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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망망 Jan 20. 2019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여행과 일상과 예술에 대한 짤막한 메모



여행은 일상과 분리되어 있기에 그만의 의미를 갖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상에서 분리된 듯한 짤막한 순간의 빛 (2019, 제주)


그렇다면 일상은, 여행과 같이 특별한 몇몇 순간들을 빛나게 하기 위해 반복되는 어떤 것에 불과한 것일까?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간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일까? 한 번 꿔 보고 싶은 꿈이고,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지 않은가.


여기에서 질문을 조금 바꿔볼 수 있다. 여행은 정말 우리가 꿈꾸는 특별한 순간인가? 사실 우리에겐 일상에 대해 가진 냉소만큼 여행에 대해 가진 수많은 환상들이 있다.


이를테면 여행을 통해 여유를 회복한다던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던가, 크게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까지도 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의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사색을 위해, 즐기기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여행지에서도 일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먹어야 하고 이동해야 하고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바쁘게 분투해야 한다.


결국 여행지에서도 잠깐의 여유와 사색을 즐기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동과 검색과 육체노동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상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행이 일상보다 특별히 더 여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유는 고양이의 몫이다. (?)


여행에 대해서만 환상이 있는 건 아니다. 필자는 일상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있다. 만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아주 나다운 일을 한다면, 그 일상은 특별하고 행복하게 빛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종류의 환상이었다.


그리고 현재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 전공도 이름만 들으면 환상을 가질 만한 미술이론이다. 하지만 미술을 공부한다고 해서 나의 일상이 특별한 것만은 아니다. 사실 특별함보다는 고립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알아주는 보편적인 세계가 아닌 한정된 사람들의 전문적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앞으로 돈을 많이 벌 일도 없고, 따라서 예술에 대한 사랑이 많이 요구되는, 견뎌야 하는 그런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됐든 미술은 나에게 일상이 되었다. 더 깊이, 더 자세히 더 많은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예술 향유자를 넘어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부담을 가진 입장에서 미술 비전공자들이 부럽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전공자가 아니었다면 미술은 내게 여행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그곳을 여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전공이 아니었다면 그럴 시간조차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제 여행자가 아닌 가이드가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항상 자신의 무지함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예술은 더 이상 낭만적인 것만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영역으로 인지된다.




예술은 여행과 일상 사이 그 어디엔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와 상당히 비슷하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일관되게 좋아하는 미술가가 있다. 지식 유무와 상관없이, 현재까지 좋아하는 미술가 (아마도) 1순위는 르네 마그리트인데 이유는 단순하다. 마그리트는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데에 큰 재능을 가졌다. 익숙했던 대상들이 낯설게 배치되고, 그 배치를 통해 틀을 넘어서는 생각을 가능케 한다. (마그리트 회화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미셸 푸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참조하기를 추천하면서도 추천하지 않는다.)


René Magritte, The Human Condition, 1935 (출처 위키피디아). '그림'과 그 '모델'로서의 실재하는 풍경 사이 경계가 사라진다.


마그리트가 만들어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뒤섞인 화면 속에서 ‘여행으로서의 일상’을 떠올리게 된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낯섦을 인지한다는 것이며, 필자에게 이것은 곧 예술을 향유하는 일상을 뜻하기도 한다.




여행과 예술의 공통점이라면 ‘낯설게 하기’가 아닐까 한다. 여행 또는 예술이 항상 마법처럼 인생을 바꾸어 주거나 일상과 전혀 다른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행 또는 예술은 적어도 낯설게 바라보고 새롭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틀 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경우는, 여행을 하거나 예술을 향유하면서도 자신에게 익숙한 틀 안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래서 이게 뭔데?’에 대한 완벽하고 수긍 가능한, 평소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결론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외국에 가서도 한국과 똑같은 편의시설을 기대하는 것이나, 석양 앞에 서서 포즈를 잡고는 사진에 자신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여행이나 예술의 경험은 그렇게 쉬운 결론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낯섦에 적대감을 품지 않고 자신이 가진 프레임을 넘어서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여행과 예술은 말을 건다. 그렇다면 진정한 가이드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까지 ‘닫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범위까지 ‘열어주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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