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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망망 Mar 27. 2019

이 시대의 ‘불멸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일민미술관 <불멸사랑> 전시 리뷰



일민미술관의 전시가 바뀔 때마다 걸리는 대형 포스터는 광화문 일대의 풍경에 큰 영향을 준다. 미술관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일민미술관의 포스터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포스터가 큰 반향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18년 하반기의 <엉망> 전이다. 엉망이라는 단어와 타이포그래피가 주는 느낌이 오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다.




<엉망>과 <불멸사랑> 포스터. 사진출처: 일민미술관 홈페이지




그리고 이번에는 불멸사랑이다. 일민미술관이 위치한 광화문역 5번 출구 부근은 십자가를 내세워 ‘멸공’을 주장하는 아이러니한 현수막과 광고판들이 점령하고 있기에, 이 <불멸사랑>이라는 메시지는 마치 주변 환경과 연관된 듯 보여 사뭇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존재감 강한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숫자 0과 1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상단의 포스터 사진을 확대해보면 보인다). 복고풍의 타이포그래피에 디지털 세계의 이진법이라는 요소가 더해졌다. 이쯤 되면 미술관에서 전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불멸사랑이란 대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사실 불멸사랑이라는 전시제목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끄는 만큼 오해의 소지도 많다. 누군가는 종교적 영생이나, 영원한 사랑의 로맨틱한 이야기를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불멸사랑은 ‘불멸의 사랑’이라기보다는 불멸을 향한 사랑에 가까우며, 불멸할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의 간절한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은 기억되기를 원한다.


기억되고자 하는 욕망은 기록체계로 발전하여, 인간은 죽음 이후에도 흔적을 남긴다. 기록된 수많은 이야기들은 ‘역사’를 형성하며 때로는 ‘신화’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기록의 방식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겪고 있다. 여기에서 미디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디지털화된 문자와 이미지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자동 저장되며, SNS를 통해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예전에는 개인의 일기장이나 가족의 사진 앨범 안에 고이 담겼을 기록들이 이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많은 타인에게 공유된다. 메시지와 이미지의 광범위한 확산에 대해, 누군가는 SNS의 정치적 순기능을 말하고 누군가는 위험성을 말한다. 어찌됐든 기록의 매커니즘 자체가 변화했다는 사실은 명백한데, 이 안에서 ‘역사’와 ‘신화’가 쓰여지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 <불멸사랑: Immortality in the Cloud>은 기록, 역사, 신화가 생성되고 소비되는 동시대적 방식을 가늠해보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여러 작가들의 미술 작품들을 제시하고 있다. 6인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소소한 개인의 기록부터 거대한 역사의 비극, 또는 세계 각국의 신화, 디지털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실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다룬다.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수렴되기보다는, 불멸사랑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관점들이 한 전시 안에 뒤얽혀 있는 셈이다.





#개인의 기록


이번 전시 참여 작가 중 이우성 작가는 인스타그램을 통한 기록에 익숙한 세대의 시간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우성 작가의 작업 <밤, 걷다, 기억>에서는 작은 정사각형 드로잉 300여개가 공간을 가로지르며 정렬되는데, 이 드로잉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르는 시간 순의 타임라인을 따르고 있지 않다.


이우성, <밤, 걷다, 기억> 전시전경


작가는 스마트폰의 사진첩에서 드로잉의 소재들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우리가 사진들을 SNS에 업로드할 때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시간 순서대로’ 올리지만은 않는다. 때로는 과거의 경험을 현재로 끌어 오기도 하고 맥락에 맞는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올렸던 사진을 삭제하기도 하고 재편집하기도 한다. 이렇듯이 이우성 작가는 과거는 현재에 의해 재구성된다고 이야기하며,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이미지들을 재편집하는 것이다. 시작도 끝도 정해져 있지 않은 타임라인이 펼쳐진다.


