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은 동시에 여러 감정을 느낄 뿐 아니라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달라지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이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가치관과 감정이 달라지는 인물을 ‘입체적 인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어떤 인물은 성격이나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며, 이들의 동기 또한 소설이 전개되면서 처한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그런데 이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진행성 동기’는 평면적 인물에게도 있을 수 있다. 헷갈리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모든 인물은 지금부터 설명할 네 가지 유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성격과 동기 둘 다 결코 변하지 않는 인물
○ 성격은 변하지 않지만 동기는 변하는 인물(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성장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변한다)
○ 성격이 변하지만 동기는 변하지 않는 인물
○ 성격과 동기 둘 다 변하는 인물
유형 1. 변하지 않는 인물: ‘나는 나다’
때때로 소설의 마지막까지 가장 중요한 동기가 바뀌지 않고, 성격도 아주 뚜렷해 결코 변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 제임스 본드가 좋은 예다. 그는 시작부터 지략이 뛰어나고 자상하고 강인하고 똑똑한 평면적 인물이다. 결말에서도 그는 여전히 지략이 뛰어나고 자상하고 강인하고 똑똑하다. 그의 동기도 변하지 않는다. 소설이 시작될 때 그는 임무를 받고 이 임무를 완수하는 게 그의 목표다. 임무를 완수하는 시점에 소설은 끝난다. 중간에 일시적인 목표(악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여성 보호하기)가 있지만 모두 최우선 목표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규칙은 모험소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 Of Mice and Men』에서 조지와 레니의 동기는 줄곧 똑같다. 돈을 모아 작은 농장을 갖는 것이다. 둘의 성격 역시 내내 똑같다. 조지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가고, 약간 모자란 레니는 악의는 없지만 사고뭉치라서 서로를 비극으로 몰고 간다.
이런 유형의 소설을 쓸 때는 일찌감치 분명하고 단호하게 주인공의 성격과 목표를 알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독자가 주인공이 누구이고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이렇게 하면 주인공 외에 플롯이나 음모, 장치 같은 다른 요소를 마음껏 복합적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목표와 성격 모두 변하지 않는 인물이라도 어느 순간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본드는 본드 걸에 게 끌리지만 동시에 신뢰하지 않을 수 있다(때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본드가 본드 걸에게 끌린다 해도 그 결과로 성격이나 목표가 변하지는 않는다.
유형 2. 동기만 변하는 인물: ‘세상은 움직이는 과녁이다’
기본적인 성격과 신념은 변하지 않지만 사건을 겪으면서 원하는 것이 바뀌는 인물이 있다. 이런 인물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바로 영웅 아니면 악당이다.
영웅은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존경을 받는다.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작가가 변할 까닭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작가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 유형의 인물로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제인 에어』)와 에인 랜드의 하워드 로크(『파운틴헤드 The Fountainhead』)가 있다. 이 둘은 전혀 다르다.
우선 제인 에어는 어릴 때도 용감하고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도덕적이다.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의 권력 구조 밑바닥에 속한 사람도 존엄하다고 믿는다. 이 점은 소설의 시작 부분에 나온다. 제인이 자신과 학교 친구인 헬렌 번즈, 그리고 학대당하는 다른 인물들을 옹호하는 장면을 통해서다. 결말 부분에 이르렀을 때도 제인은 여전하다. 하지만 제인이 성장하는 동안 눈앞에 놓인 동기들은 계속 변한다.
처음에 제인은 고약한 외숙모의 학대에서 벗어나려 하고, 다음에는 외숙모가 보낸 기숙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 후에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가정교사가 되고자 한다. 그러다 자신을 고용한 로체스터 씨와 사랑에 빠지고 그를 원한다(그의 진실을 알게 되고 그의 집을 벗어나려 할 때까지는). 그다음에도 동기는 계속 바뀐다.
하워드 로크는 제인보다 훨씬 더 단호하고 영웅적인 인물로, 결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실패와 세상의 어리석음을 딛고 일어선다. 그의 첫 목표는 자신에게 설계를 지시한 외부 세력의 영향 없이 자신의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다. 다음 목표는 자신 설계 일부를 바꿔버린 자들 때문에 그 건물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행동은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그의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확신에서 나온다. 즉 인물이 영웅이라면 그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경우에 다음과 같이 구성할 수 있다.
○ 인물이 홀로 서고자 하는데 외부 세상이 장애물을 놓는다.
○ 장애물이 인물에게 동기를 준다. 인물은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바꾸거나, 적응한다.
○ 최초의 동기가 결과로 이어지고, 그 결과는 또 다른 동기를 일으킨다(제인이 가정교사가 된 결과로 로체스터 씨와 만난다).
○ 새로운 동기는 또 다른 장애물과 맞닥뜨린다.
