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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사로잡는 생생한 대화쓰기

by 도서출판 다른
갈등은 곧 이야기다. 그리고 그 갈등을 표현하는 것이 대화다. 모든 대화 흐름의 중심에서 시점인물은 갈등을 느껴야 한다. 그러면 대개는 어떤 인물을 시점인물로 하면 좋을지 알 수 있다. 바로 그 장면에서 주된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갈등은 외적인 것일 수도, 내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시점인물이 말할 때 독자가 반드시 긴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상적으로 보면 이 인물은 다른 인물에게 밖으로 표현할 수 없는 내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런 생각을 마음속에만 담아두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 그것만으로도 긴박감이 생긴다.
인물의 갈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대화에 감정이 실려야 한다. 격한 감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소리치거나 속삭인 말은 기억에 남는다. 다른 사람이 흥분해서 소리치거나 속삭인 말도 역시 기억에 남는다.
독자에게 기억될 만한 소설을 쓰고 싶다면 감정으로 가득한 대화를 써야 한다. 두려움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분노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상황과 갈등에 인물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지, 격렬한 감정이 실린 대화로 서로에게 자신의 느낌을 전하는지다.
대화 장면에 감정이 드러나면 독자는 인물이 겪게 된 갈등에 관심을 보이고, 그 인물이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걱정하게 된다. 소설의 모든 대화는 제아무리 분량이 적어도 어떤 감정이든 전달해야 한다. 작가는 어떤 감정인지만 정하면 된다. 어떤 감정인지는 쓰고 있는 소설의 장르와 그 장면에서 인물들에게 벌어질 사건에 따라 달라진다.



독자를 사로잡는 대화의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인물의 성격과 동기를 드러낸다
인물의 동기를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자신의 입을 통하는 것이다.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에서 반드시 자신의 동기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현재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적대자에게 흔하다. 그러므로 다른 인물의 입을 통해 적대자의 동기를 언급하면 그 동기를 효과적으로 알려줄 수 있다.


○ 소설의 분위기를 만든다
모든 소설은 장르에 상관없이 독자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로서 우리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만들어줄 책임이 있다. 물론 인물이 말을 꺼내면서 분위기가 저절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작가가 대화의 방향을 이끌어 분위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 갈등을 심화한다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던지는 게 작가의 역할이다. 이 점이 이른바 소설의 갈등이며, 작가는 대화를 통해 이를 드러내고 심화할 수 있다. 대화는 인물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서 목표를 달성하려 하는지 줄곧 일깨워야 한다. 어떤 면에서 모든 대화 장면은 갈등을 심화해야 한다. 대화 장면이 끝났을 때 시작과 달라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 긴박감과 긴장감을 일으킨다
대화의 목적은 현재 상황에서 긴박감을 일으키고 앞으로 생길 일에 긴장감을 주는 것이다. 예외는 없다. 작가로서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장면을 쓰든, 장르가 무엇이든, 대개는 그 장면의 핵심에 긴박감과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 장면의 속도를 높인다
서술과 묘사는 이야기를 천천히, 꾸준히, 편안하게 전개해 속도를 느리게 한다. 행동과 대화는 속도를 빠르게 한다. 행동보다는 대화가 훨씬 효과가 크다. 인물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개는 그렇다.


○ 배경과 뒷이야기를 알린다
많은 작가가 인물이 뭔가 행동하기 전에 각 장면의 장소를 설정하기 위해 서술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한 장면에서 어떤 행동이 순조롭게 일어나고 있다면 대화를 이용해 배경과 뒷이야기를 필요한 만큼 알릴 수 있다.


○ 주제를 전달한다
주제는 작가가 조각조각 쪼개서 소설 속에 엮어 넣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와 이 소설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드러내야 한다. 인물이 말하거나 속삭이거나 외치거나 씩씩대거나 투덜거리거나 코웃음 치거나 신음할 때 독자는 귀를 기울인다. 주제를 대화 속에 살그머니 끼워 넣으면 독자는 서술에서는 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주제를 듣게 된다.



