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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Aug 06. 2019

입체적인 인물을 설정하는 법

소설가를 위한 소설쓰기 2

어느 한 종류의 행동이라도 없다면 인물은 활기를 띠지 않고 플롯은 정체된다. 하지만 독자가 장면 안에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더 작은 형태의 행동이다. 바로 시공간을 움직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의 행동이다.

독자가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게 하려면 독자가 응원할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야 한다. 독자는 수백 쪽에 달하는 여정을 함께할 주인공과 교감하거나 응원하고 (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다 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늘 한결같은 좋은 사람이나 다른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라 입체적인 인물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1. 흥미로운 목표가 있는 복잡한 인물

앤 패칫이 쓴 순수소설 『경이의 땅』의 첫 장면에서 행동이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첫 장면은 제약회사 보걸의 연구원인 마흔두 살의 마리나 싱(대형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는 여성 과학자라니 그야말로 복잡한 인물 아니겠는가?)이 비극적인 소식을 담은 우편물 한 통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앤더스 에크먼의 사망 소식은 항공우편으로 전해졌다. 접어서 가장자리를 따라 붙이면 봉투가 되는 옅은 푸른색 편지지였다. 아직도 이런 편지지가 생산된다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한 사람의 부고를 전하려고 종이 한 장이 브라질에서 출발해 미네소타에 도착했다. 고작 한 장뿐인 얇은 종이는 너무 별 볼 일 없는 나머지 편지에 붙은 우표만이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매개물 같았다.
_앤 패칫,『경이의 땅』

앤더스 에크먼은 스웬슨 박사와 함께 여성 불임을 치료하려는 고가의 신약을 연구한 팀의 일원이었다. 이 약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 에크먼이 죽자 회사는 신약 개발 사업의 책임자인 스웬슨 박사와의 유일한 연락 통로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이 엄청난 손해를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누군가 아마존 정글로 가서 스웬슨 박사를 찾아야 한다. 게다가 거기에는 사적인 요인도 있다. 에크먼의 시신을 찾아서 바라건대 가족에게 인계해야 한다


독자는 마리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이 장면에서 아주 지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편지에 붙은 우표를 보고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매개물 같았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세부적인 것에 주목하는 마리나의 모습은 그녀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 편지가 전하는 소식과 함께 확실한 긴장감이 조성된다. 이는 곧 마리나가 어떤 행동을 하게끔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2. 운명 같은 사건을 접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주인공

어떤 사건이 주인공이 두려움이나 불확실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기 목표나 욕망의 빛을 향해 가도록 할 때 비로소 주인공의 플롯이 시작한다. 주인공은 아직 그런 그림자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 중요한 행동의 전환점은 주인공에게 앞으로 나아갈 기회가 된다. 여기서 주인공은 선택이나 압박으로 말미암아 행동하고, 그렇게 해서 이야기(그리고 주인공의 삶)는 새로운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게다가 5년 전과 달리 이제 나한테는 단서가 있어. 바로 애슐리. 이 낯선 소녀, 이 천방지축 음악의 마술사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어떤 폭력적인 점이 있었다. 이제 그녀는 없고,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코도바라는 뒤틀린 나무에서 또 하나의 죽은 가지를 발견한 셈이다.
_마리샤 페슬,『나이트 필름』

마리샤 페슬의 음울한 범죄소설 『나이트 필름』에서 주인공 스콧 맥그래스는 승승장구하던 기자였지만 예전의 명성은 온데간데없고, 유명 인사인 아내와 이혼한 뒤 조숙한 다섯 살짜리 딸아이를 어렵사리 양육하는 마흔세 살의 남자다. 5년 전, 유명한 컬트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스타니슬라우스 코도바의 뒤를 캐고 다니는 바람에 맥그리스의 경력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 코도바와 일했던 사람들에게는 죽거나 실종되는 등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촬영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지 못한다.

어느날 코도바의 딸이자 스물 네살의 천재 바이올리니스 애슐리가 죽은 채로 발견되고,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다. 무고한 한 소녀의 죽음은 맥그래스에게 삶의 목적을 일깨운다.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진실을 찾는 것이다. 이 길을 가는 여정은 잠재적인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과거 코도바의 명예 훼손 소송 때문에 맥그리스는 모든 것을 잃었다. 단서, 연락책, 접근 권한을 모두 다 잃었다. 그리고 이제 맥그리스는 어린아이를 둔 아버지다. 하지만 맥그래스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맥그리스는 진실을 찾으려고 몰두한다.


로맨스소설, SF소설, 판타지소설 등 장르문학은 순수문학보다 행동에 더 곧장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순수문학은 인물이나 배경 소개를 더 천천히 전개하고, 언어를 더 섬세하게 다룬다. 앤 패칫의 『경이의 땅State of Wonder』 같은 순수소설의 초반 장면들은 행동이 잠잠하고, 주인공의 목소리와 말투를 설정하거나 인물과 배경의 연관성을 보여주거나 사색하는 장면이나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주는 데 더 치중한다. 하지만 행동은 여전히 많이 나타난다. 미국 작가 마리샤 페슬의 『나이트 필름Night Film』이나 범죄소설, 추리소설, 스릴러소설, 심지어 로맨스소설에서도 이야기는 종종 살인, 납치, 만남, 체포처럼 명백한 행동으로 시작한다. 장르에 따라서 행동의 양상이 달라질뿐이다. 


레스 에저턴 Les Edgerton
미국의 소설가. 소설은 물론 시나리오, 에세이, 기사 등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즐긴다. 단편소설 「그것과는 다르다 IT’S DIFFERENT」,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들 MY IDEA OF A NICE THING」 등의 소설을 발표하고 지금까지 19권의 책을 썼으며, 푸시카트상, 오 헨리상, 에드거 앨런 포상 등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 털리도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소설에 완성도를 넘어 

개성을 더하는 고급 기술 안내서

《소설가를 위한 소설쓰기 2: 장면과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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