관객은 주욱 걸으면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듯 이우성 작가의 이야기들을 관찰하게 된다. 단지 작가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공유했던 순간들, 정치적으로 중요했던 상황들이나 TV에서 본 장면들이 상상을 통해 변형된 모습들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비어있는 칸이 등장한다. 마치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생성되고 있고 그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는 듯이.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작가의 인스타그램과 실시간으로 연동된다. (https://www.instagram.com/gawi_bawi_bo/)



이우성 작가가 자신의 기억을 정리한다면, 권하윤 작가는 타인의 기억을 전해 듣고 이를 ‘번역’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진다. 권하윤 작가의 영상 작업 <새여인(The Bird Lady)> 자신의 스승인 프랑스인 ‘다니엘’의 경험담을 듣고(영상의 내레이션은 다니엘이 직접 했다), 작가의 시각적 상상력으로 그 이미지를 구현한 결과물이다. 이때 이미지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상당 부분 왜곡되었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전달자의 관점이 개입되고, 왜곡이 따르기 마련이다.


 

권하윤, <새여인> 전시 전경




#역사 다시쓰기


그렇다면 역사에 기록된 공식적인 기록은 어떨까? 당시를 기억하는 증인들이 모두 사망한 이후에 역사는 단지 문자와 이미지로만 남는데, 역사의 기록이란 현실을 입체적으로 반영한다기보다는 단편적인 승자의 기록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진실된 역사라는 것은 있을까?


일민미술관 건물 5층에는 동아일보 측에서 (미술관과는 별도로) 운영하는 신문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신문 130년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역사 박물관이다. 그리고 이번 <불멸사랑> 전에서는 이 신문박물관 안에 미술 작품이 끼어들어가는 최초의 시도가 이루어졌다.


현대미술 작품이 기존 역사박물관 안에 배치되었을 때, 우리가 역사를 보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신문박물관의 인쇄기 앞(좌), 유물장 안(우)에 전시된 서용선 작가의 작품들 (사진: IMA AMI 최보윤)



서용선 작가의 작업은 사실 신문박물관과 꽤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역사 혹은 동아시아 지역의 신화를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용선 작가의 작업은 주로 죽음과 전쟁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6.25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출생의 작가는, 전쟁과 그 이후 이데올로기 갈등 상황의 잔재를 겪으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신문의 역사에 집중하던 기존의 박물관은 서용선 작가가 부각시킨 역사의 이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까지 포함하게 되면서 오히려 한층 무거워진 기분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희생의 역사가 수면에 드러나면서, 역사의 기록 주체였던 권력자들의 위세는 한층 꺾이게 된다.




#신화 다시쓰기


한편 이번 전시 1층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프랑스 작가 파비앙 베르쉐르의 작업들이다. 그는 신화라는 어찌보면 가장 무거워 보이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비주얼만큼은 이 전시에서 가장 유쾌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에게 신화란 일상 속에 녹아 있는 것이며, 전세계의 신화는 혼재되어 복합적인 캐릭터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파비앙 베르쉐르, 작업 중일 당시 벽화의 모습(좌)와 작품 전시전경(우)



파비앙 베르쉐르는 한국을 여행하면서 만나게 된 일상적이지만 신화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제주도의 돌하르방이나 서울의 빨간 전광판 십자가들에 주목한다. 또한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선 간판들을 ‘장승’과 유사한 형태로 읽고, 풍선 간판이 현대 한국 도시의 토템처럼 보인다는 새로운 상상력을 내놓기도 한다.


그는 한국의 관객들과 보다 친근하게 소통하기 위해 귀여운 포토 존과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마련했다. #파비앙오빠 또는 #fabienoppa 라는 해시태그는 작가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그는 한국 치킨을 좋아하며 그 중에서도 오빠닭을 좋아한다고 한다.)


파비앙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https://www.instagram.com/atelierverschaere/






필자가 생각하기에, 불멸사랑이라는 단어는 미술 자체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읽힐 여지도 있다. 우리는 미술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영원한 가치인가 일상의 즐거움인가?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미술은 그 자체로 불멸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의 소품이나 사진의 배경으로 소비되곤 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사람들이 미술에 기대하는 ‘무거움’과 ‘가벼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불멸과 일상 사이, 영원과 현재 사이에서의 줄다리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불멸사랑 Immortality in the Cloud

2019.2.22 - 5.12

일민미술관

참여작가: 강이연, 권하윤, 서용선, 이우성, 조은지, 파비앙 베르쉐르


글 IMA AMI 1기 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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