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hi's on Me Today, Y'all!
DBA (Declining Balance Account)는 다트머스를 비롯한 많은 미국 대학의 교내 식당에서 흔히 사용되는 선불식 포인트 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 한 학기에 최소 금액 이상의 포인트를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되어있고, 학생증과 연동되어 있어 선불 신용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다. 내가 1학년 때까지는 (동일 학사년도 한정) 한 학기에 쓰고 남은 DBA가 모두 다음 학기로 이월되었는데, 가을 학기의 DBA가 많이 남았다고 해서 겨울 학기 DBA를 안 살 수는 없는 일종의 강매 시스템이었다.
매 학기 가장 금액이 작은 DBA 옵션을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가을과 겨울을 거쳐 봄 학기가 되자 내 DBA는 $3,500가량 되었다. 학기당 선택 가능한 최소 금액이 $1,60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전 학기들에서 이월되어온 DBA만 의무 구입 DBA의 두배가 있었던 셈이다. 어떻게 이렇게 DBA 재벌이 될 수 있었냐고?
우선, 요리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저녁을 직접 해먹은 경우가 꽤 있었다. 솔직히 겨울 학기에는 너무 춥고 나가기 귀찮아서 컵라면을 박스채 사놓고 방에서 대충 끼니를 때운 적도 많다. 평소 생활 습관도 DBA 절약형인데,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탑사이드 아르바이트였다. 탑사이드는 DDS (Dartmouth Dining Services) 소속 편의점인데, DDS의 복지 중 하나가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학생 직원들에게 매주 사용하는 DBA의 20%를 환급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DBA를 별로 쓰지도 않는데, 그나마 쓰는 DBA의 20%가 좀비처럼 살아돌아오니 DBA가 남아돌 수 밖에...!
“왜 아직도 이렇게 DBA가 많아? 본격적으로 DBA 좀 써야겠다!”
나는 잔뜩 허세를 부리며 종종 친구들의 식사까지 대신 결제해주고는 했다. 하지만 한 주만 지나면 사용한 DBA의 20%가 다시 환급(?)되어 DBA 계정에 꽂혔기 때문에, 결국에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식당 포스기에서 결제를 할 때마다 표시되는 잔액 때문에 직원들은 기계 오류를 의심했고, 같이 줄 서있는 학생들은 놀라며 한 마디씩 농담을 던졌다.
“와우! 너 DBA 엄청 많다. 내 밥도 좀 사줄래?”
종종 학생증을 두고 온 것을 모르고 음식을 잔뜩 주문한 후 계산대에서 당황한 표정을 짓는, 일면식도 없는 학우들의 식사를 대신 결제해주는 소소한 선행(?)으로 남은 DBA를 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 정도로는 DBA를 절대 다 쓸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고,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기숙사 같은 층 친구들에게 내 DBA를 털어 콜리스 학생식당에서 초밥 골든벨을 울리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콜리스 학생식당에서는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주문 즉시 만들어주는 신선한 초밥과 캘리포니아 롤을 판매하는 스시바가 열린다. 이 곳의 초밥은 웬만한 일식집 부럽지 않은 맛을 자랑하는데,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초밥 한알(?)에 3~5달러 사이이니, 여러 명이 가서 실컷 먹어대면 DBA를 꽤 많이 소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급격히 줄어드는 각자의 DBA에 위기감을 느끼던 친구들은 내 제안을 반겼다.
“야, 정말이지? 나중에 딴 말 하기 없다.”
“나 완전 많이 먹을 거야. 점심부터 굶을 거야!”
스케줄이 맞지 않는 친구들을 제외하니 인원은 열명이 조금 못 되었다. 우리는 위풍당당하게 콜리스로 몰려가 초밥 아저씨의 빠른 손이 더욱 분주해질 만큼 잔뜩 주문서를 넣고 무서운 기세로 초밥을 먹어댔다. 여러 번 주문서를 추가한 끝에 이 날 하루 사용한 DBA는 무려 천달러 중반을 훌쩍 넘었다. 한국 돈으로 따지면 초밥을 200만원어치 먹은 것 같다. 비록 학교에게 강매당한 DBA로 쏜 거기는 했지만 결제하던 순간만큼은 마치 드라마 속 재벌이 된 기분이었다.
초밥 파티 이후 DBA가 많이 소진되기는 했지만, 봄 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9주차에도 내 DBA는 여전히 $1,000를 넘었다.
‘아... 봄 학기가 지나면 더 이상 DBA 이월도 안되고, 남은 돈은 소멸인데 어떻게 한담?’
나는 결국 두 번째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계산대 옆에 놓인 1달러짜리 작은 감자칩을 싹쓸이하기로 한 것이다. 감자칩은 상하는 음식도 아니고, 두고두고 먹던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식사할 돈을 넉넉히 남겨두고, 교내 각 식당을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1달러짜리 감자칩이란 감자칩은 다 구매하서 박스에 모으니 약 다섯 박스 정도가 나왔다. 남는 돈으로는 캔커피도 두박스 구매했다.
도저히 모든 DBA 털이용 음식 박스들을 기숙사에 둘 수가 없어서, 감자칩 박스들은 뉴욕의 동생들에게 보내주었다. 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언니! 대학 간 거 아니야? 무슨 과자 공장에서 일해?”
“아, 다이어트 망했어. 언니 때문에 살쪘잖아!”
내가 2학년이 되면서 그 자체로 깡패같은 면이 있던 DBA 정책이 심지어 더 안좋게 바뀌었는데, 그 중 최악의 변화는 잔여 DBA의 전액이 아닌 최대 $100까지만 다음 학기로 이월 가능하도록 바뀐 것이다. 이 변화로 인해 초밥 골든벨처럼 큰 규모의 DBA 재벌 놀이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이후로도 종종 학기 마지막 주에 DBA가 많이 남으면 커다란 투명 쓰레기 봉투를 들고 교내 식당을 돌아다니며 1달러짜리 과자를 싹쓸이하곤 했다.
Written by El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