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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아마도 당신은)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가?

금정연 작가

by 도서출판 다른

“나는 이것을 내가 원하던 대로 썼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럴 수 있게 됐으니까요.”


1952년, 『기나긴 이별』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며 레이먼드 챈들러는 이렇게 썼다. 간결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감탄한 나는 ‘한글 2010’을 열어 “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을 한번 써봤습니다. 한동안 너무 심심했거든요”, “초판에 대한 인세는 받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인세만으로도 평생 먹고 살기에는 충분하니까요” 같은 문장을 끼적인다. 지운다. 다시 끼적인다. 지운다. 다시 끼적인다. 지운다……. 무의미한 손가락 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마감 시한을 넘긴 지는 이미 오래. 마침내 나는 타협점을 찾아낸다. 그 문장들을 따옴표에 가둬 두기로 한 것이다. 물론 ‘끼적인다’는 구차한 표현을 덧붙이는 일은 잊지 않는다.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글을 쓸 때’ 당신에게 고함을 지르는 내면의 편집자일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를 꺼두라. 스스로에게 심술궂게 행동할 자유를 주라. 일단 쓰고, 나중에 다듬어라. 이것이 창작의 황금률이다. (제임스 스콧 벨,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05: 고쳐쓰기』, 다른, 34쪽)


소설을 쓰겠다고 회사를 그만둔 게 벌써 3년 전이다. 그때부터 ‘내면의 편집자’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책을 좋아한다는 순진한 이유로 책을 파는 직업을 선택했건만, 정작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내 안에 편집자가 산다고? 월급을 주기는커녕 함께 해 주십사 부탁한 적도 없는데? 세상에, 이 얼마나 대단한 자원봉사인지!

“글쓰기는 인간의 일이고 편집은 신의 일이다.” 스티븐 킹의 말이다. 그러니 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 굳이 교회를 찾거나 기도를 올릴 필요는 없다. 그저 1. 책상에 앉아 2.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한 후 3.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4. 하얀 모니터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만약 부족하다면 5. 이제부터 소설을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후 6. 첫 문장을 시작하시라.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도 내면의 성스러운 목소리를 듣게 되었군요. 부디 놀라지는 마시길.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는 성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음험한 방해 형태는 자신감 결여로, 종이 위에 쓰는 모든 것이 어리석은 시간낭비처럼 느껴진다. (같은 쪽)


물론 이 또한 편집자의 입김이다. 그렇게 핀잔을 주고 구박을 하니 자신감을 상실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끔은 용기를 내 정중하게 부탁하기도 한다. “내면에 계신 편집자 아버지, 편집자 선생님, 편집자 사장님, 저는 지금 당장 충격적인 데뷔작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좀 닥쳐 주실래요?”(레이먼드 카버의 첫 번째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는 편집자를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그는 내면뿐 아니라 현실의 편집자에게도 시달렸는데, 카버 특유의 미니멀리즘은 모든 원고를 반으로 쳐냈던 편집자 덕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신은 언제나 신비로운 방식으로 역사하시고,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해도 들리는 목소리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노래까지 있겠는가? (U2 ‘Mysterious Ways’, 델리스파이스 ‘차우차우’)

그러니 지난 3년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하늘도 아는 일이다. 일일이 늘어놓아 본댔자 나도 울고 당신도 울고 하늘도 울 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자리는 눈물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울고 싶다면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듣거나(“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지금 당장 이 글을 덮고 1에서 6까지를 반복하라. 내면의 성스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나 역시 눈물을 흘리며 이 글(내면의 편집자는 글의 종류도 가리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을 쓰는 중이다.

자연히 글쓰기는 점점 더 괴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아 봐도, 고통을 피하려는 우리의 본능은 글을 쓸 수 없는 핑계를 찾아내고야 만다.


다시 몇 주가 더 지났다. 나는 매일 아침 내 방으로 들어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탁상공론식으로 영감이 떠올랐고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갖가지 아이디어로 머리가 가득 찼지만, 막상 자리에 앉아 종이에 뭔가를 쓰려고만 하면 생각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펜을 집어 드는 순간 말이 죽어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몇 가지 계획에 손을 댔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하나 그만두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째서 일을 해나갈 수 없는지 그 이유가 될 만한 구실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얼마 안 가서 곧 나는 갖가지 구실을 생각해 냈다. 결혼생활에 적응하는 문제, 아버지가 된 데 따르는 책임감, 새로운 작업실(너무 비좁아 보이는), 원고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야 글을 써온 오랜 습관, 소피의 육체, 갑작스런 횡재 - 그 모든 것이 다 이유가 되었다. (폴 오스터, 『뉴욕 3부작』, 열린책들, 276쪽)


그렇다면 질문. 왜 나는,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당신은, 여전히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가? 소설을 쓰기보다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면서도? 여기 한 남자의 이유가 있다.


내가 담배와 술을, 그래, 술과 담배를 끊는다면, 난 책 한 권쯤 쓸 수 있을 거야. 여러 권도 쓸 수 있겠지만 어쩌면 단 한 권이 될 거야. 난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나.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중)』, 까치, 133쪽)


하지만 그는 결국 책을 쓰지 못한다. 세상에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내면의 편집자에게 시달리며 아무것도 쓰지 못해 괴로워하다 우발적으로 자신의 누나(그에게는 작업량을 체크하는 외부의 편집자였던 셈이다.)를 죽인 후 사형 선고를 받는다. 아이러니. 나 역시 비슷한 아이러니를 알고 있다. 소설을 쓰겠다며 회사를 그만뒀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잡문을 쓰는 동안 점점 소설과는 멀어지게 된 내 자신의 이야기다.


불행하게도 굶주림은 예술을 돕지 않았다. 그저 방해할 뿐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위장(威腸)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찌됐든 인간은 동전 한 푼짜리 막대사탕보다는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0.5리터들이 위스키를 마신 다음에야 훨씬 더 글을 잘 쓸 수 있다. 궁핍한 예술가라는 신화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찰스 부코스키, 『팩토텀』, 문학동네, 91쪽)


물론 이것은 찰스 부코스키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그런 시간을 살아 냈고, 결국 썼다. 그것도 아주 끝내주는 작품을. 그러니 내가 그의 말을 인용한다면 그건 또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을 읽으며 지난 3년을 생각했다. 내게 남아 있는, 좀처럼 짐작할 수 없는 내일도. 언젠가 쓸 소설에 대한 갖가지 아이디어로 머리가 가득 차기도 했고, 술과 담배를 끊는다면 소설 한 편쯤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기도 했다. 내면의 편집자는 여전하겠지만, 책과 함께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하다 보면 성스러운 목소리에 기죽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마디로, 당장이라도 컴퓨터를 켜고 ‘소설-1.hwp’ 파일을 만들고 싶었다는 말이다. 쓰는 방법을 말하는 책에 이보다 더한 미덕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바로 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들은 나보다 운이 좋은 셈이다.

나도 그렇게 운이 나쁜 편은 아니다. 당신들이 멋진 소설을 쓴다면 즐겁게 읽는 기쁨은 내 것이 될 테니까. 이 원고는 이렇게 끝나고, 어쩌면 나 역시 다음 원고를 시작하기 전에 한 편의 소설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나는 꽤 오랫동안 어떤 것에 작별을 고하려 애써 왔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런 노력이다. 이야기는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노력에 있는 것이다. (폴 오스터, 『뉴욕 3부작』, 열린책들, 330쪽




금정연
서평가라고 불리지만 서평 아닌 글을 더 많이 쓰는 원고노동자. 지은 책으로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아무튼, 택시> <문학의 기쁨>(공저) 등이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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