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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래 May 15. 2020

가장 멋지게 홀로 방치되는 방법, 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군산 구불4길(청암산), 군산호수에서>

지난 월요일 아침부터 오늘 오전(5월 15일 금요일)까지 군산에 머물렀다. 아니, 군산을 돌아다녔다. 


8월달에 있을 군산 1박2일 트레킹 행사의 준비를 위해, 지리정보팀장이 과거에 완주했던 구불길에 새롭게 조사한 여러 녹지와 임도, 산책로, 능선 등을 엮은 코스를 4박 5일간 함께 답사했다.


우리의 업무는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사전조사를 통해 임의로 산출한 근거(물론 그것에는 대부분 지리정보팀장의, 혹은 어쩌다 나의 경험 등이 바탕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예전에 걸어봤던 거기, 꽤 괜찮은데 그 쪽으로 해서 이어볼까요? 같은...)를 실제 답사하여 확인하고 다양한 우회로를 찾거나 확정하는 것은 지리정보팀장의 몫이요, 그 옆에서 함께 걸으며 그 길의 의미나 길이 가진 풍경, 지역의 관광자원(유무형문화재, 맛집, 그 외 다양한 것들) 등을 확인하고 답사기나 칼럼 등을 통해 콘텐츠화 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렇게 2인 1조로 답사를 한다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물론 체력의 고갈은 일단 접어두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은 '일'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답사 중에 그 길에서 '힐링'을 느끼는 것 보다는 '사람들이 힐링을 느낄만한 길인가?', 혹은 '어떻게 하면 이 것에서 힐링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더 매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혼자 걷는 시간이 드물다. '일'을 떠나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그 트레킹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1박 이상으로 트레킹을 혼자 즐길 수 있기가 쉽지 않다.)

<태안해변길 1구간 중 신두리 해안사구의 풍경>

그래도 어쩌다, 그렇게 반나절이라도 혹은 몇 시간이라도 홀로 시간을 내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열정을 새롭게 끌어올려 주는지 나는 안다. (물론 그 리프레쉬의 유통기한은 길지 않다만.) 거기에는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게 되는 고통만큼이나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를 때의 안식, 지금까지 흘린 땀과 열량을 단 번에 無로 되돌리는 스포츠 음료의 쾌감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 (포도당 캔디를 입에 넣어 잘게 부순 채 바로 그 파란색의 '산을 휘몰아치는' 음료를 마시면 정말이지 세상이 내 것만 같다!)


그렇게 계속 걷는 행위 만으로 나는 '걸멍'에 들어선다. 


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행위를 '불멍'이라 하고 물이 흐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행위를 '물멍'이라 하던데,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걷는 것은 '걸멍'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걸어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힐링이 되는 사람을 난 앞으로 걸어야 하는 사람, '걸인'으로 부를 것이다. (혹여 이 글을 본 누군가에게 이후 낯선이가 '당신에게서 저와 같은 걸인의 향기가 깊이 납니다.'라고 말을 걸더라도 놀라지 말지어다.)


여하간 걷는 일로 온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또 다시 걸음으로써 해소하고 새롭게 충전할 수 있다는 이 모순에 중독된지도 오래다.


딱히 거창한 길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출퇴근, 혹은 교외로 나갈때 봐 왔던 익숙한 경로 내에 있는 산, 들, 강변 그 모든것이 기꺼이 '걸멍'을 원하는 나에게 자신을 열어주었다. 때로는 야트막한 산의 능선을 걸으면서, 때로는 뙤약볕을 가릴 길이 없는 드넓은 논밭을 걸으면서, 또한 잉어가 노니는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나는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그렇게 '복잡다단함에 익숙해진 지금의 나'를 지워갔고 또 비워갔다.

<영남알프스, 신불산에서 영축산 방면으로>


친구들이 '걷기'에 대해 물어오는 일이 잦다. 물론 적잖게 건강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만치나 사회적 위치 이상으로 책임감이 안팎으로 쌓이면서 비워내고 덜어내야 하는 행위가 필요함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리라.


물론 내 자신이 과학적, 의학적 지식이 전무하고 또한 그 행위의 결과가 기대치에 이를지, 미치지 못할지도 모르기에 쉽사리 가르쳐주기도 애매할 때가 많다. 그저 내가 아는 코스를 말해주거나 아웃도어 트레킹 앱의 경로와 따라가기를 설명해 줄 뿐이다. 그리고 일단 당장! 운동화라도 좋고 목이 늘어난 티셔트도 좋으며 처음부터 십수 km를 걷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강조한다.


간혹 처음이니 같이 걸어볼까?하는 생각을 안 한바도 아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가 '홀로 걷는다'는 것이 보장되는 것에서 오는 효과, '같이 걷는다'에서 오는 부담을 알고 있기에 쉽게 접을 수 있었다. 


그대여,


익숙한 길이건 아니건, 홀로 걸어야 한다. 걷다가 지치면 앉아서 쉬는 것이고, 길을 헤맬 것 같으면 아예 돌아가도 된다. 


홀로 걷는 것에까지 책임과 목표치를 산정하지는 말자. 그 때만큼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모습을 생각치말고 온전히 '걸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홀로 걷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 


강변을 걷는 당신을 그 옆의 도로위 버스 안의 사람들은 부럽게 쳐다 볼 것이다. 


야산 중턱의 바위 위에 앉아 땀방울을 흘리는 당신의 앞을 유유히 지나가는 '고수'는 당신이 거기까지 올라오느라 흘린 땀과 내쉰 숨 이상으로, 거기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몸을 인도하고 결심을 굳히게 한 당신의 정신력에 존경을 표할 것이다.


물론 당신은 온전히 홀로 걷고 홀로 바라보기에 이 모든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홀로 걷는 당신이 그 길위에서 굉장히 빛나는 존재임을 당신을 제외한 모두는 알고 있다.


그대가 나와 같은 '걸인'의 짙은 향기를 풍기기를 멀리서 응원한다.


동네 뒷산, 혹은 마을의 산책로와 공원이 언젠가 둘레길이 되고 또한 한 두시간이 반나절에서 한나절이 될 때까지, 그렇게 '걸인'이자 '걸멍 마스터'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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