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i, the Peculiar One
요르기(Georgi)는 연극과 무대 디자인 수업을 가르치는 70세가 넘은 노교수님이다. 조지아인인 그는 190cm에 가까운 키와 슬라빅 엑센트가 강한 영어 발음 때문에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편이다. 디자이너답게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멋진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그의 풀 네임은 Georgi Alexi-Meskhishvili 인데 발음하기는커녕 철자를 외우기도 쉽지 않다.
“음… 알렉시…메스크…히…히쉬빌리 교수님?”
단촐하게 4명의 학생이 앉아있던 <무대 디자인 I> 첫 수업에서 간신히 교수님을 불렀더니 그는 나를 보고 피식 웃더니 “그냥 요르기라고 불러”라고 했다.
‘아…요르기였구나. 조지의 이상한 스펠링인줄 알았는데…!’
“조지아에서 오신 조지 알렉시-메스크뭐시기 교수님”이라고 연상 암기법을 활용해 교수님의 성함을 외웠던 나는 혹시 나중에 교수님 이름을 잘못 부르는 실수를 할까봐 교수님이 나눠주신 유인물 첫 장에 한국어로 소리나는대로 발음을 크게 적었다. 요르기는 수업 첫날부터 연극의 역사와 극장의 종류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괴짜 캐릭터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인류의 첫 연극이 뭐였는지 혹시 아는 사람 있나?”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그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찬 후 이내 고대 그리스 연극의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어리둥절해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듯했다. 나는 그의 독특함에 반한 한 편, 슬슬 이런 걱정이 들었다.
‘아, 누군가 수강 취소하지는 않겠지…? 수강 인원 3명 못 넘으면 폐강이라던데…'
모두들 나처럼 요르기의 매력에 반한 덕인지, 요르기가 그 날 열변을 토한 후 2시간짜리 수업을 40분만에 끝내준 덕인지 다행히 아무도 수강을 취소하지 않았고, 나와 요르기의 인연이 시작될 수 있었다. 다음은 <무대 디자인 I>, <무대 디자인 II>, 그리고 <Independent Research> 라는 학생 자율 연구과목까지 무려 세 개의 수업을 요르기와 함께하며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이다.
(1) 서로를 알아보다
괴짜들은 서로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나와 요르기는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다소 불량한 학생이었던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수업을 자주 빠지는 편이었는데, 내가 하도 수업을 빠지자 걱정되었는지 요르기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요즘 수업에서 통 못 보는구나. 무슨 일 있냐?”
다른 교수님이었으면 몸이 좋지 않았다는 핑계라도 댔겠지만 어쩐지 요르기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솔직한 답장을 보냈다.
“그냥 요즘 매사에 의욕이 별로 없어서요. 다음 수업 때 뵈어요.”
다음 수업 때 요르기는 나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수업에 나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묻지 않고, 그간 생각했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무대 컨셉에 대해서만 물었다. 내 디자인 컨셉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좋아! 그간 수업 땡땡이치고 놀면서 영감을 팍팍 받았나 보구먼. 교실에서 생각하던 밖에서 생각하던 장소가 뭐가 중요해?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하지. 너한테 제일 잘 맞는 대로 하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이었다. 나는 굳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아 준 요르기에게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이해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후 요르기와 나는 서로 영화와 책을 추천하는 것은 물론, 각종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 수 있는 편한 사이가 되었다.
(2) 스키를 몰래 보관하다 들키다
스키 수업을 수강하던 어느 겨울이었다. 스키 수업을 들으면 한 학기 내내 장비를 렌탈해야 하는데, 기숙사에서 스키장으로 가는 셔틀버스까지 매번 장비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마침 <무대 디자인 I> 수업은 셔틀버스의 출발지인 홉킨스 센터 2층에 꼭꼭 숨겨진 작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는데, 처음 몇 주간 보니 그 스튜디오는 <무대 디자인 I> 수업 외에는 사용되지 않는듯했다. 나는 꼼수를 생각했다.
‘스키 들고다니기 귀찮은데 그냥 여기 스튜디오에 놓고 다녀야겠다, 크크!’
그렇게 몇 주간 스키를 스튜디오 구석에 편하게 두고 다녔더니, 어느 날 요르기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앨리안, 저거 스키 니꺼냐?”
‘왜 두고 다니냐고 뭐라고 하시려나…?’
나는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몹시 반가워하며 스키를 얼마나 오래 배웠는지, 얼마나 잘 타는지에 대해 폭풍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잠깐 스키를 배웠고, 요즘은 학교 스키장에서 체육 수업으로 수강 중이라는 내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가끔 거기 타러 가! 그런데 학교 스키 슬로프는 너무 정제되서 스키 타는 맛이 없더군. 스키도 말이야, 이렇게 공장에서 만든 스키는 타는 맛이 없어. 나무로 만든 스키 타고 그냥 아무 야산에서나 쭉 활강하는 게 스키 타는 진짜 맛이지. 나 어렸을 때 조지아에서는 다 그렇게 탔다구!”
70세가 넘은 노교수님이 아직도 스키를 타신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데, 무려 야산에서 나무로 만든 스키라니. 역시 요르기는 하드코어 괴짜였다.
(3) 프린지 머그컵 선물
FSP(다트머스의 해외 유학 프로그램) 추천서부터, 대학원 추천서까지 요르기는 내 추천서를 가장 많이 써 주신 교수님이다. 그리고 어떻게 써 달라고 굳이 부탁드리지 않아도 언제나 나에게 과분한 좋은 말만 써주신다. 추천서를 써주시고 몇 달 후, 내가 에딘버러 FSP에 합격하자 교수님은 본인의 일처럼 기뻐해 주시는 한 편 내가 “연극의 도시” 에딘버러에 간다는 사실을 매우 부러워하셨다. 에딘버러에서는 8월, 세계 최대 규모 연극 축제인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았던 나는 에딘버러에서 돌아오는 길에 요르기를 위한 약소한 선물로, 그 해의 축제 마스코트였던 고릴라가 그려진 머그컵을 사왔다. 그 후 요르기는 마치 “네가 선물한 거 잘 쓰고 있다”는 인증이라도 하듯, 수업시간마다 그 머그컵에 커피나 차를 담아 가지고 오셨다.
(4) 모라노 젤라또에서의 감격 재회
요르기는 다트머스에서 제작하는 연극의 무대 디자인을 하고, 수업을 가르치는 것 외에 무대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의상 디자이너로서 세계 곳곳에서 바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졸업을 앞두고 여러 번 교수님을 찾아갔지만 번번히 연구실에 계시지 않아 감사 인사를 이메일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내 마음 한 구석에는 해노버를 떠나기 전 요르기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졸업식 후, 어느 더운 여름날 친구와 모라노 젤라또에 갔더니 줄 앞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요르기! 와, 정말 요르기네! 못 뵙고 가는 줄 알았어요.”
나는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우리의 재회가 어찌나 애틋해 보였는지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였다. 귀여운 손녀딸과 함께 젤라또를 먹으러 왔다는 요르기는 내가 떠나기 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다며 특유의 액센트가 섞인 영어로 계속 연락하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평소에 자주 연락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나는 요르기가 다트머스에 계셨던 동안은 매년 한국적인 디자인 요소가 있는 카드를 성심껏 골라 요르기의 다트머스 우편함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곤 했다. Visiting Professor였던 요르기는 내가 졸업하고 몇년 뒤 다트머스를 떠났고, 고국인 조지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학교를 세우셨다고 한다. 아직도 나를 기억해주실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꼭 요르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Written by El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