대화를 쓸 때 앞에서 언급한 특징들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속도’이다. 작가가 이야기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무 생각 없는 태도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속도를 생각하지 않는 이가 많다. 이제부터는 속도를 생각하자. 소설을 다 쓴 뒤 비평가의 하품과 멍한 눈을 마주한 후에야 후회하지 말고 말이다. 대부분의 소설은 너무 빨라서가 아니라 너무 느려서 문제다. 초고를 쓰는 동안이야말로 속도를 생각할 때다.
소설은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속도를 내야 한다. 대화는 그 일을 해줄 수 있다. 작가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 중에서 대화야말로 가장 재빨리 현장감을 줄 수 있다. 인물이 감정이나 견해를 표현하기 시작할 때 대화 장면에 가속도가 생기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인물들의 계획이 충돌하기 시작할 때, 한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이야기는 나아간다.


○ 속도 높이기
인물들을 빨리 대화하게 할수록, 장면은 더 빨리 움직인다. 필요 이상의 서술이나 행동을 잘라내면 이야기는 쭉쭉 뻗어나간다. 대화가 핵심을 파고들도록 화자를 밝히는 지문마저 잘라내도 된다. 또한 장면에 감정을 많이 넣을수록 전개는 더 빨라진다.
감정이 이야기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이유는 긴박감과 긴장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인물은 예측할 수 없으며 통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므로 위험성이 높아진다.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반드시 감탄사를 많이 쓸 필요는 없다. 문장과 문단을 짧게 쓰거나 서술 문장과 행동 문장을 조금 또는 전부 삭제하면 된다. 인물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짤막한 대화가 오가도 된다. 너무 지나치지 않게 제대로 하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 속도 늦추기
대화는 대개 이야기 속도를 높이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대화 장면 도중에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어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경우가 있다. 이때 작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다. 서술, 묘사, 배경으로 장면의 중요도를 조절하거나 말이 느린 인물을 무대에 등장시켜 모든 상황을 끼익 멈출 수 있다.
대화를 사용해 장면이나 이야기의 속도를 늦추는 다른 방법은 인물들을 합리적인 대화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런 대화에서는 행동과 감정은 약하고 상황과 관련한 이성적인 논리가 더 강하다. 단, 긴장감은 느리든 빠르든 모든 대화 장면에 꼭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화 속도가 잘 유지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설을 다 쓸 때까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소설 전체를 읽어봐야 어느 장면은 속도를 올려야 하고 어느 장면은 속도를 늦춰야 하는지, 어느 부분은 차분함을 유지하기 위해 배경을 좀 더 묘사해야 하고, 어느 부분은 숨 돌릴 틈이 있도록 서술을 약간 덧붙여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작가는 대개 독자가 지치지도, 졸리지도 않도록 느린 장면과 빠른 장면을 골고루 교차 배열하고 싶어 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속도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냥 이야기를 펼쳐놓자. 그런 다음 편집자의 모자를 쓰고 보라색이나 초록색 펜을 들고(이제 새로운 시대가 아닌가! 빨간 펜은 그만 쓰자)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며 속도를 높이거나 낮추고 싶은 곳에 표시하자. 다음은 대화 장면이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르지 않은지 파악하기 위해 시점인물과 관련해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 다른 인물들이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너무 빨리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 주제를 회피하면서 지금까지 전개된 이야기와 아무 상관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않은가?
○ 생각만 지나치게 하면서 말은 부족하게 하지 않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 지문이나 사소한 행동이 너무 많아서 시점인물의 말이 뒤죽박죽 중심을 잃지 않았는가?
○ 다른 인물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혼자서 설교를 늘어놓고 있진 않은가?
○ 다른 인물을 너무 세밀하게 관찰하거나 장소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장면에 긴박감과 긴장감을 일으키는 대화가 없진 않은가?
○ 작가 자신이 관찰한 내용과 설명을 장면에 억지로 넣은 탓에 시점인물과 다른 인물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대화를 브레이크이자 액셀로 여기면 이야기를 계속 통제할 수 있다. 그러면 고삐 풀린 말처럼 앞서 나가지도,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나가지도 않을 것이다. 열심히 가속 페달을 밟아 대화를 앞으로 움직이는 것도, 제동을 걸어 속도를 늦추는 것도 작가의 몫이다. 모든 소설에는 그 나름의 리듬과 움직임이 있으며 대화 속도를 조절해 이야기 속도를 조절하면 독자는 편안한 승차감을 느낀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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