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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달호 Dec 07. 2018

'현금서비스'까지 태클거는 일본

[편의점 아저씨, 도쿄 편의점 탐방기 (09)]

스토리를 만들라고?


그러니까 일본에서 편의점을 하려면 '자기가 편의점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프랜차이즈 본사에 설명하며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편의점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한국과는 너무 다른 그 풍경이 쉬이 그려지지 않았다. 거칠게 이야기해, 한국에서는 돈만 들고 찾아가면 누구나 '편의점 사장님'을 만들어주지 않던가.


K씨도 도대체 무슨 스토리를 말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머리가 텅 빈 듯 멍했다고 한다. 이렇게 귀찮은 절차를 밟느니 편의점 하지 말고 차라리 다른 걸 할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 자기 운명과 편의점의 접합점, 만나는 대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며칠 뒤,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를 찾아갔다. 앞에 탈락했던 브랜드와는 다른 브랜드 였다. 새로운 면접관을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제 장인어른이 한국에서 편의점을 하고 있습니다. 평생 사업을 하며 지방 소도시에 조그만 상가 건물을 하나 마련하셨는데, 연세가 드시자 편안하게 노년을 보내면서 할 수 있는 업종으로 편의점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우리가 아는 것처럼 편의점이 그저 물건 주문해서 갖다놓고 팔기만 하면 되는 그런 업종이 아니더군요. 알바를 채용하고, 그들을 교육하고 관리하고, 수많은 상품을 챙겨야 하고, 계절에 따라 상품과 진열을 바꿔야 하고, 항상 매장의 위생상태를 점검하고 청결을 유지해야 하고...... 한국에 갈 때마다 장인어른을 도와드리면서 '편의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편의점에 도전하고 싶은 의지 또한 생겼습니다. 제가 거창한 추진력은 없지만 이래뵈도 꼼꼼하고 끈기가 있는 성격입니다. 편의점은 아무래도 저와 딱 맞는 업종이라 생각합니다."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K씨의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더란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로 일본에 와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맨손으로 오늘을 이루어냈습니다. 15년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정들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던 차에 편의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문을 두드린 이 편의점 프랜차이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이고, 그래서 제가 제2의 인생을 걸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회사라고 봅니다. 제가 열정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십시오."


K씨는 면접에 합격했다.


장인어른과 관련된 이야기는 결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K씨는 "95% 선에서 진실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다만 자신의 '스토리'라고 생각지 않았던 가슴 속 사연을 내면에서 끌어내 완성한 것이다.

일본 편의점 3대 브랜드. 세븐일레븐, 훼미리마트, 로손 순으로 1~3위를 차지한다

일본에서 "편의점 오나상"이 되는 과정은 이처럼 회사에 취업하는 것과 비슷한 절차를 밟는다.


면접은 3단계에 걸쳐 실시된다.


일단 편의점 본사에서 주최하는 사업설명회를 듣고 그 자리에서 담당자 면접을 본다. 그리고 팀장급 면접, 최종적으로 지역 총괄 책임자 면접. 이 모두를 통과해야 가맹점을 개설할 '1차적인' 자격을 얻는다.


일본에서 편의점을 창업하려고 할 때 주목할만한 특징이 또 하나 있다. 본사에서 창업예정자의 금융상태까지 파악한다는 점이다. K씨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3차 면접에 통과하고 '이젠 다 됐구나'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전화가 오더란다.


"K상. 혹시 최근에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왜 남의 사생활은 뒤적거리고 그래? 살짝 불쾌해졌다.


"그게 어때서요?"

"그러시면 안됩니다. 일체의 채무가 있으면 면접에서 합격하더라도 가맹 예비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일단 현금서비스 받은 금액을 상환하시고 깨끗한 상태의 금융거래내역서를 다시 제출해주십시오."


생각해보니 그 며칠전 금융거래내역서를 제출했었다. 일본에서 편의점을 창업하려면 본사에 개인 신상과 관련한 증명서와 함께 금융거래내역서를 첨부해 제출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모든 금융자산 현황이 표시된다. 거기에 현금서비스를 받은 내역이 있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설마 이 정도 갖고 문제가 되겠어?'하는 생각에 그대로 제출했던 것이다.


K씨가 현금서비스를 받은 액수는 한국돈으로 10만원 정도 밖에 안됐다. 집에서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도장을 잃어버려 은행에서 출금할 수 없어, 일단 다급한 김에 며칠만 쓰자는 생각에 현금서비스를 받았다. 그 기간에 딱 금융거래내역서를 제출해야 했고.


1백만 원도 아니고, 1천만 원도 아니고, 고작 10만원 현금서비스를 갖고 깐깐하게 굴다니,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규정이 규정이니만큼 K씨는 곧장 현금서비스를 상환하고 '깨끗한 상태의' 금융거래내역서를 발부받아 본사에 제출했다. 그러고나서야 가맹점주 예비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일본의 편의점 본사는 가맹 희망자가 채무가 있는지 없는지, 재정적으로 쪼들리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인지 여부까지 파악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한국 편의점 프랜차이즈에 그런 규정이 있다면 나는 과연 편의점을 창업할 수 있었을까? 순전 빚덩어리에, 아마도 평생 빚이나 갚으며 살아가야 하는 내 신세에 말이다. 대한민국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처지가 필자와 비슷할 것이다.


일본 편의점 본사는 마치 직원을 뽑듯 가맹점주를 선발한다. 여기에는 분명 장단점이 존재한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지난 회에서 "한국 편의점 적성검사에 탈락한 사람을 딱 한번 봤다"는 그 사례에 대해 소개하자.


길게 소개할 것은 없다. 필자의 지인이었던 그 사람은 편의점 본사에서 실시하는 적성검사에 탈락했다. 적성검사 결과는 전산으로 입력되기 때문에, 탈락한 사람을 구제할 방법은 없다.


그래도 그 사람은 편의점을 오픈할 수 있었다. 다음날 그의 아내가 적성검사를 보았고, 아내 명의로 편의점을 오픈했다. 물론 그 남자는 지금도 편의점을 운영중이다.


(계속)


※ <편의점 아저씨, 일본 편의점 탐방기>는 브런치 연재를 묶어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연재에 앞선 작가의 책 : 매일 갑니다,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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