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기만사이
그래 데미안. 나는 그를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상상 속의 내 완전체.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것은 여성이기도 하고 남성이기도 하며 완전한 지식을 깨우친 선자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하얀 도화지 같기도 해서 내가 속수무책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원죄 같은 그 무엇.
나는 그를 추앙하기도 하고 기만하며 위선을 떨기도 한다. 마치 내 상상 속의 그는 나를 거부할 수 없는 나의 무엇이라서, 아니 정확히는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숨은 내 손아귀에 있는 것처럼.
목이 졸린 그는 나를 대신해서 화내주는 나만의 구원자, 구세주이기도 하고 또 내가 내뱉은 새까만 악의로 물들어 가련하게 바들바들 떨기도 한다.
대체 나는 누구를 희롱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를 그렇게도 괴롭히라고 속삭이는 이 줏대 없는 속삭임은 어디서부터 들려오는가.
나는 발작하듯 휘두르던 손을 멈추고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축 늘어진 채 거울처럼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래. 그는 나의 거울이었다.
여태껏 데미안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는 것에 나의 데미안은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짓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의 구원자는, 내 신실한 믿음과 한없이 추악한 경멸을 받을 존재는 어디 있단 말인가. 도망치는 범죄자처럼, 나는 또 화풀이할 대상을 찾아내려 하고 있었다.
한참을 분노에 떨며 어디론가 소리치던 나는 문득 이 격한 분노의 근간이 대체 어디서 오는지가 궁금해졌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나를 지켜보던 부처가 말한다. 모든 것은 너의 결핍에서 시작되었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아무런 형체 없는 신기루 같은 사랑타령보다야,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는 것이 어떠냐고.
그렇지만 저는 안온한 제 일상을 지켜내고 싶어요. 부처는 놀리듯이 이죽거렸다. 네 일상은 지금도 전혀 안온하지 않아. 온갖 매스미디어에 흠뻑 빠져있는 네 꼴이 마치 웅덩이에 빠진 생쥐 같구나.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알지도 못하는 갓 상경한 시골쥐 같은 모양새야. 시골의 삶이 따분하다고 했니? 아무것도 모른 채 화려한 동경이 가득한 곳에서 너의 이상을 찾고 싶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 혹은 이겨낼 끈기가 요만큼도 없는 너는 차라리 비참한 서울의 삶보다 예전의 평화가 좋았다며 시골로 다시 도망치게 될 거야. 하지만 너는 쫓기듯 내려가서도 동경을 버리지 못한 채로 계속 갈망하겠지. 평화를 꿈꾸며 도망친 네 모습은 잊어버린 채.
그렇다면 이 생에서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말입니까? 이런 행복도 느끼지 못할 거라면 저는 당최 무엇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건데요? 저는 그냥 태어난 죄 밖에 없어요!
부처는 통통한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렸다. 눈만 가려진 게 아니라 내 전부가 가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장 먼저는. 남들을 보지 않는 거야. 지금처럼 눈을 가리고 네 안으로 들어가렴. 네 인생에서 너에게 행복을 주었던 것들을 찾아. 물론 처음은 아주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소한 성공을 경험하면 자신감이 붙어 하나둘 찾아내게 될 거란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너를 어린아이처럼 만들어주는 것을 추려봐.
‘어린아이처럼‘이요? 그래. 세상에 너랑 그것만 있는 것처럼 흠뻑 빠져들 수 있는 것.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되지 않는 것들. 그리고 네가 받은 그대로 반사할 수 있는 것들. 편견과 선입견은 일종의 굴절각이야. 네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보내버릴 확률이 아주 높다는 얘기란다.
그런 다음에는요? 그다음에는 나이키처럼 시도해 보렴. 대신, 세상에게 반응을 바라지 마. 네가 시도하는 것으로 만족함에서 완전을 얻는 것이지, 그들의 평가가 너를 치켜세워주는 것은 아니란다. 너는 그대로 네가 하고 싶은 시도들을 쌓아나가는데 집중해. 아직 네가 완성되지 않았을 때 관심에 눈을 돌리면 설탕물을 발견한 벌처럼 달려들게 될 거란다. 그게 꽃인 줄 알고. 그럼 너는 꿀인척 하는 설탕 덩어리를 만들게 되는 거야. 그들의 시선을 의식한 작품을 만들게 된다는 뜻이고, 그것은 너라고 설명할 수 없단다. 진짜 네가 아니기도 하고, 어딘가 엉성하거든.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귀신같이 알아보지.
하지만 관심을 받으면서도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네가 그 사람들처럼 심지가 곧아서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정한 목표지점까지 묵묵히 걸어 나갈 수 있다면 나도 말리지 않으마. 하지만 너처럼 갓 상경한 생쥐들은 작은 치즈에도 한껏 부풀어올라 으스대게 되지. 처음 먹어보는 거거든. 그렇다면 심지를 곧게 만드는 법이 있나요? 당연히 있지. 그게 바로 내가 추구하던 것들이었으니까. 믿음의 근간이 어디서 오는지를 살펴보면 된단다. 너의 믿음이 정말 믿을만한 것인지, 왜 그렇게 믿는지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면 너는 노력하지 않아도 신실한 상태가 될 거야. 그건 맹목적인 믿음과는 다른 얘기니까. 세상에 화가 나는 것들은 대부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단다. 이해가 안 되니까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거지. 근데 이해가 되면, 화는 나도 생각보다 감정이 격해지지 않아. 나랑 사대가 안 맞는 것들은 버리면 되는 거거든. 그게 결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는 이유야. 근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면요? 그럼 그냥 걔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해버려. 너무 모든 걸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냥 너는 네 안에 있는 너의 데미안이랑 친하게 지내면 돼.
하지만 생각보다 꽤 긴 시간과 몰입이 필요할지도 몰라. 지금의 너는 어린 왕자의 장미 같으니까. 그리고 너의 데미안은 평생친구이기 때문에, 한 두 번 잘해준다고 금방 절친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두렴. 서로의 아주 깊은 생각과 마음까지 온전히 나누는 사이가 되어야 해. 그렇게 된다면 너는 바오밥나무처럼 집채만 한 신목이 될 수 있단다.
그렇다면 이제는 나의 믿음의 근간을 당최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부처는 직감을 믿으라며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고, 다시 이 공간에는 나와 인형처럼 나를 마주 보고 있는 데미안만이 남게 되었다.
인형같이 나를 쳐다보던 데미안은 갑자기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믿음은 에너지에서 시작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