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이, 뉴욕 대학원 졸업해내다
호기롭게 시작한 두 번째 유학생활.
처음 왔을 땐 무식이 용감이라고 영어 못해도 겁도 없이 다니고 뭘 몰라도 그저 새롭게 알아가는 게 재밌었는데. 그래서 그 짜릿했던 경험을 3년간 잊지 못해서 다시 온 유학인데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저번과는 달리 더 겁이 나고 모르는 게 많아 답답했다. 아마 저번보다 더 길게 온 유학에 목표도 더 커서인지 압박이 좀 있었겠지.
한 번은 악명 높은 미국 우체국과의 사건이 있었다. 엄마가 이것저것 가득 넣어서 보내주었는데 그게 집으로 안 오고 그냥 감감무소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트래킹 해보니 집을 못 찾아서 반송되었다고 뜨는데 어디로 반송된 거야?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는 거야? 근처 우체국을 검색해 보니 근처에 우체국도 여럿. 일단 제일 가까운 우체국에 전화를 걸었는데… 하… 자동응답기…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린다. 한국어로도 자동응답기 듣기는 어려운데 영어로 들으려니 하나도 안 들려… 하루 종일 전화기 붙잡고 한 문장 듣고 끊은 다음 다시 전화해서 그다음 문장 열심히 듣고 이런 식으로 했는데 그래도 전화연결은 되지 않았다. 결국 난 우체국을 찾아갔다. 한국처럼 가서 이러이러하다 얘기하고 트래킹 넘버 주면 찾아봐주겠지? 했는데 그것은 오산. 미국 공공기관의 불친절함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이 날 된통 당했다. 내가 영어는 못해도 하고 싶은 말 정도는 할 줄 아는데 찾아봐달라는 내 물음에 되묻던 그 직원.
그래서 네 짐이 어디에 있는데?
장난해? 어딨는지 모르니까 너네 우체국에 있나 알아봐 달라고!!! 성질나서 다른 직원까지 불러서 난리를 쳤더니 그제야 나서서 찾아봐준다. 내 짐은 거기에 있었다. 그 짐 하나 찾는데 보낸 내 시간… 아.. 미국 생활 쉽지 않다.
영어 앞에서 참 많이 무너져 내렸다. 나름 공부 좀 했었기에 여기서 영어공부하면 금방 늘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서른에 하는 영어공부는 쉽사리 늘지 않았다. 어학원 등록 3개월. 그 안에 대학교 지원을 위한 아이엘츠 점수를 따야 했다. 아이엘츠 시험은 응시료가 엄청 비싸서 최대한 한 번에 붙는 게 좋은데 스피킹 영역 때문에 세 번이나 시험을 봐야 했다. 결국 해냈지만 나 스스로가 너무 짜증 나던 시간들이었다. 한국에서 잘 나가던 나 어디 갔니.
왜 이렇게 찌질찌질하게 지내고 있는 거야.
그래도 여차저차 아이엘츠 점수도 만들고 미술학원 다니며 열심히 포트폴리오 준비도해서 학교도 두 군데나 붙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FIT였는데 이곳으로 가게 되면 Associate degree(2년제 대학교)로 가는 거라 사실 한국에서 4년제 졸업한 나에겐 살짝 아쉬운 일이지만 학비가 저렴해서 이렇게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미술학원 담당선생님께서 내 성격과 욕심을 아셔서 New York School of Interior Design에 Master degree로 지원하는걸 엄청 추천하셨고 (선생님께서 졸업하신 학교) 일단 붙고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 듣고 지원은 했었는데 여기까지 붙었다. 이렇게 두 군데 붙고 나니… 내 욕심에 대학원을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고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간 나는 NYSID대학원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이제 이대로 멋지게 뉴욕대학원생이 될 줄 알았는데 나의 찌질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학원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 학교는 규모가 크지 않은데 나와 함께 입학한 친구들 중 영어를 못하는 애는 정말 오로지 나뿐이었다. 다른 외국인 친구들도 어릴 적 유학했던 친구들이거나 자기 나라에서도 영어를 많이 써서 다들 영어에 능통했다. 한 교과목은 인테리어 역사에 대한 과목이었는데 글을 길게 써서 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아무리 번역기를 돌리고 해도 이거 대체 낼 정도인지 아닌지도 분간이 안되어 반 친구에게 읽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이래저래 첨삭해 준 친구에게 고마워서 다음날 초콜릿을 사가서 건네었는데 뭐 이런 걸로 초콜릿까지 주냐며 장난식이 었지만 날 약간 무안하게 했었다.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할 사람이 아닌데… 간지 나던 내 한국생활을 접고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나 자신에게 수십 번도 물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 장점은 금방 잊는다는 것. 이런 마음들은 금방 잊고 나의 강점에 집중해서 대학원 생활을 헤쳐나갔다. 내 강점? 이해력이 높고, 디자인 감각이 좋고, 핵심을 잘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말을 잘한다는 것. 비록 영어는 부족하지만 교수님들이 원하는 게 뭔지 단번에 파악해 냈고 그걸 기반으로 디자인을 하고 특히 영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프레젠테이션 보드는 더욱더 보기 좋게! 내 설명이 없어도 이해가 되게끔, 그리고 글자보다 그림으로! 그리고 왜 내가 디자인을 이렇게 하게 되었는지 설명을 구체적으로 했다.(다른 아이들은 ‘이 색은 내가 좋아하는 색이라서..’ 이런 식의 발표를 많이 했다.) 영어가 부족하니까 발표연습은 더욱 철저히! 그래서 사실 프로젝트 과목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았고 장학금 별로 없다던 이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았다.
영어를 못해 찌질이 같았던 난 그래도 high honors로
뉴욕에서 대학원 졸업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