 주장을 펼쳐보는 것도 좋다. 개정판에 포함된 내용이지만 최근에 책을 샀다면 '일본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논문도 꽤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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