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인 포레스트

안개와 비와 산

by daroo

축축한 습기로 젖은 산을 관조한 적이 있는가.

작은 물 입자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산등성이 사이로 틈새마다 껴있는 안개 덩어리가 구름 같기도, 스프레이처럼 흩뿌려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혹은 언제나가 될 것이다. 머리 위를 둥둥 지나가는 작은 코끼리 구름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코끼리 아저씨는 술에 취해 휘청거려도 기도를 힘겹게 빠져나오는 밭은 숨에 대한 감사라고 했다. 과연, 코끼리 아저씨가 할 법한 생각임에 틀림없다.


세상의 짐을 가득 짊어진 것 같은 사춘기의 한숨처럼 뱉은 숨이 꽤나 짙다. 누구는 들숨과 날숨에 모두 감사하면서 잘만 산다던데. 나만 모든 것에 질투하고 비교하고 괴로워서 밤잠을 설치나? 나만 나보다 잘난 것들이 부러워서 미칠 것 같은가? 내 뒤를 조용하게 지나가던 부처가 그런다. 응. 너만 그런 거 같아.


그래. 나라고 이렇게 고생만 하면서 살라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남들이랑 비교하면서 사서 고생해. 근데 어느 순간 진짜 궁금해졌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진짜로 왜 태어나서 삶을 영위하는 걸까?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뭘까. 책장에 얌전히 꽂힌 철학책들은 답을 알고 있나?

진작 나를 지나 복도 끝을 돌았던 것 같은 부처가 속삭인다.

걔들이 알았으면 너도 진작 알았겠지. 니 인생은 너만 아는 거야.


어른인 척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냥 위선자가 따로 없다. 아닌 척 좋은 척 감추기만 하고. 진짜 즐겁고 좋았을 때가 언제인지도 모르겠어. 옥상에서 담배 한 대 피우는 타이밍만 눈치 보는 것 같고. 남들이 대체 뭐길래 매번 주눅 들어 사는 걸까. 맨날 쉬는 날만 기대하면서 막상 쉬면 뭐 대단한 거 하러 가는 것도 아니면서. 하루를 의미 없이 시간을 축내고 하루의 끝에 한탄하면서 후회하는 게 지겨워질 무렵,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드디어 손을 뻗어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이 책에 내가 갈구하던 인생이 들어있을까 기대하면서.


책의 첫 문단은 [죽음;쾌락을 잊지 못하는 자와 잊혀지기 두려운 자아]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작 됐다.


소외는 작은 죽음이다. 작은 죽음들은 서로를 좀먹으며 큰 죽음의 초석이 된다. 큰 죽음은 결국 완전한 죽음이 되고, 완전한 죽음은 잊혀짐으로 완성이 된다.


광활한 우주가 말했다. 지금 여기에 너 혼자 남아있다고 생각해 보렴. 시야는 잡히는 것 없이 캄캄하게 물들고, 육체는 어딜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지. 결국 네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네 정신이라고 하는 한 줄기 흐린 빛 밖에 없어.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렴. 그 빛이 있어서 너는 어둠을 아는 거란다. 저는 어둠을 알고 싶지도, 그 어둠에 어울리기도 싫은데요. 왜 그런 것 같니? 그냥 어둠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해 봐. 무서워 말고. 하지만 어둠은 무서워요. 나를 집어삼킬 것 같고, 또 그 속에 무언가가 나를 해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둠은 그냥 존재하는 거야.


네가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무서운 거란다. 너를 스치는 공기 한 방울, 바람 한 점에도 너는 사랑을 느낄 수가 있어. 사랑은 로맨틱한 게 아닌가요? 저는 뜨겁고 그 어떤 것과도 대적할 수 없는 그 어떤 무언가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걸요. 오직 그런 사랑만이 제 안에 깊게 들어온다고 생각해요. 제가 꿈꾸는 사랑은 그런 거예요.


너 조차도 그게 무엇인지 모호한데, 당최 남들은 그걸 어떻게 알고,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아챌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구나. ....그런 것들은 바로 알아챌 만큼 강렬하다고 생각하는걸요.


조용히 나를 응시하던 광활한 우주 또는 어둠이 말했다.

강렬한 걸 원하기 때문에 지금 네 곁에 있는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생각보다 모든 것들은 단순하단다.

그리고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지. 같은 생각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과 모레에는 또 다를 거야. 네 의지로 되는 것 같겠지만 세상은 무의식으로 흘러가는 것들이 의지로 보일 때도 있는 법이란다.


나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내 의지가 아니라면, 과연 누구의 무의식이 나를 흔들고 있는 걸까. 나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던가? 사라진 줄만 알았던 어둠이 말한다.

'힘'이라는 게 뭐인 것 같아? 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있어? 네 뿌리를 알아야 해. 누군가가 지나가듯 말하는 동기부여 같은 말들에 단기적인 용기를 얻지 말렴.


다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지 말고,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게 더 득이 될 거야. 그리고 네가 뱉어낸 것들은 모두 다른 것 같아도 결국 너란다.


내 안의 데미안은 어떤 모습으로 뭐라고 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