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발급비 몇십 만 원(?)의 비싼 신분증으로 방치되어 6년간 빛을 보지 못했던 면허증이, 드디어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
그간 운전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무. 서. 워. 서.
처음부터 운전에 공포를 느낀 건 아니었다. 남이 운전하는 차에 탔을 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직접 몰아보니 두려움이 으스스 피어났다.
단순해 보이지만 생명과 재산에 직결된 중대한 행위라는 걸 알아버린 거다.
결정적으로, 운전면허 시험관님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 바로 도로에 나가시면 안 됩니다! 연습 꼭 많이 하세요!”
그 마지막 말이, 내가 도로에 무려 6년 동안 나가지 못한 강한 계기였다.
지인들에게는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그러다 보니 내 속에 ‘난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강한 메시지가 심어졌다. 도로연수 외에는 제대로 차를 몰아본 적도 없으면서 ‘난 못해’라고 지레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몇 년 간 운전을 피해온 내가, 이제는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나이가 되었다.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가고 싶어도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으면 참아야 했다. 자동차로 10분이면 될 거리를 빙빙 도는 버스를 타고 30분 만에 도착하기도 했다. 크게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남편도 불편했는지 내게 운전을 배우라며 몇 번 권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아이가 생기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거나 병원에 갈 일이 반드시 생길 것이라고, 그때 엄마가 운전을 하지 못하면 크게 불편할 거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렇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언제까지 미룰 수 있을까..’라고 생각(만)하던 찰나, 남편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운전 다시 배워보지 않을래? 내가 가르쳐 줄게!”
그런데 이놈의 쫄보 유전자는, 막상 시작하려 하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며 고개를 젓는 나를 향해 남편이 한 마디를 내던졌다.
“남들 다 하는 건데, 왜 못해? 너도 할 수 있어!”
그 메시지는 강력했다. ‘무서워... 무서워...’ 하면서도 나를 결국 운전석에 앉게 만들었으니까.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 그리고 도로에 올라갔을 때에는 말 그대로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가만히 있는 차들을 박는 건 아닌지,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는 건 아닌지, 무리하게 끼어들다 사고가 나는 건 아닌지,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극단적인 결과들은 전혀 실제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초보였기에 더 조심스러웠고, 조수석에는 두 눈 부릅뜨고 도와주는 든든한 남편이 있었다.
... 그래서, 약 2주가 지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속도로에서 100km로 시원하게 1차로를 주행하고, 끼어들기도 큰 두려움 없이 할 줄 아는 어엿한 운전자가 탄생했다. 빈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말하길, 운전에 소질이 있다고 한다. 브레이크와 엑셀도 부드럽게 잘 밟고, 차선 변경도 잘하고, 무엇보다 도로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물론 아직 주차에는 서툰 초보 of 초보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하나의 메시지가 새겨졌다.
‘남들 다 하는데, 왜 나라고 못해?’
아마 덜덜 떨기만 하고 끝까지 운전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면 이런 성취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남편이 태워 주는 차만 타고 다니며, 수동적으로 지냈을지도 모른다. 안전한 곳에 숨으려 했다면, 이 편안하고 때론 짜릿하기까지 한 드라이브를 즐기지 못하는 몸이 되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남편에게 참 고맙다. 덕분에 또 하나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또한 너무나 미안하다. 무섭다고, 못하겠다고 덜덜 떠는 이의 팔을 붙잡고 운전석에 앉히기까지 얼마나 큰 인내심이 필요했을까?
또한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운전에 대한 공포감은 내가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제대로 직접 해보지도 않고 나 자신을 '운전 못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니, 실제보다 더 큰 두려움이 덮쳤다. 그러나 일단 운전대 앞에 앉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초보 치고 큰 실수도 없이 안정적으로 주행을 해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은 무언가에 도전할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면 운전 외에도, 지레 겁먹고 '나는 못해' 라며 뒷걸음질 쳐 충분히 해낼 수 있음에도 놓친 기회들이 많지 않을까.
비록 남들 다하는 운전이지만, 삶에 태도에 대해 다시 돌아본 계기가 되었다.
늘 새로운 도전을 만나면 도망쳐 온 나에겐 '해보기 전까진 모르니까, 일단 해 봐' 정신이 필요하다는 걸.
'뭐 어때? 혹시 기깔나게 잘 할지도 모르잖아!'
혹여나 나와 비슷한 이유로 면허증을 ‘비싼 신분증’으로만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