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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03. 2021

오늘은 내가 쏜다! DBA 재벌의 초밥 골든벨 울리기

Sushi's on Me Today, Y'all!

DBA (Declining Balance Account)는 다트머스를 비롯한 많은 미국 대학의 교내 식당에서 흔히 사용되는 선불식 포인트 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 한 학기에 최소 금액 이상의 포인트를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되어있고, 학생증과 연동되어 있어 선불 신용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다. 내가 1학년 때까지는 (동일 학사년도 한정) 한 학기에 쓰고 남은 DBA가 모두 다음 학기로 이월되었는데, 가을 학기의 DBA가 많이 남았다고 해서 겨울 학기 DBA를 안 살 수는 없는 일종의 강매 시스템이었다.


매 학기 가장 금액이 작은 DBA 옵션을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가을과 겨울을 거쳐 봄 학기가 되자 내 DBA는 $3,500가량 되었다. 학기당 선택 가능한 최소 금액이 $1,60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전 학기들에서 이월되어온 DBA만 의무 구입 DBA의 두배가 있었던 셈이다. 어떻게 이렇게 DBA 재벌이 될 수 있었냐고?


우선, 요리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저녁을 직접 해먹은 경우가 꽤 있었다. 솔직히 겨울 학기에는 너무 춥고 나가기 귀찮아서 컵라면을 박스채 사놓고 방에서 대충 끼니를 때운 적도 많다. 평소 생활 습관도 DBA 절약형인데,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탑사이드 아르바이트였다. 탑사이드는 DDS (Dartmouth Dining Services) 소속 편의점인데, DDS의 복지 중 하나가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학생 직원들에게 매주 사용하는 DBA의 20%를 환급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DBA를 별로 쓰지도 않는데, 그나마 쓰는 DBA의 20%가 좀비처럼 살아돌아오니 DBA가 남아돌 수 밖에...!


“왜 아직도 이렇게 DBA가 많아? 본격적으로 DBA 좀 써야겠다!”


나는 잔뜩 허세를 부리며 종종 친구들의 식사까지 대신 결제해주고는 했다. 하지만  주만 지나면 사용한 DBA 20% 다시 환급(?)되어 DBA 계정에 꽂혔기 때문에, 결국에는 도무지 감당할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식당 포스기에서 결제를  때마다 표시되는 잔액 때문에 직원들은 기계 오류를 의심했고, 같이  서있는 학생들은 놀라며  마디씩 농담을 던졌다.


“와우! 너 DBA 엄청 많다. 내 밥도 좀 사줄래?”


종종 학생증을 두고 온 것을 모르고 음식을 잔뜩 주문한 후 계산대에서 당황한 표정을 짓는, 일면식도 없는 학우들의 식사를 대신 결제해주는 소소한 선행(?)으로 남은 DBA를 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 정도로는 DBA를 절대 다 쓸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고,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기숙사 같은 층 친구들에게 내 DBA를 털어 콜리스 학생식당에서 초밥 골든벨을 울리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콜리스 스시바에서도 최고가(!)였던 장어 드래곤롤)

콜리스 학생식당에서는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주문 즉시 만들어주는 신선한 초밥과 캘리포니아 롤을 판매하는 스시바가 열린다. 이 곳의 초밥은 웬만한 일식집 부럽지 않은 맛을 자랑하는데,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초밥 한알(?)에 3~5달러 사이이니, 여러 명이 가서 실컷 먹어대면 DBA를 꽤 많이 소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급격히 줄어드는 각자의 DBA에 위기감을 느끼던 친구들은 내 제안을 반겼다.


“야, 정말이지? 나중에 딴 말 하기 없다.”

“나 완전 많이 먹을 거야. 점심부터 굶을 거야!”


스케줄이 맞지 않는 친구들을 제외하니 인원은 열명이 조금 못 되었다. 우리는 위풍당당하게 콜리스로 몰려가 초밥 아저씨의 빠른 손이 더욱 분주해질 만큼 잔뜩 주문서를 넣고 무서운 기세로 초밥을 먹어댔다. 여러 번 주문서를 추가한 끝에 이 날 하루 사용한 DBA는 무려 천달러 중반을 훌쩍 넘었다. 한국 돈으로 따지면 초밥을 200만원어치 먹은 것 같다. 비록 학교에게 강매당한 DBA로 쏜 거기는 했지만 결제하던 순간만큼은 마치 드라마 속 재벌이 된 기분이었다.


초밥 파티 이후 DBA가 많이 소진되기는 했지만, 봄 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9주차에도 내 DBA는 여전히 $1,000를 넘었다.


‘아... 봄 학기가 지나면 더 이상 DBA 이월도 안되고, 남은 돈은 소멸인데 어떻게 한담?’


나는 결국 두 번째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계산대 옆에 놓인 1달러짜리 작은 감자칩을 싹쓸이하기로 한 것이다. 감자칩은 상하는 음식도 아니고, 두고두고 먹던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식사할 돈을 넉넉히 남겨두고, 교내 각 식당을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1달러짜리 감자칩이란 감자칩은 다 구매하서 박스에 모으니 약 다섯 박스 정도가 나왔다. 남는 돈으로는 캔커피도 두박스 구매했다.

(DBA를 한푼도 그냥 소멸시키지 않겠다는 의지)


도저히 모든 DBA 털이용 음식 박스들을 기숙사에 둘 수가 없어서, 감자칩 박스들은 뉴욕의 동생들에게 보내주었다. 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언니! 대학 간 거 아니야? 무슨 과자 공장에서 일해?”

“아, 다이어트 망했어. 언니 때문에 살쪘잖아!”


내가 2학년이 되면서 그 자체로 깡패같은 면이 있던 DBA 정책이 심지어 더 안좋게 바뀌었는데, 그 중 최악의 변화는 잔여 DBA의 전액이 아닌 최대 $100까지만 다음 학기로 이월 가능하도록 바뀐 것이다. 이 변화로 인해 초밥 골든벨처럼 큰 규모의 DBA 재벌 놀이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이후로도 종종 학기 마지막 주에 DBA가 많이 남으면 커다란 투명 쓰레기 봉투를 들고 교내 식당을 돌아다니며 1달러짜리 과자를 싹쓸이하곤 했다.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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