이 구조는 ‘고전적인 플롯 유형’이라 부르기도 한다(사실 앞에서 다룬 인물과 플롯 유형 네 가지 중 하나다.) ‘변하지 않는 인물’ 유형과 마찬가지로 이 유형의 성공은 강렬하고 흥미로운 인물에 달려 있다. 이런 인물을 원한다면 그 인물이 헤쳐나갈 최초의 환경을 설정하고 나서 결과에 맞춰 그의 동기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인물’ 유형과 마찬가지로 성격은 그대로인 채 동기만 변하는 인물이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감정이 변하거나 엇갈리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사촌인 세인트 존 리버스가 인도 선교사로 가는 자신을 보필해달라고 청혼했을 때, 제인은 아주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유형 3. 성격만 변하는 인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많은 소설에서 주인공은 눈에 띄게 변화를 겪는다. 그 인물에게는 단 하나의 동기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마치 마차에 짐을 싣고 서부로 가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개척자들 같다. 하지만 최우선 목표를 성취하는(또는 성취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성격 또는 신념은 변한다. 사실 이런 변화가 때로 소설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젊은 여자가 교도소에서 나가려는 욕망을 품고 있다. 이 욕망이 그녀의 동기다. 그녀는 소설의 1장에서 감금되었고 곧바로 이 동기를 갖는다. 이 소설은 그녀가 교도소에서 나오며 끝이 난다. 복역 기간이 끝나서일 수도 있고, 탈옥에 성공해서일 수도 있고, 또는 그녀의 변호사가 재판에서 이겨서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변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목표는 줄곧 변하지 않지만 그녀의 성격, 신념은 변한다. 어쩌면 다른 죄수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녀는 우월감이 강하고 냉소적인 속물에서 자신과 그들이 기본적으로 같은 인간이라고 느끼는 인물로 변화할 수도 있다. 냉소에서 공감으로, 경멸에서 우정으로 감정이 변한다. 교도소에서 나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중에 교도소 또한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인물을 쓰려면 명심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 인물 변화는 반드시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물을 작가의 의도대로 논리적으로 변화시킬 사건이 있어야 한다. “사건을 창조하라.” 글쓰기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서머싯 몸이 한 대답이다. 인물 스스로 변화하도록, 이러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사건을 생각해내야 한다는 의미다.
○ 인물은 사건에 대해 반드시 감정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
○ 인물 변화 역시 극화해 보여줘야 한다. “애비는 지금 교도소 죄수들에게 동정심을 느낀다”라고 단순히 말하면 안 된다. 애비의 심경 변화를 그녀가 전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행동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이를테면 한때 경멸하던 교도소 죄수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일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증’ 과정은 입체적 인물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 소설의 마지막에는 마지막 인증 과정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인물 변화가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개 이 마지막 인증은 이전 것들보다 훨씬 강력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매일매일 좌절을 겪는 죄수들을 단순하게 돕는 게 아니라, 교도소를 나온 직후 여전히 그 안에 있는 죄수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독자는 본래 이러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동기는 독자의 이해력을 높이고, 입체적 인물은 인생에 대한 충고를 바라는 독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킨다. 교도소를 다룬 이야기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와 같은 인물과 플롯 유형은 세상에 대한 부정적 메시지도 전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어떤 목표를 가진 인물은 목표를 이루는 데 실패하는 과정을 거쳐 순진무구한 인물에서 ‘슬프지만 현명한’ 인물로 변화한다.
그 예가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 The House of Mirth』이다. 주인공 릴리 바트의 목표는 한 가지뿐이다. 돈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그녀는 성공하지 못한다. 소설의 끝이자 그녀 삶의 끝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여러 사건으로 변하게 되고, 화려한 삶에 관심을 덜 쏟고 사랑에 관심을 더 쏟았더라면 훨씬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진 입체적 인물은 원하는 것을 얻지만 그 성공에 실망하는 이야기에도 효과적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 알아야 한다. 그걸 이룰 수도 있으니까”식의 이야기 말이다.
이때 인물 변화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인물은 성공을 위해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도 변화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 둘째, 많은 대가를 치렀음을 결코 깨닫지 못하지만(또는 그 사실을 인정하긴 하지만) 인물은 성공의 결과로 후회 또는 비탄에 잠기면서 변화한다.
유형 4. 성격도 동기도 변하는 인물: ‘나는 지금 누구이고 무얼 원하는가?’
이 인물은 가장 복잡한 유형이다. 인물의 목표가 내내 변할 뿐 아니라 성격과 신념도 변한다. 이런 인물은 줄곧 혼란스러워한다. 따라서 작가는 독자가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만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허먼 우크의 퓰리처상 수상작 『케인호의 반란』에 나오는 윌리 키스 소위를 생각해보자. 윌리는 전쟁 중에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의 동기 또한 계속 바뀐다. 시간 순으로 보자.
○ 윌리는 징집을 피하고 싶어서 해군에 자원 입대한다.
○ 윌리는 힘든 임무를 피하고 싶어서 소해정 같은 위험한 함대에 배속되지 않으려 한다.
○ 윌리는 소해정 케인호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 윌리는 압제적이고 비이성적인 케인호의 퀵 함장에게서 살아남고 싶어 한다.
○ 윌리는 퀵 함장을 제거하려는 반란에 가담하고 싶어 한다.
○ 윌리는 군사 재판과 불명예 제대를 피하고 싶어 한다.
○ 윌리는 마침내 훌륭한 해군 장교가 되어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키고 싶어 한다.
이러한 동기 변화를 통해 윌리의 내적 변화를 알 수 있다.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편한 길을 찾아다니는 인물에서 의무를 받아들이고 가치 있게 여기는 인물로 변한다.
진행성 동기와 내적 변화 둘 다를 가진 인물을 만들어냈다면 아주 잘한 일이다! 성공을 꿈꾸어도 좋을 만큼 멋진 인물을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가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면 하나의 동기를 가진, 변화하는 인물을 위한 지침을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인물 변화를 극화해 보여줘야 하고, 그 극화된 사건들의 결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 개연성 있는 감정 반응이 있어야 하고, 잇따른 행동을 통해 인증을 받아야 한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