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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01. 2021

노다메에게 피아노가 있다면 나에겐 플룻이 있다!

The Singing Voice of Song’s Flute

다트머스에 합격하고 커다란 3단 이민가방에 유학생활을 위한 짐을 바리바리 싸며 나는 긴 고민에 빠졌다.


'플룻을 가져가야 할까?'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처음 배우기 시작한 이후 7년 동안 나와 함께해온 플룻이었다. 숨막히게 바쁜 외고 생활 속에서도 자유음악동아리 MORE (Music Of REvolution)에 가입해 플룻을 계속 해오기도 했다. 비록 마지막 해에는 대학 입시 준비로 취미생활을 할 여력은 없었던 터라 1년 정도 전혀 꺼내보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혹시 모르니 가져가볼까?' '안쓰는데 괜히 짐만 되는거 아닐까?'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결국 플룻을 챙기기로 했다.


손에서 놓은지 조금 된 플룻을 머나먼 유학길에 다시 챙겨간 이유는 내게 오케스트라에 대한 오랜 로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다메 칸타빌레부터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내 학창시절 최애 드라마들은 대학에 가면 반드시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키우게 해주었다.


하지만 플룻을 싸들고 온 보람이 없게도, 오랫동안 연습을 하지 않은 탓인지 다트머스에 와서 뒤늦게 3일간 하루 3시간씩 속성으로 연습한 후 봤던 다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Dartmouth Symphony Orchestra) 오디션은 가차 없이 나를 떨어뜨렸다. 그렇게 1학년 첫 학기 내내 나의 플룻은 마치 스무 살 때 딴 후로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내 장롱 면허처럼 방구석 어딘가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고이 모셔지게 되었다.


(다트머스 2회차였던 것이 분명한 J. 덕분에 플룻을 계속할 수 있었다!)

미국까지 함께 온 플룻이 별 활약도 하지 못한 채 꼼짝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운명에 처했을 때, J라는 친구가 우연한 기회에 내가 플룻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플룻 레슨에 대해 알려주었다. J는 나와 동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트머스 2회차인 것처럼 다트머스에 대해 모든 것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는데, 이 친구에 따르면 학교 음악과에서 제공하는 Individual Instruction Program (IIP)을 통해 수업 크레딧을 받으며 따로 레슨비를 내지 않아도 수준급 교수님에게 악기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플룻을 손에서 놓은 것이 늘 마음 한 켠의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던 나는 바로 수강 신청을 했고, 그렇게 Alex Ogle이라는 교수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받게된 플룻 레슨! 레슨 첫 날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연습실에는 지금까지 다트머스에서 만났던 그 어떤 교수님들보다도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파란 와이셔츠에 빨간색 멜빵을 하고, 녹이 슨 듯 검은 빛깔이 나는 플룻을 들고, 차분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아직 영어가 짧았던 나는 서툴게 교수님과 인사를 나눴는데, 신기하게도 교수님의 느릿느릿한 말투는 남몰래 ‘영어 콤플렉스’를 키우고 있었던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이해 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레슨 첫 날, 막상 플룻은 거의 불지 않았다. 찬찬히 내 악기를 살펴보던 교수님은 배낭에서 오래된 조그만 드라이버와 각종 공구들을 꺼내 오랫동안 찬밥 신세였던 나의 플룻을 손수 정성스레 고쳐주셨다.

(유학생활 내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신 알렉스 교수님!)


교수님이 고쳐주신 것은 플룻이 아닌 내 마음이었던걸까? 그때부터 다트머스에서 보낸 시간 중 플룻 레슨을 받지 않은 학기가 단 한 학기도 없을 정도로 나는 알렉스 교수님과의 플룻 수업을 좋아하게 되었다. 교수님은 내 한국 이름 “송희”를 줄여 만든 영어 이름인 “Song"을 따서 내 플룻 소리가 “Singing Voice” 같다고 이야기 해 주시곤 했다. 누군가가 내 소리를 좋아해준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다트머스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교수님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어떤 전공 지도교수님도 아닌 알렉스 교수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1학년 때부터 졸업반이 될때까지, 날아갈 듯 기분 좋았던 날에도, 자신감이 땅 끝까지 떨어졌던 날에도, 공부에 치여 녹초가 되었던 날에도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지켜봐 주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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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ong He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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