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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02. 2021

명문대 학생들의 공공연한 비밀

A Public Secret of Dartmouth Students

사실 나는 다트머스에 온 이후로 1년 내내 자괴감에 시달렸다. 매 수업마다 읽을 거리가 지나치게 많아 항상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어려운 과목들 위주로 수강신청을 했고, 과도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탓도 있지만, 읽는 속도로는 평균 이상은 될 거라고 자부하던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다 읽는거지?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 편인가?’


아무리 밤을 새도 리딩을 100% 끝내지 못했던 나는 좋아하는 수업 리딩만 열심히 하고, 의무적으로 들어야하는 과목 리딩은 대충 들여다보는 식으로 매 수업시간을 넘겨가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혼자 속으로 끙끙 앓으며 보낸 1학년이 거의 끝나갈쯤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출력한 리딩에 형광펜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던 내게 같이 근무하던 J가 말을 걸었다.


“너 리딩 엄청 열심히 하네. 역시 아시아 애들은 공부벌레야.”

“아냐, 나 매번 리딩 다 못끝내고 수업 들어가. 내가 읽는 속도가 느린건지 절대 다 못읽겠더라,” 나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야, 그렇게 읽으면 당연히 다 못 읽지. 솔직히 리딩 다 하고 수업 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걸? 그냥 대충 훑어봐서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가면 어차피 수업 시간에 다루잖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만나는 친구들마다 과제로 주어진 리딩을 100% 다 하는지 여부를 물어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정독한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이상한게 아니고 애초에 리딩의 양이 비정상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다트머스 학생들의 공공연한 비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후, 나는 모든 과목의 리딩을 한 번 훑어보고 관심있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정독하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 중 내가 대충 훑어본 내용을 다룰 때는 충실히 필기를 하고, 정독한 내용이 나올 때는 토론에 참가하거나 심층적인 질문을 했다. 정독하지 못한 부분은 수업을 들은 후에 다시 한 번 천천히 읽고 노트를 보강했다. 이렇게 하니 아무 배경 지식이 없이 무작정 책을 읽으려고 할 때보다 읽는 속도도 빨라져서 훨씬 효율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자연히 성적도 올랐다. 


‘이런 비밀을 몰라서 지난 1년간 고생을 했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단순한 해결책, 아니 해결책의 부재에 조금은 허탈한 기분이 들었지만 뒤늦게라도 공공연한 비밀에 대해 깨닫게 되서 정말 다행이었다. 역시 인간적으로 아무리 다트머스 학생이라고 해도 그 많은 리딩이 전부 가능했을 리는 없다.


(이무진님... I feel your pain...)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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