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강의: 고쳐쓰기

한정영 작가

by 도서출판 다른
상상력은, 창의성과 같은 맥락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을 말하곤 합니다. 이러한 상상력은 모든 사고 과정(이를테면 추리 판단 등까지 포함)을 통해 자신이 쓴 글을 보다 최적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정리하고 편집하는 일까지 간섭합니다. 이때에도 창의성이 발휘되어야 함은 물론이지요. 이 과정을 우리는 고쳐쓰기라고 말합니다.



편집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소설을 편집자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19쪽)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고쳐쓰기는 단순히 수정의 의미가 아니라, 아주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소설을 다시 바라보는 일입니다.
더구나 편집은 소설이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되기 위한 사건의 재배치는 물론 플롯과 인물의 부분적 수정 및 디테일의 보완 등,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아야 하는 고난도의 과정입니다. 오히려 집필 과정보다 고쳐쓰기 과정에서 더 많은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또한 이때, ‘삭제의 기술’(11장 설명: 삭제의 기술)이 함께 포함됩니다. 독자는 까다로운 미팅 상대 같아서, 너무 마른 몸매도 너무 살찐 몸매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고쳐쓰기는 전투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인정사정 봐주지 말아야 하는 시간(370쪽)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초고는 플롯에 따라서 씁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 줄 스토리보드는 대개 플롯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가는 누구나 빨리 초고를 끝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인물의 디테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초고를 되돌아볼 때는, 주인공의 매력을 되찾아 주어야 합니다. 주인공이 생각은 많고 행동은 빈약하지 않은가, 그 행동이 너무 느리지 않은가, 시각적 청각적으로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어떤 부분에서는 클리셰가 지나치지는 않는가 등의 잣대로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2장 인물: 모든 소설은 인물이 이끈다).
특징적인 외모 하나만 남다르게 설정해도, 인물의 특성이 매우 이색적으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사건에 휘말리는 것 외에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주 단순한 손버릇 하나라도 추가하길 권합니다.
더하여 인물을 보다 생동감 있게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추가할 필요도 있습니다(16장 고쳐쓰기 최종 점검). 다만 인물이 추가될 경우, 그 인물에 대한 히스토리를 만들다 보면 원고량이 늘어나고 플롯에 영향을 미치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소설은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와 사건의 고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이 에피소드와 사건은, 단순히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배열한 것이 아닌 특별한 방법에 의해 재배치 된 것입니다. 바로 플롯이 그 로드맵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벽한 플롯은 없습니다. 장편일수록 길을 잃기도 하고, 처음 계획했던 바와는 달리 새로운 사건이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일도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고쳐쓰기의 두 번째 점검 지점은 플롯의 견고함을 따지는 일입니다. 이때의 견고함이란 ‘이야기의 균형이 깨지지는 않았는가’(406쪽), 나아가 ‘극적인 효과’에 충실한가를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한 장면 한 장면에 주목합니다. 장면들 각각 고유한 기능에 충실한지(5장 장면: 견고한 소설을 위해), 지금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장면인지 점검합니다. 작가는 이따금 자신의 이야기에 휩쓸려 서둘러 결과를 말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복선을 빠뜨리기도 합니다.
추가/삭제되는 장면에 따라 일부 장면의 위치는 필연적으로 바뀌게 되는데, 그 적합한 위치를 찾아내는 일도 아주 중요합니다. 이때 모든 장면에는 위기가 있어야 한다(134쪽)든지, 긴장감이 흘러야 한다는 지침(141쪽)은 매 장면마다 되짚어 볼 만합니다.


장면을 실감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배경입니다. 대체로 신인 작가들은 당장 맞닥뜨린 사건(주인공의 행동)에 집중하느라 시·공간의 설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능한 초고 때부터 주인공의 ‘행동 타임 테이블’을 따로 만들고, 공간 설정은 그림을 그려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고쳐쓰기를 할 때는 이 타임 테이블에 어긋나지 않았는지를 점검하고, 공간 역시 물리적으로 변형 또는 왜곡된 곳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인공이 밤 12시에 집에 들어가 잠깐 쉬고 나왔는데 해가 중천에 뜨는 실수를 피할 수 있고, 들어갈 때는 오른쪽에 있던 문이 왼쪽으로 바뀌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조금 긴 소설이나, 복잡한 추리소설은 더더욱 말할 것이 없겠지요.


이제 남은 건, 묘사와 문장입니다. 훌륭한 소설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또는 감정이 돋보이는 순간과 장면이 있습니다(313쪽). 제임스 스콧 벨은 이런 부분에 대한 묘사에 집중하라고 충고합니다(10장 배경과 묘사: 생기가 있는, 오감이 있는).
묘사는 작가의 글쓰기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방법입니다. 소설은 언어로 쓰이고 이 언어가 만들어내는 문장이 모여 사건을 만들기 때문이지요. 얼마나 생동감 있는 인물인지도 묘사에 의해서 드러나고, 얼마나 긴장감 있는 사건인지도 묘사를 통해 완성됩니다. 수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처음에는 좋은 작품을 필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장은 아주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긴 것보다 짧은 것이 좋습니다. 간혹 문장이 너무 짧으면 건조하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는데, 과도한 욕심을 부린 긴 문장이 비문법적 서술이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특히 처음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유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고쳐쓰기 과정에서는 의식적으로 긴 문장을 짧게 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연습을 할 때는 흔한 부사어를 줄이고 어설픈 비유법을 최대한 피하며, '한 문장 안에 하나의 사실만을 진술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고쳐쓰기를 하면 좋습니다.
더하여 적어도 한 문단 안에서 두 번 이상 반복되는 단어가 없도록 하며, 종결 어미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종종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글의 맛(묘미)을 느끼는 데 유용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표현(법)을 찾아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작가도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듯 최소한의 단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익숙합니다. 때문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나 표현은 사장되기 쉽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문장이 중요하지만 특히 첫 문장, 첫 단락, 첫 장면은 100번을 다시 쓸 각오를 해야 합니다. ‘처음’은 편집자(와 독자)가 가장 먼저 보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공모전에서도 심사위원들은 가장 앞의 몇 페이지만 읽고 그 소설을 더 읽을지 결정합니다. 왜냐하면 앞의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 문장을 통해 작가(투고자)의 기본기를 알 수 있고, 계속 읽어야 할 만큼 흥미로운지 역시 판명되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처음'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230쪽).


그리고 무엇보다 고쳐쓰기를 할 때는, 스티븐 킹의 말대로 초고를 쓸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지하실의 소년들’(366쪽)을 소환하세요. 나(작가 자신)보다 더 냉철하게 작품을 보아 줄 다른 작가를 한 사람 초청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 본문의 괄호 표기된 출처는 《소설쓰기의 모든 것 5: 고쳐쓰기》입니다.




한정영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학교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서울여자대학교와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등에서 강의하며, 청소년 소설로 《빨간 목도리 3호》, 《히라도의 눈물》, 《짝퉁샘과 시바클럽》, 《너희는 안녕하니?》, 《바다로 간 소년》 등을 썼고, 단편 〈변신-서울 2017〉은 《어린이와 문학》에서 제정한 4회 어린이와 문학상(2017)을 수상했다.
동화 《굿모닝 굿 모닝?》은 초등학교 교과서(2015)에 실렸다. 《바빌론의 사라진 공중정원》, 《거짓의 피라미드》를 시작으로 12권에 이르는 문명 판타지 동화를 쓰고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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