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고양이.
그래 내게 고양이란 작은 핏덩이였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루종일 나를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노벨상을 탔다는 작가의 대표집을 읽으면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고요하고 아담한 재즈가 흐르던 카페를 나와
이제 나를 어디에 기댈까,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서성였다.
알딸딸한 취기에 사실 나는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평소엔 연락도 않던 아는 사람에게 카톡 몇 번을 두들겨봤지만
오늘 나와 저녁을 함께해 줄 사람은 없어 보였다.
외로움이 이다지도. 나를 괴롭게 만드는 무엇이던가.
평소에는 이 대범하고 어떻게 되든 좋을 것 같은 마음을
꼭꼭 숨기고 살았던 걸까.
사실 나는 이렇게나 커다란 외로움 앞에서
그저 아무것도 아닌 채로 휩쓸리기 쉬운 그 무엇이었던가.
그녀의 작품을 단숨에 읽어 내렸다.
읽히기 쉬운 문장들이어서 속독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끈적한 무언가를
나는 과연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읽어 내릴 뿐이었다.
사람의 욕망이란 것은 참 쉽고도 어렵지.
한 순간에 재가 될 듯이 타올랐다가도,
버석버석하게 말린 서늘한 이불조각처럼
정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굴어.
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은 근원적 섹스에 목말라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그다지도 끈끈하게 엮어주는 것을
설명하기로는 그만한 욕망이 없다는 뜻일까.
나는 그 책을 읽기 전
나의 심정을 토로하는 글을 종이에 끄적였다.
책을 읽으면 무언가가 달라질까 하는 마음을 내심 기대한 채로.
하지만 이야기의 후반부로 흘러가는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외로움과 술에 기대고 싶은 알량한 마음뿐이다.
술이 좋긴 하구나.
경계심 없이 허물어지는 지금의 나를 비참할 정도로 비춰내고 있으니.
그렇게 열심히 내 안의 나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해도 되지 않던 것이었다.
라스트오더가 이미 끝나버렸다는 고깃집,
혼자 술 한잔이나 할까 기웃거려 봤던 혼술집도 죄다 만석이었다.
다들 내일 출근이라는 건 없는 것처럼 작은 공간에 꾸깃꾸깃 들어앉아있던 청춘들.
아마 그곳에 내가 어렵사리 자리했더라도 깊은 외로움을 털 누군가를 찾기는 어려웠으리라.
얕고도 밋밋한 사소한 설렘마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초봄의 꽃잎이 아닌,
혹독한 한겨울을 오롯이 버텨낸 추위를 담고 있는 명치께의 싸늘한 외로움이
나를 반기는 것이었으니.
손 한 번 스치면 흐려질 연못의 그림자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님을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외로움. 그것은 고독함인가 그저 두려움인가.
어쩌면 나는 소설을 깊게 흡수한 걸 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도 나를 받아주는 이가
없을 것 같아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비밀번호와 현관 한 켠에 쌓여있는 택배들을
이리저리 끌어모아 집안으로 옮기고 나니, 몸에 훈기가 살짝 돈다.
집 근처 편의점의 귀여운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생각났다.
될 인연이면 언제든 만나겠지. 고개를 털어내며 다른 생각에 잠긴다.
저 소설을 읽기 전의 나의 모습은 어땠더라.
아까 적어두었던 종이를 찍은 사진을 찾아야 알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은 귀찮아하며 의자에 늘러붙는다.
택배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도망쳤던 고양이가 먀옹, 울면서 내게 달려온다.
그 작은 심장이 두근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 작은 방 한켠에서
날 홀로 기다리던 작은 심장을 가진. 작은 핏덩이.
이 핏덩이가 내게 주는 온기가 이토록 달콤한 걸 나는 알고 있었는데.
뭐가 그렇게 외롭고 헛헛했던 걸까.
가만히 맞닿은 심장이 두근거린다.
-
발바닥의 꼬순내가 진동을 한다.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면, 저도 만져달라는 듯이 책상 위로 훌쩍 올라와 머리를 들이민다.
무시하려면 책상 한 켠에 자리를 내어줘야 하기에
갓난아기를 안아 매듯 품 안에 답삭 당겨와 머리를 몇 번 쓰다듬는다.
얼굴을 만질 때마다
하품을 한 번씩 하는 작은 핏덩이를 내려다보자니,
품에 안기고 싶은데 졸립기도 하고,
침대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한세월일 것 같아 온 모양새다.
팔과 가슴에 기대어 호박색 눈을 반짝이기도 하고,
졸린 눈으로 쓰다듬지 않고 뭐 하냐는 듯이 앞발을 도닥인다
얌전히 그네의 죽부인이 되어주자,
키보드 위를 오가는 것 정도는 봐준다는 듯이 아량 넓은 얼굴로 눈을 감는다.
마음에 안 들면 꼬리 한 번, 말랑한 몸 한 번 뒤틀어주면
제 밥그릇을 꼬박꼬박 챙겨주지만 매번 어딜 다녀오는지
집구석에 뭉그적거리며 들어오는 죽부인이
긴장하며 자세를 고쳐 잡는 것이 꽤나 달가운 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