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Eat Korean Food in Hanover
물론 나름대로 메뉴가 다양하긴 하지만, 다트머스 학생식당 밥은 아무래도 샌드위치, 샐러드, 파스타, 피자 등 양식 위주이다. 깡촌의 캠퍼스에 갇혀서 삼시세끼 학생식당 밥만 먹다보면 뭔가 속이 느글거리기도 하고, 조금은 물리기도 하고, 간절히 한국 음식이 땡기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날에는 달고 짠 미국 음식이 아닌, 고추장의 화끈한 매운맛이 땡기기도 한다. 이렇게 미치도록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1) 간절한 자가 구하라!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직접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는 방법이 있다. 캠퍼스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코옵(Co-op)이라는 마트가 있는데,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자취요리사의 보물창고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하나로마트 정도 되는 규모인데, 요리하는데 필요한 채소나 육류 등 대부분의 재료는 여기서 구매가 가능하다. 물건이 많진 않지만 급할 땐 아쉬운대로 유용한 아시아 식료품 코너도 있다.
그럼 떡이나 고추장, 된장처럼 미국 마트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재료는 어떡하냐고? 그런 재료들은 유학생의 절친 H마트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면 택배로 받을 수 있다. (냉장, 냉동배송 되어야 하는 재료들은 아이스박스에 배송이 온다)
재료를 구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보니, 라면 정도를 제외한 한국음식을 충동적으로 해먹기는 어렵다. 해노버에서 한국음식을 해먹는 것은 상당한 의지가 필요한데, "이번주 주말에 해먹을까?"하고 미리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한식 재료는 H마트에서 주문한 뒤, 시간을 내서 코옵에도 다녀와야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학년 때 별명이 "엄마"였을 정도로, 1년 내내 한국음식을 꽤 많이 해먹은 편이다. 떡볶이, 김밥, 유부초밥, 김치볶음밥 같은 분식은 물론이고, 폴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친구 생일에는 미역국을 끓여 각종 한식과 함께 생일상을 차려준 적도 있다. 심지어는 한국 추석을 맞아 친구들과 나눠먹을 전을 부치고 갈비찜을 한 적도 있는데, 최소 30인분 이상을 만든 것 같다. 재료를 다지고 손질을 하는데만 하루, 실제로 전을 부치는데 또 하루 해서 무려 이틀이 걸린 대작업이었다.
한식을 만들 때 기숙사 공용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보니 딱 1-2인분을 하기는 어렵다. 물론 내가 손이 큰 탓도 있지만, 재료를 남겨봤자 방에 있는 미니 냉장고에 딱히 보관할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은 재료로 나중에 다른 요리를 또 해먹을 만큼 요리를 자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구매한 재료를 아낌없이 털어서 음식을 만들고 먹을 사람을 구하는 편인데, 모자라면 모자랐지 한번도 음식이 남은 적은 없었다. 한국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넘쳐나니까...!
나는 한국 음식을 만드는 것에 꽤 진심이었던 편이라서 블릿츠에 무려 KOREAN FOOD라는 그룹도 있었다. 한국 음식을 만들 계획이 있거나, 만들어둔 음식이 남으면 저 리스트에 있는 학생 전원에게 블릿츠를 보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했는데, 나한테 이런 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페이스북에 밝히자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많은 친구들이 댓글로 자기도 리스트에 넣어달라고 했다. 한국인이 아닌 친구도 꽤 있었는데, 외국인 친구들이 내가 만든 한식을 좋아해줄때는 특히 더 뿌듯했던 것 같다.
한식을 자주 만들다보니 나의 요리 실력은 나날이 발전해서, 2학년 때 캠퍼스 밖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을 때는 집에서 수타 짜장면과 칼국수, 수제비 등을 만들어 먹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번은 동생이 한국식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야 아무리 그래도 짜장면을 집에서 어떻게 만들어!"하면서 코옵에 갔는데 중국식 춘장과 굴소스가 있길래 양파, 완두콩, 옥수수, 돼지고기, 밀가루를 사서 어찌저찌 만들었더니 나름 짜장면과 비슷한 맛이 났더랬다.
나는 주로 혼자 준비하고 요리를 해서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 타입이었지만, 일반적으로 기숙사에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일종의 소셜 이벤트에 가깝다. 친한 친구들끼리 기숙사 부엌에 모여서 레시피를 검색해가며 오손도손 함께 만들어 먹는 것이다. 명절 아닌 명절 느낌이랄까? 간을 본다는 핑계로 완성하기도 전에 엄청 먹어버리기도 하고, 만드는 시간보다 수다떠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같이 모여 한국음식을 해먹으면 왠지 스트레스 조금 풀리곤 했다. 어쩌면 그 시절 우리에게 간절했던 것은 단순히 한국 음식이 아니라 한국 음식을 빌미로 한 한국에서의 일상 한 조각이었을지도...!
(2) 깡촌의 한줄기 빛, 스시야-마!
한식이 그립긴 한데 너무 바빠서 직접 해먹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면? 다행히도 해노버의 작은 다운타운에는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이 있다. 2014년 중반까지는 "야마"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이후로는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주인만 바뀌어서 "스시야"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음식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스시와 캘리포니아롤을 주력 메뉴로 파는 일본 음식점이다. (송희와 해리는 두 이름을 합쳐서 스시야마라고 부르곤 했단다)
야마와 스시야는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더 유명한 일식을 앞세웠지만 사실 둘 다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그래서인지 일식 메뉴와 함께 김치찌개, 떡볶이, 제육볶음, 순두부찌개, 비빔밥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을 같이 파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인 만큼 꽤 먹을만하다. 공통 양념장을 미리 만들어두고 쓰시는지 매운 음식은 대체로 비슷한 맛이 나긴 했지만 말이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혹은 힘든 일이 있어서 엄마의 손맛이 그리울 땐 아쉬운대로 스시야마에서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
메뉴판에 있는 고정 메뉴들 외에도 스시야마에서는 된장찌개, 떡국, 한국식 짜장면 등의 한국인에겐 너무나 취향저격이지만 외국인들에겐 생소한 음식들을 요일 특별 메뉴나 기간 한정 특식으로 판매하고는 했다. 별 수요가 없었을텐데도 이런 음식들을 만들어준 것은 유학생들에 대한 사장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한인 학생회에서 진행되는 큰 행사에는 야마가 케이터링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우리는 머나먼 미국의 깡촌에서도 가끔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스시야마가 없었더라면 설날 같은 한국 명절에 떡국도 못 챙겨먹고 쓸쓸하게 지나갔을텐데...! 스시야마 덕분에 해노버의 추운 겨울 속 맞이한 고국의 명절(?)에도 따뜻한 떡국을 한그릇씩 먹으며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다.
Written by El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