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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Sep 29. 2021

두유노 김치? 미국 깡촌 명문대생의 인생 첫 김장썰

Do You Know Kimchi?

다트머스 한인회에는 재밌는 전통이 있다. 1학년 대표들의 주도로 매년 겨울마다 김장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입학하기 전에도 한번인가 했다가 이후로 뜸했다고 하는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린 선배들이 다시 해보자고 건의를 하면서 다시 매년 이어지는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김치는 생전 한번도 안 담궈봤는데...'


한인회 1학년 대표로서 갑작스러운 김장 미션이 생긴 나는 조금 당황스러지만, 씩씩하게 인생 첫 김장을 준비해 보기로 했다. 전에 김장을 해본 선배들에게 조언도 듣고 엄마한테 레시피도 여쭤보고 따로 검색도 해가며 나름의 노력을 했다.


철저한 사전조사 결과 우선 필요한 재료는 배추랑 고춧가루, 액젓, 소금, 파, 생강, 마늘! 처음에는 미국땅에 어찌 한국 배추가 있겠냐 했지만 한국 배추와 똑같이 생긴 배추가 Napa Cabbage라는 이름으로 있어 근처 신선작물 장터에서 사왔다. 나머지 파, 생강, 마늘 등의 재료도 신선작물 파는 곳에서 구입했다. 액젓이나 고춧가루, 소금은 H마트라는 한국식료품 쇼핑몰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처음엔 김장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일이 술술 풀렸다.


하지만 재료 구하기는 시작에 불과했으니 김장의 시그니처인 '그것'을 구해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빨간 고무 다라이(대야)였다!

(김장의 상징! 빨간 고무 다라이!!)

슬프게도 백방으로 알아봐도 해노버 산골에서 저 빨간 다라이를 구할 길은 없었기에 아쉬운 대로 월마트에서도 구할 수 있는 큰 플라스틱 보관함을 여러개 구매했다. 마지막으로 김장을 할 때 바닥에 양념이 묻지 않게 깔고 김장을 땅에 묻을 때 김치를 담을 목적으로 기숙사 비품함에 있는 공용 쓰레기 봉투도 챙겼다. 쓰레기 봉투라고 하니 더럽게 느껴지지만, 편견을 버리고 생각해보면 그냥 커다랗고 질긴 소재의 비닐백이라 쉽게 터지거나 냄새가 바깥으로 퍼지지 않아 나름 유용한 아이템이다.


아무리 김장날이지만 김치만 있으면 섭섭할 수 있으니 우리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려 김치와 찰떡궁합인 맛있는 수육까지 준비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삼겹살을 돼지뱃살(Pork Belly)라고 부른다. 미국 요리에 흔히 쓰이지 않는 부위이기 때문에 매대에 항상 진열되어 있지는 않고 미리 주문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김장날 며칠 전에 미리 식료품점에 전화해 삼겹살 17파운드를 주문했다. 여기에 김치 재료를 온라인 구입할 때 미리 수육용 된장, 쌈장, 양파, 후추 등도 함께 주문해두는 치밀함까지! 완벽한 계획이었다.


김장을 하는 과정은 딱히 특별할 것 없다. 본격적으로 김장러(?)들이 오기 전 먼저 한인회 임원들이 모여 월마트에서 산 플라스틱 통에 소금물을 만들고 배추를 절여둔다. 한국에서는 밤새 절여두기도 하지만 따로 둘 곳이 없어 우리는 그냥 몇시간 전에 만나 절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내가 담당이었던 첫 해에는 김치 냄새가 꽤 강하다는 것을 깜박하고 기숙사 내의 부엌이 달린 커먼룸을 예약해 그곳에서 김장을 했는데, 두 번째 해부터는 한국인만 사는 아파트 방에서 진행했다.)


슬슬 김장러(?)들이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양념을 만들었는데, 레시피를 참고해서 액젓,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등을 넣고 비닐 장갑을 끼고 열심히 버무렸다. 친구들 중에는 김치 양념이 묻을까봐 아까 말했던 쓰레기 봉투에 머리와 팔다리 구멍만 뚫어 옷처럼 입고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꽤나 본격적인 노동의 현장)

삼삼오오 모여서 완성된 양념을 미리 절여둔 배추의 잎 사이사이에 바르다가 서로 먹여주는 것은 덤! 그렇게 열심히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바르다 보면 어느덧 준비한 배추가 모두 동나고 양념이 발라진 배추들은 비워둔 마지막 플라스틱 보관함에 차곡차곡 쌓인다.

(왠지 식욕저하 다이어트짤 같지만 진짜 맛있었다!)

김장이 끝나갈 무렵 한켠에서 동시에 만들던 수육도 완성되면 고기를 썰어 접시에 내는데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오늘 갓 만든 김치를 슥슥 썰어 접시에 담아내고 노동하느라 수고한 한인회 학생들, 캠퍼스 이메일을 보고, 또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들른 외국인 학생들까지 한데 모여 김치와 수육을 먹기 시작한다. 여기에 지어둔 밥까지 더하면... 정말이지 환상이다!


배불리 먹고 남은 김치는 쓰레기 봉투 비닐 두개를 겹쳐 그 안에 담았다. 땅에 묻기 위함이었지만 매년 실제로 땅에 묻지는 못했다. 땅이 이미 얼어 있어(!) 삽이 들어가지조차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김치는 한국인 학생이 지내는 아파트 방 냉장고에 넣기로 결정되었다. 이후 냉장고 속 김장김치는 캠퍼스의 한국인들이 모이는 구실이 되었는데, 후일담으로는 겨울학기 내내 그 아파트에서 찌개도 해먹고, 일주일에 한번씩 삼겹살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첫 해의 김치는 특히나 성공적이어서 해노버의 한국식당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번째 해는 양념을 만든 두 여학생 - 나도 포함된다 - 의 입맛에 따라 액젓이 과다 포함된 남도 김치가 되었다.)


한인회 학생 중에서도 김장을 처음부터 직접 담가본 학생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직접 준비했던 나조차도 김장은 처음이었다. 비록 서툴긴 했지만 그래서인지 더 재밌었고, 특히 그 장소가 미국에 있는 대학이라 더욱 특별한 추억이 된 것 같다. 매년 김장과 김치파티에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초대하면, 한국음식과 한국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어 자랑스럽기도 했다. 나와 다른 친구들이 매년 김장을 기다리는 것은 한국이나 한국음식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닐것이다. 미국의 깡촌에서 한국적에서도 못해본 한국적인 경험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정도 들고 추억도 쌓이는 김장... 내가 졸업한 후에도 이 김장 전통이 이어지면 좋겠다! 쭈ㅡ욱!


(편집자 주: Dartmouth Korean Student Assosiation 페이스북 그룹을 보면 혜령이가 졸업한 2016년 이후 2018년까지는 김장 전통이 이어진 흔적이 있다! 2019년 겨울에 코로나19가 터졌으니, 코로나가 물러가면 다시 다트머스 한인회에도 김장 전통이 재개되지 않을까...?)


Written by Hye R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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